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의 개성을 밋밋하게 깎아왔던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특징은 뭘까? 고민해야 했다. 자기소개 말이다. 대학교에 오니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어서 나를 소개해야만 했다. 나를 가장 나답게 수식할 표현과 특징들을 찾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어색해서 황급히 이야기를 마무리해버리기 일쑤였다. 한 바퀴를 돌아 내 차례가 점점 가까워지면 불안했고, 식은땀도 났으며, 왠지 조금 슬퍼졌다. 내 머릿속에는 ‘평범’이라는 재미없는 단어만이 빙빙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흔한 이사 한 번 간 적이 없다. 작은 동네의 상징 같은, 지역 이름이 붙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던 친구들과 함께 자랐다. 그래서 딱히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아주 편한 일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는 나로서 존재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원만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평범하게 말이다. 그저 좋게 좋게. 일부러 튀거나, 괜한 짓으로 남들 눈 밖에 나고 싶지 않다는 조금은 어린아이답지 않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지금껏 관찰자 입장에 속해있던 편이다.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그만큼 친구들의 장점이나 기분 상태를 잘 파악했고 그 덕에 꽤나 좋은 청자가 되어주었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나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들여다보는 일. 그러니까 나를 마주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과 구분되는, 나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균형이 깨진 것이다.
나와 타인. 그 관계 속에서 언제나 평범해지는 것을 택했다.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하면 너무 튀려나?’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내 행동을 스스로 필터링하고, 가지를 쳐냈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면 나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하는 ‘예스맨’이었다. ‘둥글둥글하다’는 가면을 쓰고, 그 안의 수동적인 나를 가려왔던 것이다.
주관을 줄이고 거절하지 않는 예스맨은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적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둥글둥글해지려고 나의 개성을 밋밋하게 깎아왔던 것이 아닐까.’ ‘나를 비로소 나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나의 부분들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각지고 모나더라도 어딘가에 꼭 맞는 사람이, 오히려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세상에는 네모, 별, 세모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각자의 ‘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지금부터라도 적당히 괜찮고 무난한 사람보다, 자신이 가진 그 각의 가치와 개성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다. 자기소개를 할 때,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아는 내가 되어, 나만의 각진 부분들을 드러내고 싶다. 내가 틀릴까봐, 이상하게 보일까봐, 행여 튈까봐 고민하며 내 손으로 갈아내던 나의 모든 각들을 떠올려본다.
"20대가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글 쓰는 20대> 카테고리에서 에세이를 작성해주세요"
아주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흔한 이사 한 번 간 적이 없다. 작은 동네의 상징 같은, 지역 이름이 붙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던 친구들과 함께 자랐다. 그래서 딱히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아주 편한 일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는 나로서 존재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원만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평범하게 말이다. 그저 좋게 좋게. 일부러 튀거나, 괜한 짓으로 남들 눈 밖에 나고 싶지 않다는 조금은 어린아이답지 않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지금껏 관찰자 입장에 속해있던 편이다.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그만큼 친구들의 장점이나 기분 상태를 잘 파악했고 그 덕에 꽤나 좋은 청자가 되어주었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나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들여다보는 일. 그러니까 나를 마주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과 구분되는, 나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균형이 깨진 것이다.
나와 타인. 그 관계 속에서 언제나 평범해지는 것을 택했다.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하면 너무 튀려나?’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내 행동을 스스로 필터링하고, 가지를 쳐냈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면 나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하는 ‘예스맨’이었다. ‘둥글둥글하다’는 가면을 쓰고, 그 안의 수동적인 나를 가려왔던 것이다.
주관을 줄이고 거절하지 않는 예스맨은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적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둥글둥글해지려고 나의 개성을 밋밋하게 깎아왔던 것이 아닐까.’ ‘나를 비로소 나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나의 부분들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각지고 모나더라도 어딘가에 꼭 맞는 사람이, 오히려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세상에는 네모, 별, 세모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각자의 ‘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지금부터라도 적당히 괜찮고 무난한 사람보다, 자신이 가진 그 각의 가치와 개성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다. 자기소개를 할 때,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아는 내가 되어, 나만의 각진 부분들을 드러내고 싶다. 내가 틀릴까봐, 이상하게 보일까봐, 행여 튈까봐 고민하며 내 손으로 갈아내던 나의 모든 각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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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호 - 20's voice]
Writer 독자 조수민 mint74051@naver.com
#무난한 사람#예스맨#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