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지금껏 내 인생은 다 보험용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필요하면 어떡해’라는 걱정
2019년, 사망년이 시작됐다. 사망년의 시작은 사실 4학기를 마친 후 방학부터다. 친구들과 미뤄왔던 약속을 잡기 시작하는데, 어쩐지 다들 학기 중보다 더 바빠 보였다. 연락하는 친구마다 모두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인턴 중이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토플 공부를 한다고 징징댔는데 친구들의 바쁜 삶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준비하는 건 기껏해야 ‘교환학생’이고 그들은 ‘취업’이었으니까. 나 혼자만 아직 대학생으로 사는 기분이었다. 문득 불안한 마음에 이 활동 저 활동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한창 공고를 찾아보고, 여기저기 지원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현타가 왔다. ‘내가 왜 이 활동을 하려고 하는 거지?’라는 근원적인 고민이 생긴 것이다. 주변 동기들이 많이 한다고 해서 기업 서포터즈, 마케팅 인턴 활동을 따라 하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 복수 전공을 고민할 때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취업에 유리하다기에 복수 전공을 하기로 맘먹었는데, 막상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는 거다. 사실 관심 있는 전공이 몇 가지 있었으나 ‘취업에 도움 되지 않는 과’들이었기 때문에 피해야 했다. 그냥 무난한 ‘경영’을 복전 할까, 차라리 교직 이수를 할까 고민하다 깨달았다. 복전이든 교직 이수든 현재의 내 흥미와는 상관없는, 미래를 위한 보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갈팡질팡하던 나는 결국 둘 중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취업을 위해 맹목적으로 이력서를 채워나가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다짐을 얘기하면 주위 사람들은 ‘지금도 늦는데 그때 되면 더 늦어. 지금 뭐라도 해놔.’ ‘지금 당장 안 쓰더라도 보험용이지’라는 말을 어김없이 꺼내곤 했다.  
  
보험.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은 다 보험용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필요하면 어떡해’라는 걱정이 내 인생을 가득 채웠고, 보험 들 듯 남들이 하는 건 나도 해치웠다. 어렸을 때부터 흔히 듣던 “공부를 미리 해놓으면 네가 나중에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생겨.”라는 말만 믿고 생각 없이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보험이 단순한 대비책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안 써먹으면 아까우니까. 미래의 꿈은 점점 보험을 써먹을 수 있는 테두리로 한정되었다.  

보험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뚜렷한 나만의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라도 해”라는 말에 콩알만 한 뭐라도 있어야 반박을 하지, 그게 없으니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 뭐든 할 수밖에. 하지만 이제 깨달은 것은 그러면 지금은 그 ‘콩알’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시기란 것이다. 뭘 하더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부터 시작해 내 콩알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 그렇게 살다 보면 남들 따라 해야 될 것 같은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게 명확하게 생기지 않을까 싶다.

난 아무 준비 없이 사망년이 된, 아니 취업 준비도 안 해서 사망년이 될 자격도 없는 삼 학년이다. 그래도 떳떳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찾아가며 즐겁게 지내는 중이기 때문이다. 보험만 드는 인생에서 벗어나 그 비용으로 투자하는 인생을 살고 있달까. 지금의 선택이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소모적인 행동인 것 같지만 진짜 소모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아는 것일 테다. 무엇을 선택했든 그 일도 언젠간 쓰일 밑거름이 되겠지. 그러니 사망년들이여, 이미 보험은 충분히 챙기셨을 것 테니, 하고 싶은 일에도 투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됩시다!  


[893호 - 20's voice]

Writer 독자 최윤솔 yunsol0101@gmail.com  
#20's voice#에세이#인생
댓글 0
닉네임
비슷한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