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노잼인 나에게 유우-머를 가르쳐준 작품들
사는 게 늘 진지하고 피곤한가요?


누구도 아프지 않은 웃음
Stand-up Comedy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
코밑에 흰색으로 콧물을 그려 넣은 ‘바보’부터 과장된 몸짓으로 춤을 추는 ‘여장 남자’, 예쁘지 않다고 놀림 받는 ‘여성’까지.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을 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웃으라고 만든 프로그램일 텐데 볼수록 찝찝하다. 그 웃음이 겨냥한 대상이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 ‘약자’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재밌다’며 깔깔댈 때, 그 웃음이 ‘비웃음’으로 느껴질 누군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넷플릭스에서 해나 개즈비를 만난 건, 프로 불편러가 되어 어떤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맘이 불편할 무렵이었다. 스탠드 업 코미디언인 해나는 무대 위에서 레즈비언인 스스로를 소재 삼아 손쉬운 농담을 건넬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오히려 소수자로서 겪은 갖은 폭언과 폭행을 얘기하며 관객들을 긴장시킨다. 조금 웃고, 많이 긴장되는 공연 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이 공연을 보며 누구도 아프지 않아서 참 좋다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박장대소보다 조금 웃더라도 다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괜찮은 유머가 아닐까. 서재경

담담한 조소 속에 담긴 위트와 철학
BOOK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개그가 실패했을 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가 아니라 개그가 실패했을 땐 죽음 대신 이 책을 떠올려 보시라.한 신문사 칼럼을 통해 ‘추석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화두를 던지며 스타덤에 오른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산문집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배우신 분’의 찰진 드립이 현란하게 춤을 춘다. 그 찰진 드립들로 버무린 맛깔 나는 철학적 사유는 덤. 김영민 교수식 위트의 핵심은 반어와 비약이다. 그 두 가지 거울로 세상을 비춰 우주의 모든 현상과 사물을 조소한다. 이윽고 저자는 ‘내가 쓰레기라면 타는 쓰레기인가 안 타는 쓰레기인가’를 고찰하며 자기 자신까지 조소해버리는 경지에 다다른다.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입가엔 어느새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기실 위트의 뿌리는 비웃어버리기에 있지 않은가. 상대를 웃기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기보다는 차라리 주변 상황을 가볍게 비웃어버리는 게 낫겠다. 미세먼지로 모두가 인상을 찌푸린 심각한 상황 속에서 “공기가 참 좋네요. 요절하기에.” 하는 식으로 말이다. P.S. 마지막 문장이 재미없는 이유는 내가 책을 반만 읽고 덮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꼭 완독하시어 위트 천재 되시길. 김상구

장난 별거 아니었는데
Netflix <릭 앤 모티>
웃긴 걸 봐도 무덤덤하고, 그냥 농담한 건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살면 세상이 너무 재미없고 피곤하지 않을까 싶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취업에 연애에 모든 것들이 벅차게만 느껴지는 요즘. 왜, 삶에 여유가 없으면 그 무엇도 가볍게 받아칠 여유조차 없어지니까. 사실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나도 요즘은 장난과 진담 그 간극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만 무표정이 나와 버릴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넷플릭스에서 보기 시작한 ‘릭 앤 모티’는 아주 적절한 유머 코드를 습득(?) 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라는 생각이 든다. 천재 과학자 할아버지와 그의 덜떨어진 손자의 모험 이야기를 다룬 ‘19금 코미디 SF’ 시리즈(흥미로운 소재가 세 개씩이나!)로, 위기의 상황에서도 세계 평화의 손짓이라며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식의 위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별거 아니지만 나는 요즘 이런 태도가 필요했다. 그러면 세상 살기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해서. 생각난 김에 오늘도 릭과 모티에게 한 수 배우러 갈 생각이다. 물론 아무 때나 가운뎃손가락으로 받아치겠다는 소린 아님! 이시은
[884호 - pick up]
Director 김신지 summer@univ.me
#엠빅뉴스#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릭 앤 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