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잘 지내나요? 연말엔 안부를 물어요

살아낸 자신을 칭찬해주고 주변을 돌아보기로 해요
올해 첫 한파주의보를 앞둔 밤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요. 친구들이 묻는 잘 지내냐는 말에 “살기 귀찮은 것 빼고는 다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지친 요즘이라, 자취방 말고 진짜 집의 온기가, 가족들로부터의 응원이 내심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응, 딸.”  

엄마는 거의 잠들기 직전에 전화를 받으셨나 봐요. 낮고 졸린 목소리로 통화를 하던 중, 얼마 전 엄마 통장에 입금된(가끔 엄마의 송금을 도와드리고 있거든요) 평소보다 큰 금액이 생각나 물었어요. 돈 들어올 일이 있었다고 말씀하시다가, 제가 이상해서 재차 물으니 회사에서 대출을 받으셨대요. 회사에서 연차가 쌓여 저금리로 대출할 수 있었다면서…….  

얼마 전 치과 치료 받은 돈이 실비보험으로 입금되었나 보다, 엄마 통장 잔고가 아슬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던 저는 조금 놀랐어요. 집집마다 대출이 아주 보편화된 세상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 집이 조금은 여유로워졌나보다 여기고 있었는데 그 얇은 유리 같은 믿음이 깨져버렸으니까요. 제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엄마와 저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어요. 저는 엄마가 괜히 마음을 쓸까 싶어 부러 목소리를 높여 얘기했어요.  

“엄마, 내일 엄청 춥대. 따뜻하게 입어. 엄마 패딩은 있나?”
“있지. 많지.”
“응, 나도 올해는 아우터 따로 안 샀어. 입던 거 있으니까.”  

약간 후회가 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오래 휴학하는 게 아니었는데. 사실 100세 시대에 1년 반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휴학을 연장하고 연장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해요.
      
휴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사이 떡하니 취업할 수 있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요. 오늘 오랜 친구를 만나서 우리 돈 모아서 내년 겨울쯤 유럽 여행을 가자고 약속한 것이나, 올해 불수능을 보고 아직 수시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동생, 그런 우리에게 말하지 못했던 엄마의 대출…… 여러 가지가 아른거렸어요.  

우리 엄마라고 왜 예쁜 옷이 갖고 싶지 않겠어요. 우리 아빠라고 왜 10년 넘은 차를 바꾸고 싶지 않겠어요. 저는 가진 것 이상으로 욕심부리거나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해요. 그래도 저는 10년이 넘어 군데군데 부식되고 이래저래 손 많이 가는 차를 볼 때마다, 자존심 강한 아빠가 상태 메시지에 띄운 S.O.S처럼 느껴지는 사자성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그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장난스럽게 “레귤러 체크 업입니다~ 역시 큰 딸밖에 없죠?” 하면서 안부 전화 하고, 더 자주 찾아뵈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에요. 그마저도 서로 통화 타이밍이 안 맞거나 바쁜 대학 생활에 치이면 못 챙기기 일쑤죠.  

오늘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아빠 목소리를 못 들었는데, 마지막으로 고향에 갔을 때 독하고 오래가는 감기로 고생하시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밤입니다. 할 일은 많고 잠도 오지 않는 밤이지만, 가족 톡방에 미리 옷 따뜻하게 입고 건강하자는 문자라도 남겨놓아야겠어요.  

모쪼록 올 한 해 마무리하면서,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함께 모여 웃을 수 있는 자리를 마냥 바라기보다는, 적어도 겉으로는 많이 자란 제가 먼저 즐거운 자리를 제안하고 기회를 만들어야겠어요.  

모두의 연말에 오로지 희망만이 존재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 여기까지 꾸역꾸역 살아낸 자신을 칭찬해주고 주변 사람들을 한 번 더 돌아보기로 해요. 이래저래 복잡해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 그래서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들과 함께일 때 나를 돌아볼 용기, 다시 시작할 희망이 돋아나니까요.  

"20대가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글 쓰는 20대> 카테고리에서 에세이를 작성해주세요" 

[875호 - 20's voice]


Writer 이지형 dolkong0913@naver.com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게 해준 많은 인연과 과거의 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연말#안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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