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어른학개론 수강 중입니다

그동안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사실은
아직 커피와 소주의 맛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나는 스무 살만 넘기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상아탑 안에서 선생님이 아닌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숙제가 아닌 과제를 하고 방학이 끝나면 개학이 아닌 개강을 하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은 그야말로 ‘어른’이었다. 대학교만 입학하면, 아니 적어도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사회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술뿐만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 회원가입 등 각종 제한이 풀리는 것은 물론, 스무 살 정도면 나이도 꽤 먹은 것처럼 느껴졌었으니까.  

내가 그려왔던 어른의 모습은 이랬더랬다. 그 어떤 일이 닥쳐와도 침착하게 일을 해결하고 정신적·경제적으로 독립한, 주체 의식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21세기의 당당한 성인. 그러나 이것이 그저 ‘모든 방면에서 이상적인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의 시간표부터 시작해 교우 관계, 학점, 자기 계발 등 무엇 하나 내 손을 거치지 않고 해결되는 일이 없었다.  

그마저도 이전처럼 누가 먼저 나서서 알려주지 않으니, 하나하나 겪어보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곧바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구도 진정한 ‘어른’의 스테레오타입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갓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가 이해할 수는 없었으리라. 혹여 바로 깨닫는 사람이 있다 한들, 그 수는 몹시 희박하지 않을까 싶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다시는 오지 않을 20대의 절반 정도를 대학에서 보내는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수강하고 있는 과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어른학개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어른으로 거듭나는 것을 도와줄 이 과목의 교수요, 나와 함께 울고 웃으며 추억을 쌓는 주변 사람들은 인생이란 전공의 과 동기 정도가 되겠다.
    
수업 내용은 그 범위가 방대해 하나로 정리하기가 어렵지만, 나름의 고민을 해본 결과 ‘행복’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과 나와의 관계, 선과 악에 대한 판단 기준, 살아가는 방식 등 매 순간 마주하는 모든 고민이 결국엔 행복과 직결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판단의 조각들이 모여 나만의 ‘어른’의 모습을 완성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그동안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행복을 찾는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모습을 제련해낸 것은 아닐까.  

혹자는 대학 졸업 후엔 인생을 즐길 시간이 없으니 지금 고민하지 말고 당장을 즐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학개론을 수강 중인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수많은 고민의 편린이 모여 결국엔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어른이 되어 살아갈 내가 좀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교수님이 내준 과제를 하는 중이라고.  

늦은 밤 집 가는 길, 가로등 아래 드리운 흐릿한 노란 불빛이 일렁인다. 어렸을 적 내가 도달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은 두 손 뻗어 만져볼 수 없고, 저 불빛 그 언저리에서 희미한 윤곽을 나타낼 뿐이다. 전 세계 77억 인구 중 나와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 한 명 없듯, 나에게 어울리는 어른의 모습을 누가 대신 정의해줄 순 없을 것 이다. 앞으로 가는 길에서도 지금까지와 같이 반복되는 실수와 좌절을 겪겠지만, 결국엔 그 종점에 다다를 것이라 믿고 싶다.  

5년 후, 10년 후의 내가 궁금하고 기대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봄이면 캠퍼스에 만개한 꽃을 보고 가슴이 두근댔고, 더운 여름엔 친구와 캔 맥주 하나씩 들고 운동장 불이 꺼질 때까지 백만 가지 주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누었으며, 나른한 시험 기간 오후 두꺼운 전공 서적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리포트 작성하는 소리를 ASMR 삼아 낮잠을 청하기도 했던 정든 이곳을 떠날 때가 다가온 지금. 나는 아직도 열심히 어른학개론을 수강 중이다.


[892호 - 20's voice]

Writer 독자 박진희 jingardium@naver.com  
#20's voice#어른#대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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