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이제부터 당신은 여름을 좋아하게 됩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여름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뭐야?” 친구들에게 종종 질문한다. 보통은 꽃이 피는 봄과 서정적인 가을이 좋다고들 답한다. 나 역시 벚꽃을 좋아하기에 봄을 좋아한다. 그런데 최악을 꼽아보라 하면 어쩐지 모두가 같은 계절을 말한다. 바로 여름이다.
한국의 여름을 떠올려보자. 덥고 습하며, 끈적거리고, 지독한 땀 냄새가 난다. 쓸데없이 코가 예민한 나는 그런 여름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장마철이 되면 나의 ‘여름 혐오’는 더욱 심해졌다. 여름을 싫어했던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봄이 끝난 후 찾아오는 계절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봄을 뺏긴 듯한 기분이 들어, 괜히 억울하기도 하고. 실재하지도 않는 여름을 그렇게나 미워했다.
그런 여름에 빠지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여름을 혐오하는 2n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던 초여름이었을 거다. 후텁지근해지기 시작한 나날 속, 대학가 옷 가게에서 옷을 뒤적이며 친구에게 좋아하는 계절을 물었다. 그 친구는, 여름이 좋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친구에게 물었을 때,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여름 옷이 예쁘거든.’이라고 말했다.
친구의 답변을 듣고 난 후로 나는 괜히 여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마치 앙숙인 남자 사람 친구가 나에게 장난친 걸 두고 뒷담화를 하다가 친구가 ‘그래도 걔 잘생겼잖아.’라고 말했을 때처럼 오묘한 기분이 됐다. ‘그런가? 그랬었나?’라는 생각도 들고. 그때부터 나는 여름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결정적 사건은 얼마 후 일어났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낮이 길어졌다. 더운 날씨 때문에 약속 시간은 해가 지기 시작하는 6시쯤이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에 가던 중이었다. 실수로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더운데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한 채 버스에서 내렸고,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계속 서 있었다. 그런데 왼편에 서 있던 아저씨 한 명이 나를 응시하는 기분이 들었다.
날 쳐다보나? 그렇잖아도 안 좋았던 기분은 낯선 시선에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곁눈질로 흘끗 보니, 그는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니었다. 아저씨의 시선은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여름의 서쪽 하늘에 닿아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하늘을 보는 순간, 나는 여름이 좋다던 친구가 떠올랐다. 트여있는 서쪽 하늘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하늘과 어울리지 않는 낯선 그 색이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을 계기로 여름과 사랑에 빠지고 나니 여름의 모든 게 좋아 보였다. 초여름이 되면 사과처럼 알알이 열리는 분홍 장미, 딱딱하고도 물렁물렁한 천도복숭아, 여름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잠실 나루에서 강변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 풍경, 몸을 가볍게 하는 민소매. 그렇게 나는 완전히 여름에 스며들었다.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데, 나는 그 상황을 여름을 통해 알게 됐다. 전봇대 밑에서 본 참새 엉덩이도, 친구 코 위에 있는 점도, 수업 들을 때 보이는 학교 뒤편 나무들도. 모든 게 사랑스럽게 보였다. 싫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꽃밭으로 보이는 것이다. 더운 날씨에 늘 짜증을 냈던 내가, 무더운 여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오늘 아침, 장미꽃 잎이 바람에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봄은 끝나고, 어쩌다 빠지게 된 그 계절이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름은 여전히 인기 없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들이 여름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고? 친구의 무심한 말 덕분에 내가 여름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여름이 신경 쓰이기 시작할 테니까. 덥다고 짜증 내지만 말고, 여름의 새로운 면을 잘 찾아보길! ‘여름이 이랬나?’싶게 매력적인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자, 이제부터 당신은 여름을 좋아하게 됩니다!
한국의 여름을 떠올려보자. 덥고 습하며, 끈적거리고, 지독한 땀 냄새가 난다. 쓸데없이 코가 예민한 나는 그런 여름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장마철이 되면 나의 ‘여름 혐오’는 더욱 심해졌다. 여름을 싫어했던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봄이 끝난 후 찾아오는 계절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봄을 뺏긴 듯한 기분이 들어, 괜히 억울하기도 하고. 실재하지도 않는 여름을 그렇게나 미워했다.
그런 여름에 빠지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여름을 혐오하는 2n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던 초여름이었을 거다. 후텁지근해지기 시작한 나날 속, 대학가 옷 가게에서 옷을 뒤적이며 친구에게 좋아하는 계절을 물었다. 그 친구는, 여름이 좋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친구에게 물었을 때,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여름 옷이 예쁘거든.’이라고 말했다.
친구의 답변을 듣고 난 후로 나는 괜히 여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마치 앙숙인 남자 사람 친구가 나에게 장난친 걸 두고 뒷담화를 하다가 친구가 ‘그래도 걔 잘생겼잖아.’라고 말했을 때처럼 오묘한 기분이 됐다. ‘그런가? 그랬었나?’라는 생각도 들고. 그때부터 나는 여름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결정적 사건은 얼마 후 일어났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낮이 길어졌다. 더운 날씨 때문에 약속 시간은 해가 지기 시작하는 6시쯤이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에 가던 중이었다. 실수로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더운데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한 채 버스에서 내렸고,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계속 서 있었다. 그런데 왼편에 서 있던 아저씨 한 명이 나를 응시하는 기분이 들었다.
날 쳐다보나? 그렇잖아도 안 좋았던 기분은 낯선 시선에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곁눈질로 흘끗 보니, 그는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니었다. 아저씨의 시선은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여름의 서쪽 하늘에 닿아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하늘을 보는 순간, 나는 여름이 좋다던 친구가 떠올랐다. 트여있는 서쪽 하늘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하늘과 어울리지 않는 낯선 그 색이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을 계기로 여름과 사랑에 빠지고 나니 여름의 모든 게 좋아 보였다. 초여름이 되면 사과처럼 알알이 열리는 분홍 장미, 딱딱하고도 물렁물렁한 천도복숭아, 여름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잠실 나루에서 강변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 풍경, 몸을 가볍게 하는 민소매. 그렇게 나는 완전히 여름에 스며들었다.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데, 나는 그 상황을 여름을 통해 알게 됐다. 전봇대 밑에서 본 참새 엉덩이도, 친구 코 위에 있는 점도, 수업 들을 때 보이는 학교 뒤편 나무들도. 모든 게 사랑스럽게 보였다. 싫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꽃밭으로 보이는 것이다. 더운 날씨에 늘 짜증을 냈던 내가, 무더운 여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오늘 아침, 장미꽃 잎이 바람에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봄은 끝나고, 어쩌다 빠지게 된 그 계절이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름은 여전히 인기 없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들이 여름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고? 친구의 무심한 말 덕분에 내가 여름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여름이 신경 쓰이기 시작할 테니까. 덥다고 짜증 내지만 말고, 여름의 새로운 면을 잘 찾아보길! ‘여름이 이랬나?’싶게 매력적인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자, 이제부터 당신은 여름을 좋아하게 됩니다!
[895호 - 20's voice]
Writer 신지호 ssin213@naver.com
#20's voice#에세이#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