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나 잠깐 사라지고 싶어
시간이 좀 필요해. 괜찮아지면 연락할게.
“남자친구가 취업했는데 열등감만 생겨. 이게 정상이야?”“아⋯”
어떤 대답이 정답이었을까. 다 그럴 때가 있다고, 곧 괜찮아질 거라 말해야 했을까. 또는 마음르고 우선 축하해주자고 말해야 했을까. 어떤 말도 쉽게 할 수 없었다.
나야말로 인간관계에 워낙 젬병인 사람이라 조언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위로도 미숙했다. 외려 그녀가 쏟아내는 화를 보고 듣는 게 힘겨웠다. 계속 함께 있다간 숨이 막힐 것 같아 도망치듯 다음 일정을 탓하고 나왔다. 돌아가며 친구의 불행을 온전히 들어줄 수 없는 내 그릇을 확인했고, 동시에 그 열등감과 불안이 내게 전이될까봐 떨치려 했다.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제발 잘됐으면 하고 비는 것뿐.
“이런 내가 너무 최악이야. 나 왜 이럴까? 고치고 싶어.”
이건 얼마 전 그녀가 한 말이 아닌, 4년 전 내가 한 말이다. 나도 그녀와 비슷한 때가 있었다. 20대 중반, 그때의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며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나를 지배했다. 우울증이 와서 술에 의존하기도 했다.
혼자 있으면 우울이 더 심해져서 친구를 만나 웃고 떠드는 게 적절한 처방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나면 괜찮아진 기분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왠지 그때 내 말을 들어주던 친구의 표정이, 얼마 전 나의 표정과 겹쳐 보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잠깐 사라져야 했다. 늘 마음 한구석에 억울함을 품고 살았기에, 친구들에게도 때때로 잘못된 화살을 날렸다. 잘 된 친구를 보며 자격지심을 느꼈고, 평소와 다름없는 친구의 말과 행동을 혼자 부정적으로 해석해 서운해했다. 이런 내가 못난 걸 알면서도 나를 바꿀 수 없어 죽고 싶었다.
내 문제로 소중한 사람을 힘들게 한다면, 혼자 시간을 갖고 나를 고쳐야 했다. 물론 완벽히 내 문제를 숨기고 마인드 컨트롤 할 수 있다면 평소처럼 지내도 되지만, 인간이라면 불가능하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쏟아내고, 세상을 비관하며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나 요즘 상태가 바닥이라, 시간이 좀 필요해. 괜찮아지면 연락할게.”
요즘의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애인과 관계가 틀어지면 시간을 갖고, 가족에게도 불만이 쌓이면 잠시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친구 사이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겁이 났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이 날 미워할까 봐, 갑작스러운 절교 선언으로 들릴까 봐. 하지만, 친구들은 나를 기다려주었고,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잘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과 나는 안정적으로 오래오래 함께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마음이 아파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한마디를 난 과거에 왜 그리도 어려워했나 싶다.
잠시 사라지고 싶다 양해를 구하는 건 누군가와 천천히 멀어지기 위함이 아닌 누군가와 오래 함께하기 위함이다. 자격지심과 열등감 때문이 마음이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부정적인 말만 쏟아내기 쉽다. 내 위주로만 생각하게 되고 상대를 살피지 못한다.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보단,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는 모양이 된다. 상대의 마음이 아주 넉넉하다면 큰 탈 없겠지만 모두 힘든 시기라면 관계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오히려 나만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문제에 대해 혼자 생각하고, 취미 생활을 하며 외면하는 것. 또는 혼자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현재를 곰곰이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 귀찮다면 집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잠만 자도 괜찮다.
분명 시간만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답이 없어서 시간에 기대는 게 아니라, 정답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지배당하고 자신이 제어되지 않을 때, 시간을 두고 주변으로 물러나 생각하는 것도 노력이다. 그렇게 한다고 당신을 원망하거나 이상하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속으로 응원하며 기다릴 뿐. 우리는 힘들면 잠시 사라져도 된다.
어떤 대답이 정답이었을까. 다 그럴 때가 있다고, 곧 괜찮아질 거라 말해야 했을까. 또는 마음르고 우선 축하해주자고 말해야 했을까. 어떤 말도 쉽게 할 수 없었다.
나야말로 인간관계에 워낙 젬병인 사람이라 조언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위로도 미숙했다. 외려 그녀가 쏟아내는 화를 보고 듣는 게 힘겨웠다. 계속 함께 있다간 숨이 막힐 것 같아 도망치듯 다음 일정을 탓하고 나왔다. 돌아가며 친구의 불행을 온전히 들어줄 수 없는 내 그릇을 확인했고, 동시에 그 열등감과 불안이 내게 전이될까봐 떨치려 했다.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제발 잘됐으면 하고 비는 것뿐.
“이런 내가 너무 최악이야. 나 왜 이럴까? 고치고 싶어.”
이건 얼마 전 그녀가 한 말이 아닌, 4년 전 내가 한 말이다. 나도 그녀와 비슷한 때가 있었다. 20대 중반, 그때의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며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나를 지배했다. 우울증이 와서 술에 의존하기도 했다.
혼자 있으면 우울이 더 심해져서 친구를 만나 웃고 떠드는 게 적절한 처방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나면 괜찮아진 기분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왠지 그때 내 말을 들어주던 친구의 표정이, 얼마 전 나의 표정과 겹쳐 보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잠깐 사라져야 했다. 늘 마음 한구석에 억울함을 품고 살았기에, 친구들에게도 때때로 잘못된 화살을 날렸다. 잘 된 친구를 보며 자격지심을 느꼈고, 평소와 다름없는 친구의 말과 행동을 혼자 부정적으로 해석해 서운해했다. 이런 내가 못난 걸 알면서도 나를 바꿀 수 없어 죽고 싶었다.
내 문제로 소중한 사람을 힘들게 한다면, 혼자 시간을 갖고 나를 고쳐야 했다. 물론 완벽히 내 문제를 숨기고 마인드 컨트롤 할 수 있다면 평소처럼 지내도 되지만, 인간이라면 불가능하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쏟아내고, 세상을 비관하며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나 요즘 상태가 바닥이라, 시간이 좀 필요해. 괜찮아지면 연락할게.”
요즘의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애인과 관계가 틀어지면 시간을 갖고, 가족에게도 불만이 쌓이면 잠시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친구 사이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겁이 났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이 날 미워할까 봐, 갑작스러운 절교 선언으로 들릴까 봐. 하지만, 친구들은 나를 기다려주었고,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잘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과 나는 안정적으로 오래오래 함께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마음이 아파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한마디를 난 과거에 왜 그리도 어려워했나 싶다.
잠시 사라지고 싶다 양해를 구하는 건 누군가와 천천히 멀어지기 위함이 아닌 누군가와 오래 함께하기 위함이다. 자격지심과 열등감 때문이 마음이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부정적인 말만 쏟아내기 쉽다. 내 위주로만 생각하게 되고 상대를 살피지 못한다.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보단,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는 모양이 된다. 상대의 마음이 아주 넉넉하다면 큰 탈 없겠지만 모두 힘든 시기라면 관계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오히려 나만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문제에 대해 혼자 생각하고, 취미 생활을 하며 외면하는 것. 또는 혼자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현재를 곰곰이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 귀찮다면 집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잠만 자도 괜찮다.
분명 시간만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답이 없어서 시간에 기대는 게 아니라, 정답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지배당하고 자신이 제어되지 않을 때, 시간을 두고 주변으로 물러나 생각하는 것도 노력이다. 그렇게 한다고 당신을 원망하거나 이상하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속으로 응원하며 기다릴 뿐. 우리는 힘들면 잠시 사라져도 된다.
#에세이#취준#취준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