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나는 알아서 다 컸다고 생각하는 너에게
영화 <툴리> 리뷰
movie<툴리>
감독 제이슨 라이트맨
출연 샤를리즈 테론, 맥켄지 데이비스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초등학교 당시 곧잘 흥얼거렸던 재*교육의 CM송은 사실, 나의 초중고 전 학창 시절을 관통하는 테마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 7년 차 때부터 설거지, 책가방·실내화 빨기, 방 청소, 아침에 제때 일어나기 등과 같은 1차원적인 활동들을 스스로하기 시작했다. 청소년이 되었을 땐 진로를 설정하고 준비하는 것을 포함해, 눈앞의 크고 작은 선택들에 대해 알아서 결정을 내리곤 했다.
물론 옆에는 늘 재기발랄한 엄마가 있었지만, 자녀 교육에 있어선 철저하게 자유방임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셨기에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였다. 그래서 누군가 나의 성장기에 대해서 물어볼 때면, ‘나는 알아서 다 컸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바야흐로 일주일 전, 나는 그동안 내가 품어왔던 오만한 생각들을 깊이 참회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 <툴리>를 보고난 후 그랬다.
아직 8살밖에 안 된 첫째 딸과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는 둘째, 그리고 계획에 없던 셋째까지. <툴리>는 육아 지옥에 갇혀 자신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던 마를로(샤를리즈 테론 분)가, 야간 보모 툴리(맥켄지 데이비스 분)를 만나 자신의 색과 온도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에 비로소 온기가 돌기 시작하는 지점은 마를로와 툴리가 만나는 순간이지만, 정작 나를 참회의 길로 이끌었던 건 툴리를 만나기 전 마를로의 모습이었다. 낮에는 집안일과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밤에는 2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가는, 지독하고 지겨운 노동의 시간들.
마를로가 양쪽 가슴에 유착기를 달고 멍하니 앉아있을 때면 무기력을 넘어 무감각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들이 그녀의 옷 위로 음료수를 쏟았을 때도 마를로는 휴지로 닦거나 새 옷으로 갈아입는 대신 그 자리에서 티셔츠를 벗어버린다. 축 처진 그녀의 눈동자는 그녀가 다른 선택을 할 여력조차 없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은, 어여쁜 목소리로 “엄마, 몸이 왜 그래?”라고 묻는다.
영화는 독박 육아의 폐해를 보여주는 동시에, 나에게 명제 하나를 남기고 갔다. ‘세상에 혼자 다 큰 아이는 없다.’ 내가 여태 간과했던 명백한 사실. 영화관을 나오며 핸드폰에 ‘정요정’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꾸욱 눌렀다. “엄마~ 뭐 해~?” 괜히 말꼬리를 늘리며 ‘달밤에 커피 한 잔’을 시전하자, 수화기 너머로 호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 밤, 우리 정요정이 가장 좋아하는 조합(뜨신 아메리카노+크림치즈 베이글)을 미리 주문해놓기 위해 카페까지 한 걸음에 달려 갔다. 김예란
물론 옆에는 늘 재기발랄한 엄마가 있었지만, 자녀 교육에 있어선 철저하게 자유방임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셨기에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였다. 그래서 누군가 나의 성장기에 대해서 물어볼 때면, ‘나는 알아서 다 컸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바야흐로 일주일 전, 나는 그동안 내가 품어왔던 오만한 생각들을 깊이 참회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 <툴리>를 보고난 후 그랬다.

아직 8살밖에 안 된 첫째 딸과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는 둘째, 그리고 계획에 없던 셋째까지. <툴리>는 육아 지옥에 갇혀 자신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던 마를로(샤를리즈 테론 분)가, 야간 보모 툴리(맥켄지 데이비스 분)를 만나 자신의 색과 온도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에 비로소 온기가 돌기 시작하는 지점은 마를로와 툴리가 만나는 순간이지만, 정작 나를 참회의 길로 이끌었던 건 툴리를 만나기 전 마를로의 모습이었다. 낮에는 집안일과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밤에는 2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가는, 지독하고 지겨운 노동의 시간들.

마를로가 양쪽 가슴에 유착기를 달고 멍하니 앉아있을 때면 무기력을 넘어 무감각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들이 그녀의 옷 위로 음료수를 쏟았을 때도 마를로는 휴지로 닦거나 새 옷으로 갈아입는 대신 그 자리에서 티셔츠를 벗어버린다. 축 처진 그녀의 눈동자는 그녀가 다른 선택을 할 여력조차 없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은, 어여쁜 목소리로 “엄마, 몸이 왜 그래?”라고 묻는다.
영화는 독박 육아의 폐해를 보여주는 동시에, 나에게 명제 하나를 남기고 갔다. ‘세상에 혼자 다 큰 아이는 없다.’ 내가 여태 간과했던 명백한 사실. 영화관을 나오며 핸드폰에 ‘정요정’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꾸욱 눌렀다. “엄마~ 뭐 해~?” 괜히 말꼬리를 늘리며 ‘달밤에 커피 한 잔’을 시전하자, 수화기 너머로 호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 밤, 우리 정요정이 가장 좋아하는 조합(뜨신 아메리카노+크림치즈 베이글)을 미리 주문해놓기 위해 카페까지 한 걸음에 달려 갔다. 김예란
[874호 - culture letter]
#툴리#영화 리뷰#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