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제1회 댕낼 백일장 에세이 부문 수상작
‘나의 20대’를 주제로 세 수상작들을 소개합니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대상
16학번 차우형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거창한 질문에 톨스토이는 천사 미카엘의 입을 빌려 답했다. 사랑. 그 질문의 답은 바로 사랑입니다. 틀렸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23살 청년은 돈으로 산다. 돈이 없으면 생수조차 마실 수 없는 것이 나의 삶이다. 사람이 사랑만으로 살 수 있다면, 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의아한 눈초리를 받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100원이 모자랐다. 내 검은색 추리닝 바지 주머니에 든 것은 학이 그려진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전부였다. 편의점에서 파는 얼음 컵에는 가격이 적혀 있지 않았다. 가장 작은 얼음 컵을 들고 카운터에서 지폐를 새던 직원에게 가격을 물어보았다. 600원이요. 원래 사려던 것은 제일 싼 500mL들이의 생수였다. 그것도 600원이었다. 비싼 삼다수를 사려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편의점 생수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편의점은 내 전 재산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멈춰 있던 나는 생수를 다시 집어 들었다. 직원이 당황했는지 작게 숨을 삼켰다. 나를 쳐다보는 직원의 눈이 왼쪽으로 넘긴 그의 머리카락 아래로 무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직 계산 안 하셨는데요.”
“다시 가져다 놓으려고요. 돈이 없어서….”
세상에는 표정을 꾸밀 줄 모르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 직원이 바로 그랬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600원도 없이 편의점에 들어서는 사람의 존재에 충격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생수를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고 GS25를 나섰다.
내 지갑은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반지하 방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고 나의 목구멍은 당장 물이 필요했다. 목이 말랐다. 나는 늘 갈증에 시달렸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나는 돈이 필요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지내야 할 때는 죄책감을 느꼈다. 나의 20대 초반은 그렇게 지나갔다.
GS25를 나와서 다른 편의점을 돌아다녔지만 가격은 전부 비슷했다. 어느새 땀이 식었고 몸이 차가워지자, 정신도 차가워졌다. 근처에는 편의점 점포가 즐비했고, 그중에는 같은 회사의 점포도 많았다. 그 광경에 문득 서글퍼졌다. 손님 수는 정해져 있는데 늘어만 가는 편의점. 새벽 늦도록 그 많은 편의점을 지키는 이들. 억지로 콩 한 쪽을 나눠 먹어야 하는 신세. 나만 갈증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들 돈이 필요했다. 답답했다. 억센 가시가 식도에 걸린 기분이었다.
살면서 수없이 느꼈던 좌절감이었다. 평소와 같이 그 좌절감을 억지로 묻어 두었다. 넘어가지 않는 생선 가시를 억지로 삼키듯이. 희망이 있기에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하지 않기 위해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돈이 없어도 사랑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가장 가난한 사람조차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 누구도 굶어 죽을 필요가 없는 세계에 살고 싶다. 나누기 위한 돈을 벌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돈으로 산다.
수상소감
부모님께서 저를 길러주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겠지요. 옆에 있어준 친구가 없었다면 많은 것을 갑작스럽게 놔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부족한 글이라도 써낼 수 있는 인간이 될 때까지 힘이 되어준 모든 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다른 사람이 제 글을 읽어준다는 것은 제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지리멸렬한 세상일지라도 죽지 않고 여러분과 함께 살아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상
16학번 차우형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거창한 질문에 톨스토이는 천사 미카엘의 입을 빌려 답했다. 사랑. 그 질문의 답은 바로 사랑입니다. 틀렸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23살 청년은 돈으로 산다. 돈이 없으면 생수조차 마실 수 없는 것이 나의 삶이다. 사람이 사랑만으로 살 수 있다면, 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의아한 눈초리를 받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100원이 모자랐다. 내 검은색 추리닝 바지 주머니에 든 것은 학이 그려진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전부였다. 편의점에서 파는 얼음 컵에는 가격이 적혀 있지 않았다. 가장 작은 얼음 컵을 들고 카운터에서 지폐를 새던 직원에게 가격을 물어보았다. 600원이요. 원래 사려던 것은 제일 싼 500mL들이의 생수였다. 그것도 600원이었다. 비싼 삼다수를 사려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편의점 생수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편의점은 내 전 재산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멈춰 있던 나는 생수를 다시 집어 들었다. 직원이 당황했는지 작게 숨을 삼켰다. 나를 쳐다보는 직원의 눈이 왼쪽으로 넘긴 그의 머리카락 아래로 무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직 계산 안 하셨는데요.”
“다시 가져다 놓으려고요. 돈이 없어서….”
세상에는 표정을 꾸밀 줄 모르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 직원이 바로 그랬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600원도 없이 편의점에 들어서는 사람의 존재에 충격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생수를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고 GS25를 나섰다.
내 지갑은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반지하 방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고 나의 목구멍은 당장 물이 필요했다. 목이 말랐다. 나는 늘 갈증에 시달렸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나는 돈이 필요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지내야 할 때는 죄책감을 느꼈다. 나의 20대 초반은 그렇게 지나갔다.
GS25를 나와서 다른 편의점을 돌아다녔지만 가격은 전부 비슷했다. 어느새 땀이 식었고 몸이 차가워지자, 정신도 차가워졌다. 근처에는 편의점 점포가 즐비했고, 그중에는 같은 회사의 점포도 많았다. 그 광경에 문득 서글퍼졌다. 손님 수는 정해져 있는데 늘어만 가는 편의점. 새벽 늦도록 그 많은 편의점을 지키는 이들. 억지로 콩 한 쪽을 나눠 먹어야 하는 신세. 나만 갈증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들 돈이 필요했다. 답답했다. 억센 가시가 식도에 걸린 기분이었다.
살면서 수없이 느꼈던 좌절감이었다. 평소와 같이 그 좌절감을 억지로 묻어 두었다. 넘어가지 않는 생선 가시를 억지로 삼키듯이. 희망이 있기에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하지 않기 위해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돈이 없어도 사랑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가장 가난한 사람조차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 누구도 굶어 죽을 필요가 없는 세계에 살고 싶다. 나누기 위한 돈을 벌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돈으로 산다.
수상소감
부모님께서 저를 길러주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겠지요. 옆에 있어준 친구가 없었다면 많은 것을 갑작스럽게 놔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부족한 글이라도 써낼 수 있는 인간이 될 때까지 힘이 되어준 모든 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다른 사람이 제 글을 읽어준다는 것은 제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지리멸렬한 세상일지라도 죽지 않고 여러분과 함께 살아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답할 수 있는 질문
최우수상
16학번 김준수
만일 나에게 강인함이라는 것이 한 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분명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군가에게 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어느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미뤄 왔던 것이다. “질문에 대한 적당한 대답은 언제나 나중에 떠오른다”와 비슷한 말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했던가. 지금이 그 대답을 해야 할 때, 그러니까 적당한 대답이 떠오른 시점이 아닌가 싶다. 내가 답해야 하는 질문은 “이혼 가정이라는 환경 속 자녀로서의 삶은 어떠했나”이다.
지난 과거를 되짚어보면 이혼 가정에서의 삶치고는 평범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혼에 대해 통념처럼 여겨지는 어두운 단면들을 목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혼 가정의 모습이 여러 가지일 것이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집은 이혼의 아픔을 최소화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이 있었고, 그로 인해 최악의 상황 같은 것은 모면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두 사람이 이혼을 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더 이상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사이에 긴장감이 생기는 말을 주고받으면 공기부터 달라졌던 기억이 있다. 숨이 턱 막히고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말싸움이 벌어지는 바로 그 공간에서 벗어나면 편안함을 찾은 것 같다가도, 주위의 모든 것이 불안한 가족을 비유하고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엌에서 치워지지 않은 그릇들을 보면 저게 저렇게 어지럽게 쌓여서 우리 집이 그런가 싶어 재빨리 설거지를 하게 되고, 화장실에는 칫솔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를 살피게 됐다. 두 사람의 칫솔모가 서로를 보고 있는지, 아니면 서로 반대편을 보고 있는지를 말이다.
칫솔모가 서로를 등지고 있으면, 어린 마음에 혹시나 사이가 좋아질까 싶어 방향이 서로를 향하게 해두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가족의 화목을 쌓으려는 작은 소원들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적어도 이혼 후에는 나에게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으니, 두 사람이 먼 거리에서 응원하는 관계가 된 것이 어쩌면 나에게도 다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20대의 중간 지점에서야 적절한 대답이 떠오른 것은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돼서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이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이혼이라는 사건과 내 존재가 별개라는 것을 안다. 나에게 이혼은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이 중요한 시점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엄마가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한 번 홀로서기를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 20대는 엄마의 홀로서기와 함께한다. 나는 그녀를 응원한다. 언젠가 엄마는 내가 자신과는 다르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면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기력해지기에도 충분한 마당에, 자녀가 자신이 걸었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희망을 보는 엄마가 나는 여전히 놀랍다.
만일 나에게 강인함이라는 것이 한 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분명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다. 대학 새내기가 됐을 때, 많은 가능성에 취해서 엄마에게 든든한 나무가 돼주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다. 평범한 삶이 꿈이 돼버린 요즘,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지만 그 마음만큼은 언제나 간직하고 있으리란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믿음 그 이상의 것을 엄마에게 주고 싶다. 그렇게 홀로서기의 두려움을 덜어주고 싶다.
수상소감
월요일마다 학교에 가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학내일’을 집으로 가져오는 일입니다. 독자들이 기고한 에세이를 읽으며 나도 글을 써서 보내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것은 생각뿐이어서 졸업 전에 보낼 수는 있을까 싶었습니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는 때가 있듯이 삶에서도 무슨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가 있나 봅니다. 대학내일의 스무 살과 함께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나와 당신의 홀로서기를 응원합니다.
최우수상
16학번 김준수
만일 나에게 강인함이라는 것이 한 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분명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군가에게 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어느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미뤄 왔던 것이다. “질문에 대한 적당한 대답은 언제나 나중에 떠오른다”와 비슷한 말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했던가. 지금이 그 대답을 해야 할 때, 그러니까 적당한 대답이 떠오른 시점이 아닌가 싶다. 내가 답해야 하는 질문은 “이혼 가정이라는 환경 속 자녀로서의 삶은 어떠했나”이다.
지난 과거를 되짚어보면 이혼 가정에서의 삶치고는 평범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혼에 대해 통념처럼 여겨지는 어두운 단면들을 목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혼 가정의 모습이 여러 가지일 것이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집은 이혼의 아픔을 최소화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이 있었고, 그로 인해 최악의 상황 같은 것은 모면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두 사람이 이혼을 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더 이상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사이에 긴장감이 생기는 말을 주고받으면 공기부터 달라졌던 기억이 있다. 숨이 턱 막히고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말싸움이 벌어지는 바로 그 공간에서 벗어나면 편안함을 찾은 것 같다가도, 주위의 모든 것이 불안한 가족을 비유하고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엌에서 치워지지 않은 그릇들을 보면 저게 저렇게 어지럽게 쌓여서 우리 집이 그런가 싶어 재빨리 설거지를 하게 되고, 화장실에는 칫솔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를 살피게 됐다. 두 사람의 칫솔모가 서로를 보고 있는지, 아니면 서로 반대편을 보고 있는지를 말이다.
칫솔모가 서로를 등지고 있으면, 어린 마음에 혹시나 사이가 좋아질까 싶어 방향이 서로를 향하게 해두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가족의 화목을 쌓으려는 작은 소원들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적어도 이혼 후에는 나에게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으니, 두 사람이 먼 거리에서 응원하는 관계가 된 것이 어쩌면 나에게도 다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20대의 중간 지점에서야 적절한 대답이 떠오른 것은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돼서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이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이혼이라는 사건과 내 존재가 별개라는 것을 안다. 나에게 이혼은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이 중요한 시점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엄마가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한 번 홀로서기를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 20대는 엄마의 홀로서기와 함께한다. 나는 그녀를 응원한다. 언젠가 엄마는 내가 자신과는 다르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면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기력해지기에도 충분한 마당에, 자녀가 자신이 걸었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희망을 보는 엄마가 나는 여전히 놀랍다.
만일 나에게 강인함이라는 것이 한 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분명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다. 대학 새내기가 됐을 때, 많은 가능성에 취해서 엄마에게 든든한 나무가 돼주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다. 평범한 삶이 꿈이 돼버린 요즘,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지만 그 마음만큼은 언제나 간직하고 있으리란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믿음 그 이상의 것을 엄마에게 주고 싶다. 그렇게 홀로서기의 두려움을 덜어주고 싶다.
수상소감
월요일마다 학교에 가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학내일’을 집으로 가져오는 일입니다. 독자들이 기고한 에세이를 읽으며 나도 글을 써서 보내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것은 생각뿐이어서 졸업 전에 보낼 수는 있을까 싶었습니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는 때가 있듯이 삶에서도 무슨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가 있나 봅니다. 대학내일의 스무 살과 함께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나와 당신의 홀로서기를 응원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미팅하실?
우수상
18학번 김찬효
주위에선 우리를 보며 미쳤다고 말했잖아. 그들 입장에서 놀기만 하는 새내기는 멸종된 지 오래였고, 우리는 도태된 생물 종이었던 거지.
미팅팟에게 “Bad Choices Make Good Stories.” 내 대학 생활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거야. 동묘에서 주워온 어느 싸구려 티셔츠에 적혀 있던 문구다 보니 값싼 개똥철학이라며 너흰 웃어넘기곤 했지. 그 셔츠를 입고 다닐 때야 몰랐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명언인 것 같아.
미치게 살아보라는 대숲 글을 친구들이 공유하기 시작하던 새내기 시절, 나는 미쳐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어. 몰두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사랑하는 것에 흐름을 맡길 때 가능하지만, 우리 모두 잘못된 선택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고 생각했지. 사람들은 고민을 부추기던 교육 과정의 관성으로 대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단 채 권태와 소소한 일탈 사이를 줄타기했어.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말이야.
그러던 중 너희를 만났어. 생각해보면 미팅에 미쳐있다는 것 외에는 전공도, 성격도, 좋아하는 술도 모두 달랐었네. 처음에 누군가 목표가 미팅 30회 나가기라고 말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는 카톡방을 만들었고, 홀린 듯 약속을 잡기 시작했어. 좋은 인연을 만나겠다는 기대를 처음에야 많이 했지만, 나중에는 우리 넷이 함께 모르는 사람들과 술 마시는 것 자체가 행복하더라고.
계절은 어느새 가을이 되었고, 우리는 대부분 목표치를 채우고야 말았지. 진짜 미쳐있었던 거야. 딱 서른 번째 미팅이 파하고 얼큰하게 취한 우리는 건대입구 앞 어느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을 홀짝대기 시작했어. 실실 웃고,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거야. ‘이제 뭐 하지?’ 주위에선 우리를 보며 미쳤다고 말했잖아. 그들 입장에서 놀기만 하는 새내기는 멸종된 지 오래였고, 우리는 도태된 생물 종이었던 거지.
그 후 애인이 생겨서, 혹은 가벼운 만남에 환멸을 느껴서 우리는 ‘미팅 없는 미팅팟’이 되어버렸어. 그 상태로 오랜만에 재회했을 때, 나 너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취직하기에 턱도 없는 학점을 선고받고 우리 추억들을 조금은 후회했거든. 근데 너희들의 근황을 듣고 나니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 한 번 미쳐봤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음악, 사랑 등 각자의 무언가에 계속 미친 상태라는 게 한결같았거든.
나는 글쓰기에 푹 빠져 있었어. 단편을 꽤 여러 편 썼는데 꼭 소재는 너희와 함께한 추억이었단 말이지. 그럴수록 쌀쌀해서 옷장 어딘가에 구겨 넣었을 법한 그 옷의 문구가 다시 아른거리더라. 나쁜 선택에 후회할 필요가 없어! 내가 한 선택이 꼭 최선은 아니어도 너희와 웃고 떠들기 위한 썰을 만들기엔 충분하니까.
이미 알지? 나 아프리카로 떠난 거. 남들 입대하거나 고시 준비할 시기에 미쳤냐는 얘기 많이 들었어. 전기가 새벽에만 들어오는 탓에 발전기를 돌리고, 한밤중에 물을 길어서 머리를 감으니 후회가 밀려오기도 해. 그러던 중 우리가 했던 얘기를 떠올려 봤어.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글로벌하게 미팅해보자고 했잖아.
나 아프리카에서 미팅 진짜 많이 해. 물론 업무 미팅이긴 한데, 내가 좋아하는 일에 미치다 보니 발로 뛰어가며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파트너를 찾아가는 중이야. 그 미팅이 아니라서 실망했겠지만 그래도 나 참 한결같지? 너희 2월에 놀러 온다며? 잘 선택했어. 분명 난 그때까지 후회할 선택을 할 테고, 어쩌면 아프리카로 뜬금없이 와버린 것 자체를 후회할지도 몰라. 그래도 너희 오면 술 한 잔과 함께할 재밌는 안줏거리는 필요하잖아. 열심히 선택하며 기다리고 있을게.
-선택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미팅팟 회원이
수상소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들 하지만, 선택 하나하나를 기억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친구들과의 첫 만남,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끊은 날, 첫 공모전에 운 좋게 수상하여 소감을 쓰는 지금과 같은 순간들은 이정표로 선명히 기억에 남겠죠. 졸작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제 친구들 일선, 준엽, 한주, 승원, 그리고 거리에 무관하게 함께 있는 유진, 지현 정말 사랑합니다. 이정표들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고, 그 역할은 글쟁이의 것이라 믿기에 한결같이 글 쓰는 김찬효 되겠습니다.
우수상
18학번 김찬효
주위에선 우리를 보며 미쳤다고 말했잖아. 그들 입장에서 놀기만 하는 새내기는 멸종된 지 오래였고, 우리는 도태된 생물 종이었던 거지.

미팅팟에게 “Bad Choices Make Good Stories.” 내 대학 생활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거야. 동묘에서 주워온 어느 싸구려 티셔츠에 적혀 있던 문구다 보니 값싼 개똥철학이라며 너흰 웃어넘기곤 했지. 그 셔츠를 입고 다닐 때야 몰랐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명언인 것 같아.
미치게 살아보라는 대숲 글을 친구들이 공유하기 시작하던 새내기 시절, 나는 미쳐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어. 몰두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사랑하는 것에 흐름을 맡길 때 가능하지만, 우리 모두 잘못된 선택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고 생각했지. 사람들은 고민을 부추기던 교육 과정의 관성으로 대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단 채 권태와 소소한 일탈 사이를 줄타기했어.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말이야.
그러던 중 너희를 만났어. 생각해보면 미팅에 미쳐있다는 것 외에는 전공도, 성격도, 좋아하는 술도 모두 달랐었네. 처음에 누군가 목표가 미팅 30회 나가기라고 말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는 카톡방을 만들었고, 홀린 듯 약속을 잡기 시작했어. 좋은 인연을 만나겠다는 기대를 처음에야 많이 했지만, 나중에는 우리 넷이 함께 모르는 사람들과 술 마시는 것 자체가 행복하더라고.
계절은 어느새 가을이 되었고, 우리는 대부분 목표치를 채우고야 말았지. 진짜 미쳐있었던 거야. 딱 서른 번째 미팅이 파하고 얼큰하게 취한 우리는 건대입구 앞 어느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을 홀짝대기 시작했어. 실실 웃고,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거야. ‘이제 뭐 하지?’ 주위에선 우리를 보며 미쳤다고 말했잖아. 그들 입장에서 놀기만 하는 새내기는 멸종된 지 오래였고, 우리는 도태된 생물 종이었던 거지.
그 후 애인이 생겨서, 혹은 가벼운 만남에 환멸을 느껴서 우리는 ‘미팅 없는 미팅팟’이 되어버렸어. 그 상태로 오랜만에 재회했을 때, 나 너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취직하기에 턱도 없는 학점을 선고받고 우리 추억들을 조금은 후회했거든. 근데 너희들의 근황을 듣고 나니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 한 번 미쳐봤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음악, 사랑 등 각자의 무언가에 계속 미친 상태라는 게 한결같았거든.
나는 글쓰기에 푹 빠져 있었어. 단편을 꽤 여러 편 썼는데 꼭 소재는 너희와 함께한 추억이었단 말이지. 그럴수록 쌀쌀해서 옷장 어딘가에 구겨 넣었을 법한 그 옷의 문구가 다시 아른거리더라. 나쁜 선택에 후회할 필요가 없어! 내가 한 선택이 꼭 최선은 아니어도 너희와 웃고 떠들기 위한 썰을 만들기엔 충분하니까.
이미 알지? 나 아프리카로 떠난 거. 남들 입대하거나 고시 준비할 시기에 미쳤냐는 얘기 많이 들었어. 전기가 새벽에만 들어오는 탓에 발전기를 돌리고, 한밤중에 물을 길어서 머리를 감으니 후회가 밀려오기도 해. 그러던 중 우리가 했던 얘기를 떠올려 봤어.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글로벌하게 미팅해보자고 했잖아.
나 아프리카에서 미팅 진짜 많이 해. 물론 업무 미팅이긴 한데, 내가 좋아하는 일에 미치다 보니 발로 뛰어가며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파트너를 찾아가는 중이야. 그 미팅이 아니라서 실망했겠지만 그래도 나 참 한결같지? 너희 2월에 놀러 온다며? 잘 선택했어. 분명 난 그때까지 후회할 선택을 할 테고, 어쩌면 아프리카로 뜬금없이 와버린 것 자체를 후회할지도 몰라. 그래도 너희 오면 술 한 잔과 함께할 재밌는 안줏거리는 필요하잖아. 열심히 선택하며 기다리고 있을게.
-선택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미팅팟 회원이
수상소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들 하지만, 선택 하나하나를 기억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친구들과의 첫 만남,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끊은 날, 첫 공모전에 운 좋게 수상하여 소감을 쓰는 지금과 같은 순간들은 이정표로 선명히 기억에 남겠죠. 졸작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제 친구들 일선, 준엽, 한주, 승원, 그리고 거리에 무관하게 함께 있는 유진, 지현 정말 사랑합니다. 이정표들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고, 그 역할은 글쟁이의 것이라 믿기에 한결같이 글 쓰는 김찬효 되겠습니다.
[904호 -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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