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일상의 무게를 지탱하는 법

조금 덜 긴장하고 힘을 빼도, 일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하철역 플랫폼에 섰다.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모습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눈에 띄는 건 살짝 올라간 왼쪽 어깨. 의식한 것도 아닌데, 왼쪽 어깨는 분명 오른쪽 어깨에 비해 조금 더 힘이 들어가 있다. 고작 가벼운 에코백 하나 메고 다닐 뿐인데, 그 무게감이 의외로 꽤 나가는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가방 안엔 별로 든 것도 없다. 사람들과 연락은 닿아야 하니까 휴대폰이 있고, 움직이면 다 돈이니 지갑도 있다. 심심함을 달래줄 이어폰도 있고, 필통과 작은 다이어리도 있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해 챙겨 다니는 작은 우산도 하나 있다. 최소한의 것만 챙겼는데도 가방은 꽤 묵직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이런저런 모양의 가방을 다 들어봤다. 어른스러워 보이는 멋진 토트백, 전공 책부터 노트북까지 뭐든 다 들어가는 백팩, 어떤 옷에도 잘 어울리는 크로스 백…. 그렇지만 나의 선택을 받는 건 늘 에코백이었다. 외관은 소박해 보여도 가장 가벼워서 다른 가방들에 비해 내 어깨를 덜 짓누르기 때문에.  

그러나 에코백의 장점은 오직 들고 다닐 물건이 별로 없을 때에만 발휘됐다. 전공 책은 사물함에 넣고 다닌다고 쳐도, 코앞에 닥친 토익 시험 때문에 문제집이라도 좀 넣으려 하면 에코백 끈이 끊어질 듯 축 늘어졌다.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한 손에 두꺼운 책을 들고 다른 편 어깨에 가방을 메고 캠퍼스를 걷는 것도 잠깐이지…. 평소보다 짐이 많은 날은 그 가볍다는 에코백마저도 내 어깨를 짓눌렀다.
    
특별한 것도 신나는 것도 없는 날들이지만, 에코백 속에 담긴 소소한 일상이나마 유지하기 위해선 내 왼쪽 어깨는 늘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어깨를 살짝 올리고 다니지 않으면 가방 안에 든 모든 것들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젠 가방을 내려놓았을 때도 어깨가 조금 솟아있다. 계속 힘주고 있지 않아도 되는데, 뭐 그리 대단한 것을 해보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젠 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왼쪽 어깨의 부담을 덜어주려 가끔은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메보려고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잠깐이라도 힘을 빼려고 하면 가방이 슥 미끄러져버린다. 그동안 잘 버텨준 왼쪽 어깨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스크린도어에 비친 어깨의 평형을 맞추어 보기 위해 가방을 멘 왼쪽 어깨를 살짝 내려봤다, 가방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만. 예상외로 가방은 미끄러져 내리지 않았다. 핸드폰과 지갑, 이어폰, 다이어리와 우산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조금 힘을 뺐는데도 가방 안에 담긴 내 일상은 안전하구나.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밥을 사 먹을 수 있고, 지하철 안에서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때울 수 있다. 다행이다. 이젠 조금은 덜 긴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잠들기 전, 근육이 뭉쳐 뻐근한 왼쪽 어깨를 주물러본다. 내 하루하루를 책임지느라, 쉬는 게 익숙하지 않게 되어버린 어깨를 쓰다듬어본다. 내일이 되면 또 내 왼쪽 어깨는 다시 올라가겠지만, 이젠 가끔씩 힘을 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덜 긴장하고 힘을 빼도, 내 일상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900호 - 20's voice]

writer 독자 이소라 stella998@naver.com    
#20's voice#에세이#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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