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쓸데없는 노력의 맛
그건 마치 내 인생과도 같은 맛이었다
나는 인생을 되는대로 살아왔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열심히 살아왔다고 해야겠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두 글자 단어는 노력이다. 세 글자 단어는 노오력. 네 글자 단어는 노오오력이며 다섯 글자 단어는 노오오오력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 꿈은 프리랜서였다. 분야는 상관없었다. 프리랜서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고는 출퇴근이 필요 없는 직업이라는 사실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도 꿈은 변하지 않았다. 어차피 출결이 나빠서 멀쩡한 직장을 찾기도 힘들 것 같았다.
얼떨결에 취업을 했다. 인터넷 서점이었다. 책이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었다. 과연 늘 책이 옆에 있었다. 정작 그 책을 읽을 시간은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근태 또한 문제였다. 나는 월간 최다 지각 신기록을 거의 매달 갱신했으며, 역대 누적 지각 부문에는 독보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3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얼마 후면 나는 10년 차 프리랜서가 된다. 드림스 컴 트루. 꿈을 이룬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텅 빈 모니터를 노려보며 서양의 속담을 곱씹는다. 소원을 빌 때는 조심할 것. 정말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넌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 며칠 밤을 새우며 마감을 하고 퀭한 눈으로 친구들을 만나 프리랜서의 고충을 토로하기라도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늘 엇비슷하다. 그래, 나는 프리랜서가 되고 싶었지. 글도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불안정한 수입과 불규칙한 일정,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마감, 점점 가늘어지는 팔다리와 그에 반비례해 커지는 자의식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게을렀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게을렀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하고 싶지 않아서 프리랜서가 되고 싶었고, 퇴사 후 새 직장을 찾는 게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얼렁뚱땅 프리랜서가 되었다는 말이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단 프리랜서가 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퇴근 또한 따로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일상은 업무 시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업무 후 시간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으로 채워졌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때나 친구들을 만나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할 때에도 써야 하는 글과 마감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지만, 막상 일을 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으면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마감 시한을 넘기도록 머리만 싸매고 있다가 허겁지겁 원고를 쓰는 일이 잦아졌다. 내내 턱을 앙다물고 있던 탓에 두통까지 생겼다. 줄타기하듯 위태로운 매일이었고,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을 해야만 했으며, 그럴수록 자기혐오는 커져만 갔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헛웃음이 나는데, 이렇게 열심히 살아봤자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웃음도 안 나와.” 친구와 나는 건배했다. 허름한 맥줏집이었다.
2만원짜리 ‘제철 과일’과 15000원짜리 ‘파인애플 요거트’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파인애플 요거트’를 시킨 참이었다. 어떤 과일들이 나올지 모를 ‘제철 과일’에 비해 그림이 그려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볼에 파인애플 통조림을 담고 요거트에 버무린 다음 건포도나 아몬드를 좀 뿌렸겠지, 생각만으로도 벌써 입안에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한참 만에 나온 안주는 우리의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세로로 자른 생 파인애플이었다. 속을 파내 그릇처럼 만든 파인애플에, 파낸 과육을 깍둑썰기 해서 담고 요거트를 버무렸다. 세상에, 시간이 오래 걸릴 만도 하네! 우리는 놀랐고 조금 감동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었으니, 막상 입에 넣은 파인애플이 너무 맛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나는 내 입을 의심했다. 그렇지만 당황해서 흔들리는 친구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시다 못해 쓴…… 질긴 섬유질이 그대로 씹히는…… 전형적으로 맛없는 파인애플이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여기에는 내가 예상했던 안주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맛은 비할 바가 아니다. 솔직히 형편없다. 그렇다면 이 노력은 대체 무엇을 위한 노력이란 말인가? 그건 마치 내 인생과도 같은 맛이었다. 쓰고, 질긴, 쓸데없는 노력의 맛.
그날 이후 나는 노력이라는 것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어쨌거나 노력은 불가피하다. 쓸데없는 노력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어떤 노력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혼자만의 강박에 시달리며 고통 받느라 마감을 넘기는 바보 같은 필자가 되지 않기로 했다. 다소 뻔하고 예상 가능하더라도 최소한 마감은 지키는 필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지금 이 글이 그런 것처럼.
고등학교 시절 내 꿈은 프리랜서였다. 분야는 상관없었다. 프리랜서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고는 출퇴근이 필요 없는 직업이라는 사실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도 꿈은 변하지 않았다. 어차피 출결이 나빠서 멀쩡한 직장을 찾기도 힘들 것 같았다.
얼떨결에 취업을 했다. 인터넷 서점이었다. 책이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었다. 과연 늘 책이 옆에 있었다. 정작 그 책을 읽을 시간은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근태 또한 문제였다. 나는 월간 최다 지각 신기록을 거의 매달 갱신했으며, 역대 누적 지각 부문에는 독보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3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얼마 후면 나는 10년 차 프리랜서가 된다. 드림스 컴 트루. 꿈을 이룬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텅 빈 모니터를 노려보며 서양의 속담을 곱씹는다. 소원을 빌 때는 조심할 것. 정말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넌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 며칠 밤을 새우며 마감을 하고 퀭한 눈으로 친구들을 만나 프리랜서의 고충을 토로하기라도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늘 엇비슷하다. 그래, 나는 프리랜서가 되고 싶었지. 글도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불안정한 수입과 불규칙한 일정,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마감, 점점 가늘어지는 팔다리와 그에 반비례해 커지는 자의식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게을렀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게을렀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하고 싶지 않아서 프리랜서가 되고 싶었고, 퇴사 후 새 직장을 찾는 게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얼렁뚱땅 프리랜서가 되었다는 말이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단 프리랜서가 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퇴근 또한 따로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일상은 업무 시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업무 후 시간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으로 채워졌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때나 친구들을 만나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할 때에도 써야 하는 글과 마감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지만, 막상 일을 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으면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마감 시한을 넘기도록 머리만 싸매고 있다가 허겁지겁 원고를 쓰는 일이 잦아졌다. 내내 턱을 앙다물고 있던 탓에 두통까지 생겼다. 줄타기하듯 위태로운 매일이었고,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을 해야만 했으며, 그럴수록 자기혐오는 커져만 갔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헛웃음이 나는데, 이렇게 열심히 살아봤자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웃음도 안 나와.” 친구와 나는 건배했다. 허름한 맥줏집이었다.
2만원짜리 ‘제철 과일’과 15000원짜리 ‘파인애플 요거트’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파인애플 요거트’를 시킨 참이었다. 어떤 과일들이 나올지 모를 ‘제철 과일’에 비해 그림이 그려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볼에 파인애플 통조림을 담고 요거트에 버무린 다음 건포도나 아몬드를 좀 뿌렸겠지, 생각만으로도 벌써 입안에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한참 만에 나온 안주는 우리의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세로로 자른 생 파인애플이었다. 속을 파내 그릇처럼 만든 파인애플에, 파낸 과육을 깍둑썰기 해서 담고 요거트를 버무렸다. 세상에, 시간이 오래 걸릴 만도 하네! 우리는 놀랐고 조금 감동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었으니, 막상 입에 넣은 파인애플이 너무 맛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나는 내 입을 의심했다. 그렇지만 당황해서 흔들리는 친구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시다 못해 쓴…… 질긴 섬유질이 그대로 씹히는…… 전형적으로 맛없는 파인애플이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여기에는 내가 예상했던 안주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맛은 비할 바가 아니다. 솔직히 형편없다. 그렇다면 이 노력은 대체 무엇을 위한 노력이란 말인가? 그건 마치 내 인생과도 같은 맛이었다. 쓰고, 질긴, 쓸데없는 노력의 맛.
그날 이후 나는 노력이라는 것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어쨌거나 노력은 불가피하다. 쓸데없는 노력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어떤 노력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혼자만의 강박에 시달리며 고통 받느라 마감을 넘기는 바보 같은 필자가 되지 않기로 했다. 다소 뻔하고 예상 가능하더라도 최소한 마감은 지키는 필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지금 이 글이 그런 것처럼.
[873호 - think]
Writer 금정연 blur182@hanmail.net 『아무튼, 택시』 저자, 마감에 허덕이는 프리랜서 서평가 illustrator 강한
#노력#게으름#귀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