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내가 커피 값을 아껴 잡지를 사는 이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웃음을 지었을 거라
다시 그를 만날 줄 몰랐다. 그와의 첫 만남은 여의도역 5번 출구 앞이었다. 여의도역은 사람들로 늘 북적거렸다. 특히 퇴근 시간에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입장권만 안 끊었을 뿐 아이돌 콘서트장 입구처럼 줄을 서야만 지하철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디서 단체복이라도 맞추는 것인지, 사람들은 모두 네이비 색 아니면 흰색 혹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이런 무채색의 행렬을 멀리서 지켜보면 꼭 장으로 들어가는 유산균 같았다. 그 광경 앞에 나는 유산균 음료 광고에 등장하는 유산균처럼 ‘랄라~라~라~’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그때, 무채색 유산균들 속에서 그를 발견했다. 마치 조개 속에 있는 진주처럼 예상치 못한 발견이었다. 그는 잡지 판매원이었다. 그가 내 시선을 끈 이유는 화려한 의상과 매력적인 목소리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어쩔 수 없이 무채색 유산균 대열에 합류해 있었지만, 실은 화려한 옷을 더 좋아했다. 그가 입은 유니폼인 빨간 모자와 조끼는 황야를 누비는 적토마처럼 보였다. 종일 무채색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무채색 아닌 것이 너무 그리웠다.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적토마처럼 달리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옷도 옷이지만 그의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었다. “안녕하세요. OO 잡지입니다.” 이 두 문장만 구사하는데도 불구하고 귀에 또렷하게 남았다. 중저음의 목소리, 일정한 톤과 억양을 항상 유지했다. 그 모습이 마치 메트로놈 같았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가 라디오 DJ를 했다면 배철수 정도로 명성을 날리지 않았을까.
그를 다시 만난 건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신촌역 앞에서였다. 당시 나는 신촌에서 영화에 대한 수업을 받고 있었다. 단골 가게가 없어지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선 신촌의 풍경이 낯설어서 어색해하던 찰나에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몇 년 전까지 신촌역 부근에서 소음을 담당하던 공사장은 사라졌고 대신 그가 잡지를 손에 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지난 시간이 무색하게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그대로였다. 소녀 팬이 애 엄마가 되어서 10년 만에 열리는 아이돌 그룹 콘서트에 참가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펜만 있었으면 그에게 사인이라도 받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그와 도란도란 앉아서 그간의 우여곡절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반가운 마음을 봉준호 감독이 표지 속에서 웃고 있는 잡지 한 권 사는 것으로 표현했다.
최근에 그를 다시 만났다. 만남으로 치면 세 번째다. 이번에는 전보다 용기를 내어 친근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여의도역 아저씨 아니세요? 오랜만이에요.” 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5,000원을 살포시 건네면서 저번에 책 사서 잘 읽었다는 말도 건넸다. 그러곤 인사를 한 뒤 돌아섰는데 7살 꼬맹이가 엄마한테 장난칠 때처럼 그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메트로놈같이 일정하던 톤에서 미세한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한때 연구했던 사람으로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늘 덤덤했던 그가 아마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을 거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산 잡지 판매금의 절반이 판매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하더라. 뿐만 아니라 6개월 이상 근속한 판매원들은 임대주택 입주도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아낀 커피 한 잔 값이 여의도역 아저씨의 편히 쉴 공간의 한 평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이번 겨울에는 가슴속에 붕어빵을 사기 위한 삼천원 대신 오천원을 품고 다녀야겠다.
입장권만 안 끊었을 뿐 아이돌 콘서트장 입구처럼 줄을 서야만 지하철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디서 단체복이라도 맞추는 것인지, 사람들은 모두 네이비 색 아니면 흰색 혹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이런 무채색의 행렬을 멀리서 지켜보면 꼭 장으로 들어가는 유산균 같았다. 그 광경 앞에 나는 유산균 음료 광고에 등장하는 유산균처럼 ‘랄라~라~라~’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그때, 무채색 유산균들 속에서 그를 발견했다. 마치 조개 속에 있는 진주처럼 예상치 못한 발견이었다. 그는 잡지 판매원이었다. 그가 내 시선을 끈 이유는 화려한 의상과 매력적인 목소리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어쩔 수 없이 무채색 유산균 대열에 합류해 있었지만, 실은 화려한 옷을 더 좋아했다. 그가 입은 유니폼인 빨간 모자와 조끼는 황야를 누비는 적토마처럼 보였다. 종일 무채색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무채색 아닌 것이 너무 그리웠다.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적토마처럼 달리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옷도 옷이지만 그의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었다. “안녕하세요. OO 잡지입니다.” 이 두 문장만 구사하는데도 불구하고 귀에 또렷하게 남았다. 중저음의 목소리, 일정한 톤과 억양을 항상 유지했다. 그 모습이 마치 메트로놈 같았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가 라디오 DJ를 했다면 배철수 정도로 명성을 날리지 않았을까.

그를 다시 만난 건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신촌역 앞에서였다. 당시 나는 신촌에서 영화에 대한 수업을 받고 있었다. 단골 가게가 없어지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선 신촌의 풍경이 낯설어서 어색해하던 찰나에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몇 년 전까지 신촌역 부근에서 소음을 담당하던 공사장은 사라졌고 대신 그가 잡지를 손에 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지난 시간이 무색하게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그대로였다. 소녀 팬이 애 엄마가 되어서 10년 만에 열리는 아이돌 그룹 콘서트에 참가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펜만 있었으면 그에게 사인이라도 받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그와 도란도란 앉아서 그간의 우여곡절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반가운 마음을 봉준호 감독이 표지 속에서 웃고 있는 잡지 한 권 사는 것으로 표현했다.
최근에 그를 다시 만났다. 만남으로 치면 세 번째다. 이번에는 전보다 용기를 내어 친근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여의도역 아저씨 아니세요? 오랜만이에요.” 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5,000원을 살포시 건네면서 저번에 책 사서 잘 읽었다는 말도 건넸다. 그러곤 인사를 한 뒤 돌아섰는데 7살 꼬맹이가 엄마한테 장난칠 때처럼 그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메트로놈같이 일정하던 톤에서 미세한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한때 연구했던 사람으로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늘 덤덤했던 그가 아마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을 거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산 잡지 판매금의 절반이 판매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하더라. 뿐만 아니라 6개월 이상 근속한 판매원들은 임대주택 입주도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아낀 커피 한 잔 값이 여의도역 아저씨의 편히 쉴 공간의 한 평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이번 겨울에는 가슴속에 붕어빵을 사기 위한 삼천원 대신 오천원을 품고 다녀야겠다.
[903호 - 20's voice]
writer 독자 금민수 kzc93@daum.net
#20's voice#에세이#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