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실은 모든 게 막막했다

안전한' 길에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고학번이 되니 학기 초 ‘밥약’에서 밥이 차지하는 역할이 얼마나 미미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후배들은 “어떤 수업을 들으면 좋은지”, “어떤 학회나 대외활동이 추천할 법한지” 등의 조언을 기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조언을 최대한 아끼는 편이다. 그런 태도는 경험이 만들어낸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새내기 시절의 나 역시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충실히 가이드라인을 따라갔다. 정보는 곧 경쟁력이기에 안정적인 학교생활의 ‘정석 코스’를 보장해줄 것이라 믿었다. 불안했고, 두려웠고, 소외되는 것이 싫었다. 돌아보니 이 모든 감정은 ‘막막함’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주는 막막함, 그것이 내 2018년 겨울과 봄을 지배했다.  

많은 선배들이 자신의 전철을 밟지 말라며 도와주었다. 그 덕에 학점을 잘 준다는 이른바 ‘꿀교양’들을 잔뜩 신청했고, 과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동아리 가입을 고려했다. 막막함을 애써 안전한 선택으로 지운 것이다. 우리가 막막함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종종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불러오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된다면 그런 자신에게 의문이 들고 공허함을 느끼는 빈도가 잦아지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공허하고 허무한 순간들을 피해 갈 수 있는 ‘안전한’ 길이 새내기들에겐 훨씬 인기가 많다.  

스무 살의 나는 선배들이 전해준 학업적인 조언은 잘 따랐어도, 술을 너무 좋아한 탓에 “대학 생활의 내실을 다지라”는 말만큼은 한 귀로 듣고 흘렸다. 4월까지 미팅만 수십 번 나갔다. 희미한 가로등 밑에서 구토를 할 때면 진정한 친구도, 이렇다 할 성취도 없는 실패한 대학 생활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현타는 인간관계와 사고방식 등을 내게 맞춰 ‘최적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반대로 선배들에게 추천받아 들었던 꿀교양들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한 수업은 A학점을 넉넉하게 챙겨주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맥락 없는 암기를 혐오하게만 만들었다. 나는 오히려 강의평 하나 없었던 마이너한 역사 해석 수업에 재미를 붙였다. 우주공강과 9시 수업이 가져오는 통학 부담에 가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후회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시간들에 감사하고 있다. 여러 차례 찾아온 현타는 막막함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원하는 것들을 좁혀갈 수 있었던 성찰의 시간이었다. 결과를 알 수 없고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 멋대로 하는 것은 분명 일정 부분 후회를 가져오지만, 안전한 선택보다야 ‘진정한 나’를 최적화시키는 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요즘 MBTI 검사가 유행하고 있다. 우리는 그 결과를 기반으로 직업이나 연인의 스타일까지 추천받는다. 어쩌면 이것은 인생의 어렴풋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하나의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인간을 16개의 유형으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식상한 말일지 모르지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모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해외 인턴십 때문에 떠난 아프리카에서 끝없이 놓인 초원을 바라본 순간, 이런 신념을 재확인했다. 내가 초원 한가운데서 느낀 감정, 그것은 새내기 시절 학교 정문에서 맞이한 막막함 그 자체였다. 들판에서 헤매다 보면 당연히 현타가 오기 마련이다. 즉각 어떠한 목적지나 경관을 보리라는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더욱 그러기 쉽다. 하지만 그 초원에서 어떤 시간을 보낼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입시라는 목표만을 향해 좁은 길을 달려왔던 관성에서 벗어나, ‘정답’을 찾고 남들과 같은 발자취를 남겨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오해는 말길. 당연히 이 초원에 평생 머물 수는 없다. 그래도 대학생활에서만큼은 온전히 자신만의 초원 위에서 울고, 웃고, 경험해야 하지 않을까.  

하이데거는 “인간은 특별한 의미 없이 세계로 내던져진 자”라고 말했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우리는 이미 내던져졌다. 자신의 의미와 실존의 이유를 찾는 것은 이제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Writer 김찬효
22세. 폭넓고도 특별한, 그런 예술적인 삶. 많이 읽고, 경험하고, 쓰는 정치외교학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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