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복학만 하면 너를 인싸로 만들어줄게

팬데믹이 선포되고 전국의 대학이 온라인 개강을 했다.

‘석’은 학교에서 세미나를 만드는 일에 도가 튼 것 같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만났을 때는 공부를 너무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길 잃은 어린애 같았는데. 휴학하고 혼자 고전을 읽겠다고 결심했다가 외로워서 좌절하던 시절도 있었다. 석은 이제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주제를 잡아 동료를 모으는 일을 해내는 유명한 학구파가 되었다. 나는 변모한 석이 너무나 놀라워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석은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너 복학하면 인싸로 만들어줄게!”  

그는 매일 저녁 각기 다른 세미나를 했고, 대부분 자신이 발제를 맡았다. 이제 하루에 책 한 권을 독파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고 했다. 나는 석의 위풍당당함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은근히 복학할 날을 기다리곤 했다.  

석의 주위에는 우울증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는 친구들이 많았다. 사실 그 친구들은 나의 대학 동기이고 나의 친구들이기도 했지만, 연락 두절이 잦은 나의 성격 탓에 석에게 소식을 건너 전해 듣기 일쑤였다. 친구들은 나나 석보다 똑똑하고 섬세하고 아름다웠으나, 강의를 들으러 가다가 쓰러지거나, 갑자기 편두통으로 앞이 안 보이거나, 발목을 다쳐 걸을 수가 없어지는 바람에 휴학했다. 대학에 실망하여 갑작스레 여행을 떠나거나, 음악을 하겠다고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친구들이 대학을 떠날 때마다 석은 우울해했다. 나는 석을 위로했다. 떠나버린 친구들 얘기는 꺼내지 않고, 그저 적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서울도 적응 기간이 필요한 낯선 도시인지도 몰라. 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금 씩씩하게 살아갔다. 머리를 질끈 묶고 주말마다 집을 대청소하고, 헐렁한 바지를 입고서 아침마다 요가원에 나갔다.  

팬데믹이 선포되고 전국의 대학이 온라인 개강을 했다. 복학 신청도, 수강 신청도 하고 등록금도 다 낸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아무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나 인싸로 만들어준다며, 석에게 따지며 웃어넘기는 것조차 못했다. 석 역시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2020년에 하기로 했던 수많은 세미나와 프로젝트들이 무너졌다고 했다. 온라인 강의는 집중이 되지 않아 그저 미뤄두고 있다고 했다. 강의 듣기와 과제 하기는 매일매일 치러야 하는 마감처럼 느껴졌다.  
  
생활반경이 집 안에 묶인 나는 하루하루 잠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졌다. 그 결과 온종일 졸리고 우울했다. 늪에 빠져도 아침이 되면 씩씩하게 현관문을 박차고 나와 향할 곳이 있어야 하는데, 내겐 없었다.  

석이 공부 모임을 하자며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전공 교재이기도 한,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인해 일어난 비극에 관한 역사서를 읽고 토론을 했다. 내가 그걸 읽고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가슴을 치며) 나쁜 놈들, 나쁜 놈들 밖에 없었다. 석은 그걸 읽더니 정의감에 불타올라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몇 백 개의 신문 기사를 보며 몇 날 며칠을 논문 쓰는 데 매달렸다. 석은 완성된 글을 읽어주며 나와 내용을 공유하고 싶어 했다. 나는 어렵고 잘 이해가 안 돼서 그저 졸리다고 대답했다. 석의 실망한 눈초리를 보았다.  

나는 석이 부러워졌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방향을 어떤 쪽으로든 틀고, 바꾸고, 삶의 에너지를 쏟을 구석을 찾아내는 사람이어서 부러웠다.    

Writer 조개(25세)
시대착오적이며 연락두절이 자주 되고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에세이 기고 안내] 
'쓸 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대학내일은 20대를 보내는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솔직한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에세이#코로나#인싸
댓글 0
닉네임
비슷한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