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스물여섯, 더 준비해도 괜찮은 나이입니다

다들 분주하게 사는데 난 그 사이에서 붕 떴다.
졸업까지 반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주위에는 직장인이 된 친구도 있다. 사회로 나갈 시기, ‘당신의 인생을 풀어드립니다!’ 사주 가게 간판 앞에서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내 인생이 막막한 건 어떻게 알았는지. 엉킨 삶을 풀어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막힌 가슴이라도 뚫어볼 요량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요.”
역술가는 눈을 치켜뜨며 안경 너머로 나를 살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훑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관상이라도 본 것일까. 다소 괴기한 차림의 그녀와 이질적인 세공품이 즐비한 방 안 분위기 속에서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모든 게 들통난 기분. 손짓으로 의자를 가리키는 그녀의 안내에 따라 겸연쩍게 웃으며 자리를 잡았다.   “무슨 일로 왔죠?” 드센 그녀의 말투에,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건 아닌지, 기가 죽었다.

“아…저…그게….”
 “고민이 없는데 찾아오진 않았을 거고, 고민이 뭐예요? 취업? 학업?”
그녀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내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맞다. 졸업까지 반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주위에는 직장인이 된 친구도 있었고,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었다. 사회로 나갈 시기, 다들 분주하게 사는데 난 그 사이에서 붕 떴다. 나이는 차는데 이뤄 놓은 것은 없었다. 앞길은 막막한데 그걸 뚫고 나갈 자신도 없었다.  

“어디, 연월일시 좀 봅시다.”
역술가의 말에 나는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불렀다. 이윽고 그녀는 공책에 한자 여덟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내 팔자를. 그렇게 내 사주를 사이에 두고 앉은 나와 그녀의 모습은 흡사 판사와 피고인 같았다. 그녀는 법봉을 손에 쥐고 내 인생에 대한 판결문을 읊을 판사였고, 난 그 앞에서 선처를 갈구하는 힘없는 피고인이었다. 그녀는 공책에 적힌 내 팔자를 요리조리 가늠하더니 ‘탁!’ 소리가 나게 펜대를 놓았다. “어렵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앞으로… 잘 안 풀릴까요?” 목소리가 흔들렸다.  
  
“내년까지는 힘들겠어! 내후년이나 돼야 풀리니까 마음 너무 조급하게 먹지 말아.”

가혹한 판결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뤄 놓은 것도 없다며! 이력서에 쓸 말이 있어야 회사를 들어가지. 죽었다고 생각하고 내년까지 열심히 준비해. 그럼 내후년에는 취직 운이 있으니까.”

“하….”
돌덩이 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었다. 뼈를 맞은 듯 아릿했다.
“하이고~ 죽겠네, 죽겠어. 2년 더 준비하는 게, 그게 대수야?”
죽을 상이 된 내 표정에 그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럼 이게 큰일이지 아니에요?”
울컥하는 마음에 되받아쳤다. 그러자 그녀가 안경을 벗어 책상에 올려놓았다. 기괴한 안경을 벗으니, 쳐다보기가 한결 수월했다.  

“사람은 다 자기만의 때를 가지고 태어나. 누구는 그 시기가 일찍 와서 남들보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부침을 겪게 되어 있고, 반대로 지금 좀 힘든 사람은 남들이 힘들다고 할 때 살 만하고 그런 거야. 내가 살아보니까 인생에서 2년 늦는 거는 늦은 것도 아냐. 남들은 보지 말고 자기만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거야.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기 마련이니까 그걸 기다리라고.”
이전과는 달리 따뜻함이 느껴지는 말투에 마음이 풀렸다.
“젊은 사람이 뭘 못 해? 시간 많겠다, 힘 있겠다. 자신감을 가져!”  

지난 5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때문에 남들은 어떻게든 채우는 입사 지원서 양식을 다 채우는 것도 내겐 벅찼다. 적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어설픈 지원서가 아니라 역술가의 말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나만의 시기를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를 허비했던 만큼 더 절박하고 성실하게. 그날, 사주 집을 나오며 다짐했다.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아니면 1년이 될지 모르지만, 나만의 호흡으로 내 인생을 준비해보자고. 좀 더 멀리 보고 생각하자고. 내 나이 이제 스물여섯. 아직 준비가 필요한 나이이고, 준비해도 괜찮은 나이라고. 

[909호 - 20's voice]

writer 독자 이주룡 sunul13@daum.net  
#20's voice#에세이#취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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