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쓸모없는 일을 하고 싶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모두가 쓸모만을 찾는다
매년 새로운 수업을 들어야 하는 대학생에게 책값은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그 딱한 사정에 공감해준 학교는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도서비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다. 책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은 학교가 대신 내줄 테니, 책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써서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느낀 점, 배울 점, 미래에 이 책을 이용할 계획 등을 써내라는 거였다. 책값을 한 편의 결과보고서와 교환하자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미래의 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는 이의 이야기에서 ‘쓸모’를 발견해야 하는 일이 나에게 생겼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 이야기는 <오디세이아>로, 모든 귀향 이야기의 원형이라 여겨지는 서사시다. 잘 읽히지도 않는 이야기에서 삶에 적용시킬 만한 점을 찾는 건 경험해보면 알겠지만 꽤나 어려운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까지 그 ‘쓸모’라는 것을 찾지 못했다.
쓸모의 발견 때문에 고통 받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제안을 수락한 그때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지혜와 추구하는 가치, 욕구 등을 정리하여 쓸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나는 영웅도 아니고 집돌이라서 그렇게 장엄한 여행을 할 일이 없었다. 이러한 배경들이 <오디세이아>를 너그러운 시선으로 볼 수 없게 만드니, 하물며 쓸모에 대해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이 책의 유용함을 찾지 못했다는 대답밖에 쓸 수 없었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2년 혹은 그보다 짧을 정도로 매년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진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고 거기에서 쓸모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책의 본질이 그런 것에 있는 것일까? 책이 아니어도 유용함은 다른 곳에서 더 많이, 더 편리하게 찾을 수 있다. 검색창에 몇 개의 키워드만 넣으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어떤 것은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정리되어 있다. 어찌 보면 독서는 유용함으로부터 가장 먼 행위이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쓸모없는 행위’가 된 독서는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니 책을 예찬할 수밖에. 독서는 가만히 있기에도 어지러운 세상에서 내가 손쉽게 안정을 찾는 방법이니까.
책을 잡으면 그 두께에서 시간으로 쌓은 흔적들이 느껴진다. 책이 잘 읽히지 않을 때에도 지금 당장 흐르고 있는 시간만은 느낄 수 있다.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선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의 본질은 쓸모가 아니라 시간에 있다. 적당한 두께의 책을 손에 들고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때, 나는 그만큼 넉넉한 사람이 된다.
쓸모와는 멀고, 시간과는 가까운 넉넉함은 책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내가 그것을 책에서 찾듯이 누군가는 암벽 등반에서 찾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뜨개질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 바라건대 저마다 넉넉함을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것을 찾기를. 그래서 쓸모를 외치고 쓸모만을 바라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만의 풍요로운 마음 하나는 오래 간직할 수 있었으면 한다.
Writer 김준수
16학번. 안녕하세요, 김준수입니다.
[에세이 기고 안내]
‘쓸 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대학내일은 20대를 보내는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솔직한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서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는 이의 이야기에서 ‘쓸모’를 발견해야 하는 일이 나에게 생겼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 이야기는 <오디세이아>로, 모든 귀향 이야기의 원형이라 여겨지는 서사시다. 잘 읽히지도 않는 이야기에서 삶에 적용시킬 만한 점을 찾는 건 경험해보면 알겠지만 꽤나 어려운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까지 그 ‘쓸모’라는 것을 찾지 못했다.
쓸모의 발견 때문에 고통 받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제안을 수락한 그때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지혜와 추구하는 가치, 욕구 등을 정리하여 쓸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나는 영웅도 아니고 집돌이라서 그렇게 장엄한 여행을 할 일이 없었다. 이러한 배경들이 <오디세이아>를 너그러운 시선으로 볼 수 없게 만드니, 하물며 쓸모에 대해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이 책의 유용함을 찾지 못했다는 대답밖에 쓸 수 없었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2년 혹은 그보다 짧을 정도로 매년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진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고 거기에서 쓸모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책의 본질이 그런 것에 있는 것일까? 책이 아니어도 유용함은 다른 곳에서 더 많이, 더 편리하게 찾을 수 있다. 검색창에 몇 개의 키워드만 넣으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어떤 것은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정리되어 있다. 어찌 보면 독서는 유용함으로부터 가장 먼 행위이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쓸모없는 행위’가 된 독서는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니 책을 예찬할 수밖에. 독서는 가만히 있기에도 어지러운 세상에서 내가 손쉽게 안정을 찾는 방법이니까.
책을 잡으면 그 두께에서 시간으로 쌓은 흔적들이 느껴진다. 책이 잘 읽히지 않을 때에도 지금 당장 흐르고 있는 시간만은 느낄 수 있다.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선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의 본질은 쓸모가 아니라 시간에 있다. 적당한 두께의 책을 손에 들고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때, 나는 그만큼 넉넉한 사람이 된다.
쓸모와는 멀고, 시간과는 가까운 넉넉함은 책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내가 그것을 책에서 찾듯이 누군가는 암벽 등반에서 찾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뜨개질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 바라건대 저마다 넉넉함을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것을 찾기를. 그래서 쓸모를 외치고 쓸모만을 바라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만의 풍요로운 마음 하나는 오래 간직할 수 있었으면 한다.
Writer 김준수
16학번. 안녕하세요, 김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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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대학내일은 20대를 보내는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솔직한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20's voice#에세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