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시험 기간에 읽는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

내 삶의 입체성과 야생성에 실망하고 안도한다
“인생은 다음 두 가지로 성립된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다.” 
- 괴테   

인간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에 하지 못한다는 뜻을 담은 이 문장은 우리의 삶을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언제는 안 그랬던가. 매일이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똑같아 보일 때, 간절히 바다를 그리워하면서도 수업 때문에 기숙사와 강의실만 오가는 내 처지가 싫었다.  

학기가 끝나고, 그렇게 고대하던 방학이 시작됐는데 이번엔 집에서 뒹굴기만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들 사이에서 헤메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불행을 사랑한다. 모순이라 해도 좋다. 평소에 즐기지도 않던 것들이 불쑥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 해야 할 일이 가장 분명한 순간에 고개를 쳐드는 욕구와 당면할 때, 나는 내 삶의 입체성과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에 실망하고 또 안도한다.  

중간고사를 3일 남기고 도서관에서 시험과 무관한 소설을 읽는 행위 또한 그러하다. 왜 시험 기간이 가까울수록 전공 책 대신 문학 서적에 끌리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도서관보다 자습실의 기능에 더 충실한 건물에서 독서에 몰두하는 일은 일종의 일탈이며, 일탈이야말로 삶의 유쾌함을 낳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시험 기간 동안 책을 읽으며 도서관의 건립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홀로 분투하는 마지막 독자의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곤 그 어처구니없는 발상에 혼자서 웃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이 내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라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괴테가 한 말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 때문에 자꾸 미루다간 정말로 할 수 있을 때 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살면서 재미없는 것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열일곱 때였으니 3년간 건실한 개인주의자이자 쾌락주의자로 나름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셈이다(바꿔 말해 하기 싫은 것을 안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셈이다). 그 발칙한 노력의 결과를, 나는 중간고사를 3일 남기고 한가하게 책을 파다가 이런 글이나 끄적이는 내 모습에서 확인한다.  

자랑할 대상도 없지만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발상이 빈약한 누군가가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책이나 읽는 게 아니냐고 딴죽을 건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들보다는 내가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정신승리를 해본다.  

도서관을 나와 처음 가본 카페에서 ‘벚꽃 라떼’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와 딸기우유를 섞어 만들었다는데, 커피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에게 맞춤할 정도로 적당히 쓰고 달았다. 사실 인생의 맛은 얼마나 쓴가.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면, 나에게 남은 몫은 너무 늦기 전에 그 위에 딸기우유라도 붓는 것 정도일 것이다. 창밖에 사람들은 또 분주히 어딘가로 떠나고, 나만 남아서 책장을 넘긴다. 벚꽃 라떼를 한 모금 삼키며, 나름대로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했다.   

[907호 - 20's voice]

writer 독자 김유근 dbrms1012@naver.com
#20's voice#20대 에세이#시험기간에 읽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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