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후회하고 있는 게 너무 후회된다
하고많은 것 중에 왜 후회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후회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
아까 그런 말은 괜히 했나? 날도 추운데 그냥 따뜻한 아메리카노 시킬 걸….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후회란 걸 하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후회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 그래서 별명도 있다. 후머(후회 머신). 후자(후회 자판기). 무슨 일을 겪은 뒤든 자동화된 시스템처럼 후회를 하거나,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다 살짝 버튼만 눌려도 새로운 후회가 따끈따끈하게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다. 하고많은 것 중에 왜 후회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한번은 인스타그램에서 뮤지션 성진환님이 그린 생활 툰을 본 적 있다. 이케아에 수납장을 사러 갔다가 계획에 전혀 없던 물건들을 잔뜩 산 후 그중 2개를 흘리고 온 에피소드였다(질 수 없지, 나도 물론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적 있다). 분명 영수증에 계산은 했다고 찍혀 있는데 물건은 사라졌고, 매장에 분실 신고를 해보지만 접수된 물건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3만원어치를 흘리고 오다니, 심지어 차에 짐을 실을 때부터 집에 돌아올 때까지 전혀 알아채지 못하다니…. 그의 후회는 강물을 이루다 바다가 된다. 다음 장에 그는 이렇게 썼다.
“며칠 동안 엄청나게 우울했다. 고작 이런 걸로 이렇게까지 우울해지는 내 인생이 비참하다는 생각에 이르자 도무지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후회하다 우울해지는 내 패턴과 너무 흡사해 마치 잃어버린 형제를 찾은 기분이었다.
녹화방송 보느라 본방 사수를 못 하는 자
그런 내게 지난해는 여러모로 힘든 해였다. 아빠는 갑자기 다쳐서 수술을 했고, 가족은 그저 안쓰럽고 답답한 존재로만 느껴졌으며, 몇 번이나 미리 해두라는 말을 들었던 일을 해놓지 않아 큰일을 그르친 적도 있었다. 인생은 마음처럼 흐르지 않고, 이런 나를 데리고서는 도무지 잘 살 자신도 없는데, 벌어진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때… 내가 하는 일은? 끊임없이 후회하는 일이다. 그때 그랬어야 하는데, 혹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거기 갔더라면, 그때 전화만 했더라면 등등. 그러다 보면 지금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 후회되곤 했다.
당시 나는 후회란 걸 맨손으로 쥔 군고구마처럼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친구 Y가 늦은 밤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냥 집어던지거나 잠시 내려놓으면 될걸, 손에 쥔 채로 시뻘겋게 데어가는 게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Y가 보내준 링크는 법륜 스님의 설법 중 일부를 옮겨놓은 글이었다. 거기선 후회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생각이 생방송인지 녹화방송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괴롭다면 옛날 필름을 돌리면서 괴로워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생방송은 안 보고 과거의 녹화방송만 보고 있는 거예요.” 일주일째 녹화방송만 수십 번 돌려보고 있던 내게 그 문장은 죽비를 내리치는 듯했다. ㅡ어리석은 중생이여, 그것은 녹화방송이다!
우린 모두 인생의 편도 티켓을 쥐고 있으니
하지만 우리에게도 할 말이란 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못 하나? 후회하지 말아야지 한다고 후회하지 않으면 후회가 없겠네…. 그만하고 싶은데도 자꾸 녹화방송 같은 생각에 빠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에서 제안하고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채널 돌리기’였다. 후회가 고개를 들면 채널을 돌리듯 딴생각을 바로 하라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든지, 운동을 하든지, 목욕을 하든지, 책을 보든지 해서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려보라고. 그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시간적으로 ‘지금’, 공간적으로 ‘여기’,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라고.
알게 되었다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내가 지나간 녹화방송을 보느라 눈앞의 생방송을 계속 놓치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시간이 아까워졌다. 해봤자 과거를 바꿀 수 없는 후회, 해봤자 미래를 바꿀 수 없는 걱정으로 소모하기엔 나의 현재가 아까운 거였다. 어쩔 줄 모르는 후회와 우울로 내가 방 한구석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을 감당하고 있는 사이, 바깥에서는 꽃이 피고 노을이 지고 또 하루가 가고 있었다. 그러니 몸을 일으켜 나를 데리고 나가야 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해야 했다. 지금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하지 않는 게 나을 생각에 묶여 있는 대신.
한 사람의 인생에도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작용한다면, 그동안 나는 아까운 에너지를 후회하는 데 쓰고 있었던 셈이다. 또다시 후회의 늪에 빠지려 할 때마다 이젠 이 말을 떠올린다. 작가 앤드루 조지가 2년 동안 호스피스 병동에 머물며 촬영한 시한부 환자들의 초상과 인터뷰로 이루어진 전시 <있는 것은 아름답다>, 그곳에서 마주쳤던, 어떤 잠언보다 힘이 센 문장을. “여러분은 인생의 편도 티켓을 쥐고 있는 셈이에요. 인생을 허비하지 마세요.”
아까 그런 말은 괜히 했나? 날도 추운데 그냥 따뜻한 아메리카노 시킬 걸….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후회란 걸 하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후회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 그래서 별명도 있다. 후머(후회 머신). 후자(후회 자판기). 무슨 일을 겪은 뒤든 자동화된 시스템처럼 후회를 하거나,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다 살짝 버튼만 눌려도 새로운 후회가 따끈따끈하게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다. 하고많은 것 중에 왜 후회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한번은 인스타그램에서 뮤지션 성진환님이 그린 생활 툰을 본 적 있다. 이케아에 수납장을 사러 갔다가 계획에 전혀 없던 물건들을 잔뜩 산 후 그중 2개를 흘리고 온 에피소드였다(질 수 없지, 나도 물론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적 있다). 분명 영수증에 계산은 했다고 찍혀 있는데 물건은 사라졌고, 매장에 분실 신고를 해보지만 접수된 물건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3만원어치를 흘리고 오다니, 심지어 차에 짐을 실을 때부터 집에 돌아올 때까지 전혀 알아채지 못하다니…. 그의 후회는 강물을 이루다 바다가 된다. 다음 장에 그는 이렇게 썼다.
“며칠 동안 엄청나게 우울했다. 고작 이런 걸로 이렇게까지 우울해지는 내 인생이 비참하다는 생각에 이르자 도무지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후회하다 우울해지는 내 패턴과 너무 흡사해 마치 잃어버린 형제를 찾은 기분이었다.
녹화방송 보느라 본방 사수를 못 하는 자
그런 내게 지난해는 여러모로 힘든 해였다. 아빠는 갑자기 다쳐서 수술을 했고, 가족은 그저 안쓰럽고 답답한 존재로만 느껴졌으며, 몇 번이나 미리 해두라는 말을 들었던 일을 해놓지 않아 큰일을 그르친 적도 있었다. 인생은 마음처럼 흐르지 않고, 이런 나를 데리고서는 도무지 잘 살 자신도 없는데, 벌어진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때… 내가 하는 일은? 끊임없이 후회하는 일이다. 그때 그랬어야 하는데, 혹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거기 갔더라면, 그때 전화만 했더라면 등등. 그러다 보면 지금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 후회되곤 했다.

당시 나는 후회란 걸 맨손으로 쥔 군고구마처럼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친구 Y가 늦은 밤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냥 집어던지거나 잠시 내려놓으면 될걸, 손에 쥔 채로 시뻘겋게 데어가는 게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Y가 보내준 링크는 법륜 스님의 설법 중 일부를 옮겨놓은 글이었다. 거기선 후회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생각이 생방송인지 녹화방송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괴롭다면 옛날 필름을 돌리면서 괴로워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생방송은 안 보고 과거의 녹화방송만 보고 있는 거예요.” 일주일째 녹화방송만 수십 번 돌려보고 있던 내게 그 문장은 죽비를 내리치는 듯했다. ㅡ어리석은 중생이여, 그것은 녹화방송이다!
우린 모두 인생의 편도 티켓을 쥐고 있으니
하지만 우리에게도 할 말이란 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못 하나? 후회하지 말아야지 한다고 후회하지 않으면 후회가 없겠네…. 그만하고 싶은데도 자꾸 녹화방송 같은 생각에 빠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에서 제안하고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채널 돌리기’였다. 후회가 고개를 들면 채널을 돌리듯 딴생각을 바로 하라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든지, 운동을 하든지, 목욕을 하든지, 책을 보든지 해서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려보라고. 그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시간적으로 ‘지금’, 공간적으로 ‘여기’,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라고.
알게 되었다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내가 지나간 녹화방송을 보느라 눈앞의 생방송을 계속 놓치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시간이 아까워졌다. 해봤자 과거를 바꿀 수 없는 후회, 해봤자 미래를 바꿀 수 없는 걱정으로 소모하기엔 나의 현재가 아까운 거였다. 어쩔 줄 모르는 후회와 우울로 내가 방 한구석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을 감당하고 있는 사이, 바깥에서는 꽃이 피고 노을이 지고 또 하루가 가고 있었다. 그러니 몸을 일으켜 나를 데리고 나가야 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해야 했다. 지금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하지 않는 게 나을 생각에 묶여 있는 대신.
한 사람의 인생에도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작용한다면, 그동안 나는 아까운 에너지를 후회하는 데 쓰고 있었던 셈이다. 또다시 후회의 늪에 빠지려 할 때마다 이젠 이 말을 떠올린다. 작가 앤드루 조지가 2년 동안 호스피스 병동에 머물며 촬영한 시한부 환자들의 초상과 인터뷰로 이루어진 전시 <있는 것은 아름답다>, 그곳에서 마주쳤던, 어떤 잠언보다 힘이 센 문장을. “여러분은 인생의 편도 티켓을 쥐고 있는 셈이에요. 인생을 허비하지 마세요.”
[910호 - think]
Illustrator 강한
#910호 think#에세이#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