대학내일
모르는 게 많아 슬픈 바보를 위한 처방전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순간순간들이 괴롭고 슬펐다.
대학에 와서 처음 알았다. 세상은 넓고, 똑똑한 사람은 많고, 정보는 더더욱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 넓고 깊은 정보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내가 가진 정보는 정말 한 줌도 안 된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대학에 와서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순간순간들이 너무 괴롭고 슬펐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내 머릿속에서는 얕은 지식을 인정하기 싫은 자존심과 스스로를 한없이 깎아내리는 비관적인 마음이 싸웠다.
이런 혼란이 시작된 것은 선배의 추천으로 학회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였다. 처음에는 비교적 실생활과 가까운 주제에 대해 토론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더욱 심도 있는 주제를 다루는 토론이 잦아졌고 그럴 때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탈중심주의, 노마디즘, 뉴노멀 시대…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넘쳐났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다. 무슨 뜻이냐고 묻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나 때문에 토론의 흐름이 끊길까봐 겁이 났다.
어떻게든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토론 주제가 올라올 때마다 이번엔 정말 열심히 공부해 가야지, 결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을 꼬박 새워 인터넷 검색을 하며 조사해도, 내가 수집한 얕고 잡다한 지식들은 이미 그 본질까지 꿰뚫고 있는 4학년 선배들 앞에서 감히 꺼내지도 못할 만큼 초라하게 느껴졌다.
힘든 몇 주가 지나고 내가 속한 조가 학회 세미나를 진행하는 날이 왔다. 하필 발표를 맡은 게 나였다. 우려했던 대로 선배들 앞이라 자신감이 더욱 떨어졌고 목소리는 자꾸만 기어들어 갔다. 겨우겨우 발표를 마치고 내려오자 선배들은 잘했다며 격려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발표를 망쳤다는 걸.
우울한 기분을 안고 집에 돌아왔다. 침대에 눕자마자 하루 치의 피로와 함께 엄청난 슬픔이 몰려왔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힘없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끊임없이 나를 자책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까지나 우울 속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불 밖으로 나왔다. 친구에게 전화해 그날 있었던 일을 하소연하니, 친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야, 그럴 땐 그냥 ‘난 귀여우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해.”
그 단순한 말이 우스워 웃고 말았다. 웃고 나니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른 후, 조금 자존심도 상하고 속도 쓰리지만 내가 이 학회에서 가장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학회에 괜히 들어갔다는 후회는 들지 않았다. 비닐하우스 속에만 있으면 겨울 추위를 모르기 마련이니까. 내가 아는 세상이 다인 줄만 알았는데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처음이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다음 행보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었다. 다음 토론엔 기필코 내 명예를(!) 회복 시키리라 다짐하며, 다음 주 발제를 공부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다음 걸음을 준비하는 게 나을 테니까.
한 집단에서 내가 제일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처음이지만, 아마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알바를 시작할 때나 인턴 업무를 시작할 때, 혹은 직장에 들어간 첫날 분명 그 집단에서 내가 제일 바보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이런 나를 보고 자책할 수만은 없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친구의 농담 한마디에 웃은 후 그 좌절감을 잊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의 더 멋진 모습을 기약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쩌면 우리는 남들에게 위로는 잘 해줘도 스스로의 미숙한 모습을 위로하는 것에는 서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렇게 바보 같은 나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내밀 처방전 하나쯤은 마련해둬야 할 것 같다. 치킨과 맥주가 적힌 처방전, 그리고 하소연할 친구 한 명만 있으면 거뜬하지 않을까.
Writer 이상생활 blog.naver.com/creativejelly일상이 이상이 되는 날까지
"20대가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글 쓰는 20대> 카테고리에서 에세이를 작성해주세요"
이런 혼란이 시작된 것은 선배의 추천으로 학회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였다. 처음에는 비교적 실생활과 가까운 주제에 대해 토론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더욱 심도 있는 주제를 다루는 토론이 잦아졌고 그럴 때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탈중심주의, 노마디즘, 뉴노멀 시대…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넘쳐났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다. 무슨 뜻이냐고 묻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나 때문에 토론의 흐름이 끊길까봐 겁이 났다.
어떻게든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토론 주제가 올라올 때마다 이번엔 정말 열심히 공부해 가야지, 결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을 꼬박 새워 인터넷 검색을 하며 조사해도, 내가 수집한 얕고 잡다한 지식들은 이미 그 본질까지 꿰뚫고 있는 4학년 선배들 앞에서 감히 꺼내지도 못할 만큼 초라하게 느껴졌다.

힘든 몇 주가 지나고 내가 속한 조가 학회 세미나를 진행하는 날이 왔다. 하필 발표를 맡은 게 나였다. 우려했던 대로 선배들 앞이라 자신감이 더욱 떨어졌고 목소리는 자꾸만 기어들어 갔다. 겨우겨우 발표를 마치고 내려오자 선배들은 잘했다며 격려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발표를 망쳤다는 걸.
우울한 기분을 안고 집에 돌아왔다. 침대에 눕자마자 하루 치의 피로와 함께 엄청난 슬픔이 몰려왔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힘없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끊임없이 나를 자책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까지나 우울 속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불 밖으로 나왔다. 친구에게 전화해 그날 있었던 일을 하소연하니, 친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야, 그럴 땐 그냥 ‘난 귀여우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해.”
그 단순한 말이 우스워 웃고 말았다. 웃고 나니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른 후, 조금 자존심도 상하고 속도 쓰리지만 내가 이 학회에서 가장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학회에 괜히 들어갔다는 후회는 들지 않았다. 비닐하우스 속에만 있으면 겨울 추위를 모르기 마련이니까. 내가 아는 세상이 다인 줄만 알았는데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처음이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다음 행보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었다. 다음 토론엔 기필코 내 명예를(!) 회복 시키리라 다짐하며, 다음 주 발제를 공부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다음 걸음을 준비하는 게 나을 테니까.
한 집단에서 내가 제일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처음이지만, 아마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알바를 시작할 때나 인턴 업무를 시작할 때, 혹은 직장에 들어간 첫날 분명 그 집단에서 내가 제일 바보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이런 나를 보고 자책할 수만은 없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친구의 농담 한마디에 웃은 후 그 좌절감을 잊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의 더 멋진 모습을 기약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쩌면 우리는 남들에게 위로는 잘 해줘도 스스로의 미숙한 모습을 위로하는 것에는 서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렇게 바보 같은 나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내밀 처방전 하나쯤은 마련해둬야 할 것 같다. 치킨과 맥주가 적힌 처방전, 그리고 하소연할 친구 한 명만 있으면 거뜬하지 않을까.
Writer 이상생활 blog.naver.com/creativejelly일상이 이상이 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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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호 - 20's voice]
#미숙함#성장#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