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10대와 20대의 덕질은 다르더라
그들은 내 사춘기에 가족도 못해 준 위로를 주었다
내 나이 열다섯, 나는 알아주는 ‘빠순이’였다. 그때 나는 내 오빠들이 진행하는 심야 라디오에 하루 한 번씩 사연이 실리는 사연 제조기였다. 사연과 함께 내 이름이 방송된 날에는 친구들에게 실시간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야, 또 너냐?’
당시 송중기, 서효림이 진행하던 <뮤직뱅크>에 매주 출근 도장을 찍으며 방송국 보안요원과 친근하게 지내기도 했다. 펄 사파이어 블루 컬러의 풍선을 흔들며 응원법을 외칠 때에는, 내 목소리가 곧 우리 오빠들의 자부심이었다. 가끔 친구들에게 이런 문자가 날아오기도 했다. ‘야, 나 지금 뮤뱅 보는데 네 목소리 들리는 것 같아.’
그때는 그 시절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나는 라디오 사연을 지어내던 재능으로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지금은 어느덧 스물다섯 화석 대학생이 되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아이돌을 향한 나의 사랑이다.
어렸을 때 부르던 ‘군인 아저씨’가 더는 아저씨가 아니게 되었을 때쯤, 친구들은 애인을 군대에 보냈다. 동시에 서른을 꽉 채운 내 아이돌도 입대했다. 친구들은 모여서 군대에 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은근슬쩍 나를 끼워주며 “너도 곰신이잖아” 하고 놀렸다. 나는 그들의 제대를 손꼽아 기다린다기보다 그냥 내 삶을 살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2년 여가 흐른 뒤 개최된 제대 기념 팬 미팅에서 나는 거의 오열하듯 눈물을 흘렸다. 반가움과 함께, 그동안 대학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게 보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 순간 문득 내가 인생을 기억하는 기준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막내 솔로 데뷔했을 때 있잖아.”
“우리 애들 7집 앨범 나왔을 때 나 뭐뭐하고 있었는데.”
내 인생이 그들과 맞물려 흐르고 있었다. 그들의 앨범 사이사이에 내 삶이 책갈피처럼 저장된 것이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내 머리 스타일, 그때 쓰던 샴푸 냄새, 그때 내 곁에 있던 사람들과 그 계절의 냄새가 차근차근 떠오른다.
10대와 비교하면 지금 덕질에서 얻을 수 있는 감정은 확실히 다르다. 그때는 내 아이돌이 1위를 하고 음악방송 엔딩을 장식하고, 다른 팬덤보다 우리 팬덤이 더 큰 것에 희열을 느꼈지만, 지금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함께하고, 힘든 하루하루를 따로 또 같이 살아내며 서로 응원한다고 느낄 때 위로를 받는다.
그들은 팬 여러분 덕에 살아있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 덕에 살아있는 거나 다름없다. 그들은 내 사춘기에 가족도 못해 준 위로를 주었고, 불안했던 수험생 시절에 응원을 건넸고, 하루하루 밀려드는 우울감에 힘들 때 ‘당신은 나를 살린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가끔 자기 전에 불을 끄고 누워있으면 어릴 적 천장 구석에 붙여놓은 야광별이 희미하게 빛나는 걸 발견한다. 그 야광별의 빛을 가만히 바라보면 침대 프레임을 밟고 올라가 천장에 붙이기 위해 애쓰던 어린 내가 떠올라 미소 짓게 된다. 내게 아이돌이란 그런 의미이다. 그저 그 자리에 있다가도, 흐르는 일상 속 어느 고된 날에 바라보면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
사실 나는 그들을 통해 나의 빛나는 시절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를 빛나게 하는 무해한 열정과 무한한 애정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빛나는 나의 소녀 시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그들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지금은 그저 얼른 코로나가 종식되어 하루빨리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Writer 황예솔
스물다섯 대학생. 빈티지, 발라드, 아이돌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모두에게 마음을 다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에세이 기고 안내]
‘쓸 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대학내일은 20대를 보내는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솔직한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당시 송중기, 서효림이 진행하던 <뮤직뱅크>에 매주 출근 도장을 찍으며 방송국 보안요원과 친근하게 지내기도 했다. 펄 사파이어 블루 컬러의 풍선을 흔들며 응원법을 외칠 때에는, 내 목소리가 곧 우리 오빠들의 자부심이었다. 가끔 친구들에게 이런 문자가 날아오기도 했다. ‘야, 나 지금 뮤뱅 보는데 네 목소리 들리는 것 같아.’
그때는 그 시절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나는 라디오 사연을 지어내던 재능으로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지금은 어느덧 스물다섯 화석 대학생이 되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아이돌을 향한 나의 사랑이다.
어렸을 때 부르던 ‘군인 아저씨’가 더는 아저씨가 아니게 되었을 때쯤, 친구들은 애인을 군대에 보냈다. 동시에 서른을 꽉 채운 내 아이돌도 입대했다. 친구들은 모여서 군대에 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은근슬쩍 나를 끼워주며 “너도 곰신이잖아” 하고 놀렸다. 나는 그들의 제대를 손꼽아 기다린다기보다 그냥 내 삶을 살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2년 여가 흐른 뒤 개최된 제대 기념 팬 미팅에서 나는 거의 오열하듯 눈물을 흘렸다. 반가움과 함께, 그동안 대학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게 보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 순간 문득 내가 인생을 기억하는 기준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막내 솔로 데뷔했을 때 있잖아.”
“우리 애들 7집 앨범 나왔을 때 나 뭐뭐하고 있었는데.”
내 인생이 그들과 맞물려 흐르고 있었다. 그들의 앨범 사이사이에 내 삶이 책갈피처럼 저장된 것이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내 머리 스타일, 그때 쓰던 샴푸 냄새, 그때 내 곁에 있던 사람들과 그 계절의 냄새가 차근차근 떠오른다.

10대와 비교하면 지금 덕질에서 얻을 수 있는 감정은 확실히 다르다. 그때는 내 아이돌이 1위를 하고 음악방송 엔딩을 장식하고, 다른 팬덤보다 우리 팬덤이 더 큰 것에 희열을 느꼈지만, 지금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함께하고, 힘든 하루하루를 따로 또 같이 살아내며 서로 응원한다고 느낄 때 위로를 받는다.
그들은 팬 여러분 덕에 살아있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 덕에 살아있는 거나 다름없다. 그들은 내 사춘기에 가족도 못해 준 위로를 주었고, 불안했던 수험생 시절에 응원을 건넸고, 하루하루 밀려드는 우울감에 힘들 때 ‘당신은 나를 살린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가끔 자기 전에 불을 끄고 누워있으면 어릴 적 천장 구석에 붙여놓은 야광별이 희미하게 빛나는 걸 발견한다. 그 야광별의 빛을 가만히 바라보면 침대 프레임을 밟고 올라가 천장에 붙이기 위해 애쓰던 어린 내가 떠올라 미소 짓게 된다. 내게 아이돌이란 그런 의미이다. 그저 그 자리에 있다가도, 흐르는 일상 속 어느 고된 날에 바라보면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
사실 나는 그들을 통해 나의 빛나는 시절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를 빛나게 하는 무해한 열정과 무한한 애정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빛나는 나의 소녀 시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그들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지금은 그저 얼른 코로나가 종식되어 하루빨리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Writer 황예솔
스물다섯 대학생. 빈티지, 발라드, 아이돌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모두에게 마음을 다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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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대학내일은 20대를 보내는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솔직한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20's voice#에세이#덕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