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잘 쉬는 것도 능력이라는 걸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달리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휴학이 두려웠다. 새내기 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스펙’, ‘취준’ 같이 나를 채찍질하는 소리만 들으며 살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잠깐이라도 멈추면 귀한 시간을 날리고 도태될 거라고 생각했다. 1분 1초라도 아껴야 한다는 강박에 휴학 같은 건 한 번도 꿈꾸지 못했다.  

그러다가 3학년 2학기 무렵 인턴에 합격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휴학을 하게 됐다. 한 학기를 멈춘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인턴이라는 스펙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휴학을 신청했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휴학이겠지만, 나처럼 일탈을 두려워하는 소심이들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휴학 신청 버튼을 누른 후에도 한참이나 고민을 했으니 말이다.  

“너 갭 이어(Gap year)가 필요해 보여.” 인턴 합격 덕에 억지 휴학을 하게 된 내게 친구가 말했다. 그 당시 난 쉬지 못하고 줄곧 달리느라 동기들보다 배로 지쳐 있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 해내는 일도 많았고, 얻어낸 성과도 다양했지만 그만큼 매 순간 스스로를 혹독하게 밀어붙였다. 그런 날 보고 안타까웠는지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잠시나마 일상에 쉼표를 찍는 ‘갭 이어’를 가져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친구는, 가능하다면 인턴 생활도 조금 미루고 한 학기를 온전히 쉬면 더 좋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인턴에 합격했으니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눌렀다. 갭 이어라는 말이 솔깃하긴 했지만, 그런 시간을 즐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꾸역꾸역 생애 첫 휴학을 일하는 데 다 써버렸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미처럼 열심히 일만 했다. 인턴 생활이 끝난 후에는 곧바로 복학해서 졸업 준비를 했다.  

졸업 논문부터 자격증 준비, 자기소개서 작성, 사이버 강의 수강까지…. 복학 후에도 쉴 새 없이 달리던 어느 날, 코피가 났다. 밥도 잘 안 챙겨 먹고 커피 몇 잔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결국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쉼 없이 달린 결과, 좋은 성적은 얻었지만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몸살이 났고, 자주 피곤했다. 그런데도 자취방에서 끙끙거리며 자기소개서를 썼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겁나서.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렸건만. 결과는 애석했다. 나와 달리 한 템포 쉬어가며 느긋하게 인생을 즐긴 선배들이 취업을 더 잘한 것이다. 그들은 나보다 천천히 걸어왔음에도 결과적으론 내가 더 뒤처져 있었다. 이게 웬 모순이란 말인가. 억울한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결과가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걸까. 선배들이 휴학하고 놀 동안 나는 열심히 버티고 일했는데, 너무 불공평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너 그거 알아? 잘 쉬는 것도 능력이야.”  

내 하소연을 한참 듣던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휴식을 취하고 잘 쉬어가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생의 중요한 과정이라는 말이었다. 멀리서 보면 마냥 쉬어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쉬는 동안에도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얻는다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휴학을 하고 갭 이어를 갖는 거라고.  

인생이란 달리기에서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달리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더 잘 뛰기 위해 숨을 고르고 도약을 준비하는 시간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용기를 내 갭 이어에 도전했다. 무작정 쉰다는 것이 마냥 두렵고 겁났지만, 힘을 빼야 물 위에 뜰 수 있듯, 어깨에 잔뜩 실린 긴장을 풀어보기로 했다. 인생을 좀 더 유유히 즐길 수 있도록.  

갭 이어 초보자이다 보니, 이따금씩 불쑥불쑥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에만 있었다면 배울 수 없었을 소중한 것들을 열심히 배워가는 중이다. 나처럼 쉬는 걸 두려워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꼭 한 템포 쉬어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부디 나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말라고 말이다. 갭 이어와 휴식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니 부디 겁내지 말자. 경험 상 잠깐 쉬어간다고 남들보다 뒤처지고 밀리는 거, 절대 아니더라.   

[901호 - 20's voice]

writer 독자 김정예 ownk@hanmail.net  
#20's voice#에세이#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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