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어쩌다 발견한 대학 생활

벗어나고픈 지긋지긋한 설정 값, 누가 리셋 좀 해주라!
※ 본 기사는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설정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설정 값’은 ‘벗어나고 싶었던 이미지’를, ‘스테이지(STAGE)’는 현실을, ‘섀도(SHADOW)’는 속마음·상상 속 상황을 의미합니다.

       
STAGE  

난 거절을 잘 못 함. 한번은 이런 적이 있어. 새 학기가 되고 나서 후배들이 갑자기 나한테 작년 발표 때 쓴 ppt를 보내달라고 하더라고. 마치 나한테 맡겨놓은 것처럼 당당하게. 근데 막상 거절하려니 입이 안 떨어지대. 얼굴은 굳어 있었지만 치사하고 못된 선배로 보일까 봐 바로 표정 풀고 웃으면서 알겠다고 그랬어. 결국 하나하나 설명해주면서 파일 공유해주고,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다며 캔커피까지 하나씩 손에 쥐어줌^^ 이런 적 한두 번이 아니란 게 더 문제야. 동기, 선배 들까지 대출 부탁하질 않나. 팀플에서도 귀찮은 건 다 내 몫. 누가 나한테 거절 못 하는 설정 값 먹였냐(ㅠㅠ) 제발 없애줬으면.  

SHADOW  

솔직히 나 매번 이렇게 받아치고 싶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건 도리가 아니지! 내가 뼈 빠지게 모아 만든 소중한 자료인데 이걸 그냥 거저 달라고?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긴 한데, 이거 해X캠퍼스에 올리면 부수입으로도 꽤 짭짤할 거거든? 이 치사한 놈들아! 그리고… 순수 창작물인 수업 자료까지 달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니? 양심이 있으면 제발 생각 좀.”

       
STAGE  

구린 소리 하는 사람이 교수님이라면 어떡해야 할까. 한 교수님이 자꾸 성차별적 발언을 하시는데, 그때마다 고역이야. 더구나 학과에서 영향력 있는 교수님이라 눈 밖에 나면 졸업 때까지 피곤해지기 십상. 그러니 힘 없는 우리는 헛소리가 시작된다 싶을 땐, 그냥 ‘귀 닫고 동공 풀기’ 스킬 시전 중이지 뭐. 그런데 요즘에는 “인도영화는 여자들이 안 벗어서 아쉽다” 따위의 말을 해놓고는 “불쾌했다면 취소할게요. 요즘 이런 말 안 되지? 하하!”라며 농담인 척 얼버무리기까지 해. 그때마다 기계적으로 고개 끄덕이거나 입만 웃고 있는 날 발견함. 혐오 발언까지 참아지는 것도 설정 값이라면 제발 벗어나고 싶다.  

SHADOW  

정식으로 문제 제기 하고 강의 보이콧하고 싶음. 대학에서 배우는 게 고작 혐오 발언 하는 교수 앞에서 웃어주기인 건 너무 화나는 일이잖아. 그러니 숨어 하던 욕들 면전에 대고 다 해줄 거야. 속 시원하게 비속어까지 섞어서! 근데… 생각해보니 잘못된 말에 문제 제기 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이걸 상상 속에서만 해야 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 슬프다.

       
STAGE  

수업 첫날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당신도 대학원생이라 바쁘대. 그래서 우리한테 강의 발표를 시키겠다는 거야. 결론이 왜 그렇게 나죠? 심지어 개인 발표를 한 시간씩이나 시키다니…. 수업 날로(?) 먹으려는 느낌이 왔지. 아니나 다를까, 겨우 20분 남짓 코멘트 해주고 끝나더라. 게다가 내가 자료 조사할 때 쳐냈던 시답잖은 정보를 피드백이랍시고 언급하시고. 와중에 수업 시간 때우려고 과제 발표는 엄청 시킴. 그렇게 한 학기 내내 학생들이 진행하는 수업 들음^^ 하지만 학점의 노예인 나… 항의는커녕, 태도 점수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기를 썼더랬지.  

SHADOW  

섀도였으면 이미 교수님한테 한마디 했지. “교수님이 그러고도 교수님이세요? 저도 비싼 돈 내고 학교 다니거든요. 돈 받고 수업하시면 가르치는 게 있으셔야죠. 제 등록금 길바닥에 버리는 한이 있어도 교수님한텐 못 주겠습니다. 솔직히 수업 30분 전에 오셔서 겨우 자료 읽고 계신 거 매번 티 나거든요? 언제 적 자료를 읽고 오셔서 얘기하시는 건지?”

       
STAGE  

학점 메우랴, 논문 쓰랴 바쁜 와중에도 모두가 탐내는 대기업 인턴에 합격했어! 근데 1개월 차, 내 사수가 정말 돌+I라는 것 빼곤 배운 게 없다. 부장님에겐 아부 능력 쩌는 대리일지 몰라도, 나한텐 떠넘기기의 대가일 뿐이거든. 더 화가 났던 건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거야. 뭐 물어보기라도 하면 앞에서 그것도 모르냐며 면박 주고, 컨디션 좋지 않을 때는 인사도 안 받아줌. 다른 팀 인턴들은 면담 신청해서 불만 사항도 잘만 말하던데, 난 말도 못 하고 비위만 맞추고 있어. 아직 2개월이나 남아서그냥 자포자기하고 안면 근육 ‘(^_^)’으로 굳히고 사는 중. 원래 직장인 되면 다 이렇게 비위 맞추는 설정 값 있는 거임?  

SHADOW  

처음엔 그저 ‘뽑아만 줘도 감사’였지만, 아무리 인턴이라도 너무한 거 같음. 자소서 한 줄 귀한 건 알지만 그냥 다 엎고 싶어^^ 인턴 수료 직전이라 말은 못 했지만, 신입 사원이 본인 비위 맞춰주는 역할은 아니라는 걸 좀 알았으면 함. 그리고 인턴들 아직 학생이라고 얕보지 말길. 뒤에서 본인 선배 욕하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내가 입 털면 끝이야!

[908호 - campus life 2]

Campus Editors 길민지 (억지 미소) 맨날 섀도에서 살고 싶다… 우리 존재 파이팅!
유연지 만화 캐릭터도 아닌데 설정 값에 갇혀 사는 모든 대학생, 파이팅! 
illustrator 정진우   
#908호 campus life 2#대학생활#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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