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전국의 투덜이들이여, 불평은 하루 3개만

뭐든 맛있게 먹는 사람하고 먹어야 맛있듯이 인생도
주변에 이런 사람 한 명쯤은 다 있잖아요? 

요즘 들어 안 그래도 없던 친구가 더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기분 탓이면 좋겠지만 실제로 약속도 부쩍 줄었다. 돌이켜 보니 즐겁지 않은 밥약, 원치 않는 술자리에 가지 않기로 결정하고부터인 듯하다. 기준은 비교적 단순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더 다운돼버리게 만드는 자리나 사람과는 점차 거리를 두고 있다. 내가 가진 하루 치 기운은 간장 종지만큼 작아서 그런 만남에 기가 빨리고 나면 나를 위해 쓸 에너지가 없더라.  

자기 삶을 과시하는 사람, 상대방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도 피곤하지만, 기껏 챙겨 나간 에너지가 바닥까지 탈탈 떨어져서 돌아올 때는 불평이 많은 사람을 만났을 때다. 그런 만남 뒤엔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 다 칙칙해 보인다. 잘 잊고 사는 줄 알았던 지난 불행이 엉킨 빨래처럼 딸려 나오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 뭐 하나 싶기도 하고, 인생에 남아 있는 즐거움은 도무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맙소사. 남의 불평을 들어주다 내 인생을 비관하게 되다니. 이런 에너지 낭비가 따로 없다.  

가까운 친구의 불행을 들은 체 만 체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현재에 타당한 불만을 느끼는 사람이 변화를 만드는 것도 맞다. 하지만 뱉는 말마다 부정적이어서 가만 듣다 보면 ‘저 사람은 결국 어디서 뭘 하든 불평이겠구나’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과는 결국 거리를 두게 된다. 왜? 나도 피곤하니까. 부정적인 기운이란 전염성이 강해서 금세 곁에 있는 사람에게로 옮겨 와버린다.  

식사도 여행도, 좋은 말 하는 사람하고 해야 더 좋다 

물론 내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스님도 아닌데 정기적인 속풀이야 필요하다. 편한 친구를 만나 최근의 스트레스 거리를 한바탕 털어놓고 나면 개비스콘 아저씨처럼 속이 편해진다. 스트레스를 얘기해야 스트레스가 풀리다니, 이것 역시 현대인의 업보인 걸까.  

아무튼 술자리에선 늘 회사나 가족이 차곡차곡 적립해준 스트레스를 성토하고, 주변의 이상한 사람들 얘기가 한 순배 돌고 나야 다들 속이 좀 시원해진 표정을 짓는다. 그런 뒤엔 아주 잠깐 침묵이 깃든다. 아니, 우리가 욕하려고 만난 사이도 아닌데 왜 이런 얘기만 하고 있지? 싶은 것이다. 예전엔 곧 여행 갈 곳에 대한 얘기, 최근의 설레었던 일 같은 것도 함께 나누곤 했었는데.
    
일주일 전 술자리에선 이런 얘기 끝에 친구 한 명이 “자, 이제 좋은 일도 하나씩 돌아가면서 얘기하자!” 했는데, 결과는? 뻔하다. 뭘 얘기해야 할지 몰라 동그란 폭탄을 들고 있는 퀴즈 프로그램 출연자들처럼 서로 차례를 양보해댔다. 좋은 일을 얘기하는 데도 역시 연습이 필요한 걸까. 내 인생의 습한 자리에 우산이끼처럼 자라나는 불행들만 돋보기로 확대해서 들여다보고 있으니, 볕 잘 드는 자리에 어떤 기쁨들이 있었는지는 자꾸 잊고 살게 된다.  
음식은 뭐든 맛있게 먹는 사람하고 같이 먹어야 더 맛있듯이 인생도 마찬가지다. 좋은 얘기를 하는 사람하고 있어야 즐겁다. 여행을 가면 이런 차이는 더 두드러지지 않던가. 어디서든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할 포인트를 찾아내며 ‘여기가 아닌 다른 곳’ ‘이것이 아닌 다른 선택’이었더라면 좋았을 거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디서든 쉽게 좋은 점을 찾아내며 오늘의 여행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후자와 여행할 때의 기억이 훨씬 좋다.  
 
그러니까 짜증을 내어-서어- 무얼 하아-나아   

한때는 나도 불만 자판기 같던 시절이 있었다(지금도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누르면 나오긴 하니까). 어느 순간엔 내가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줄여가기로 했을 뿐이다. 같이 사는 사람이 “하루에 불만은 3개로 한다”라는 ‘불만 제한령’을 발효한 게 약간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불평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데 쓰는 것도 결국 아까운 내 인생의 에너지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달의 어두운 면 같은 곳만 평생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고, 될 수 있으면 밝은 면을 찾으며 살려 하는 사람이 있다. 인생은 결국 초점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불행에 초점을 맞추면 나는 늘 운이 없고, 내 인생은 되는 게 없는 인생 같지만 알다시피 인생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안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주변을 부정적인 에너지로 어두워지게 하는 사람보다야 기분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어 하루를 보내는 게 낫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얘기를 나누고 돌아올 때 나 역시 좋은 시간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그래서 일찍이 지혜로운 인디언들은 이런 말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투덜대면 투덜대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것이다. 삶이 가치 없다고 믿는다면 항상 가치 없는 증거를 발견할 것이다. 너의 생각이 너의 세계다. - 인디언의 말, 주니 족 ‘습관’

[902호 - think] 

Illustrator 강한

#902호#에세이#긍정적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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