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나 진짜 졸업하기 싫어.”

코로나19로 이런 마지막 학기를 보내게 될 줄 몰랐다.

대학 2학년 겨울, 기말고사를 앞두고 새벽에 공부하는데 우연히 라디오에서 전람회의 <졸업>이 흘러나왔다. 노래를 듣고 있으니 며칠 전 종강총회에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배는 취한 채로 우리 테이블에 오더니, “나 진짜 졸업하기 싫어. 딱 너희 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어.”라며 울먹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졸업은 멀게만 느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3학년이 되자 학교에 선배들이 눈에 띄게 사라졌고, 동기들도 여럿 휴학했다. 허전해진 술자리를 후배들로 채우며 졸업이 가까워진 현실을 실감했다. 그리고 어느새 공감하고 있었다. “나 진짜 졸업하기 싫어.”라고 말하던 선배의 그 울먹임에.  

과제에 찌들어 술이 고플 때 학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을 불러서 술 마시고, 정치 얘기 조금, 문학 얘기 조금 곁들이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게 직업처럼 여겨지던 대학생활. 나는 엽떡이나 찜닭, 소맥과 김치우동을 해치우던 것처럼 시간까지 먹어치운 먹보 대학생이 된 걸까. 졸업은 세상이 그런 나에게 내리는 먹보 대학생 해고 통보처럼 느껴진다. 3학년 말에는 전람회의 <졸업>만 들으면 눈물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노래는 마치 내 자유를 떠나보내는 장송곡 같다.  

마지막 학기를 앞둔 요즘,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각자의 미래 계획에 관해 묻는다. “졸업하면 뭐 할 거야? 그냥, 말이라도 해보자.” 각자 계획이 조금씩 다르다.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 창업하고 싶다, 전업 작가가 되면 좋겠다, 등등. 하고 싶은 건 다르지만 공통으로 전제된 조건이 있다. 바로 ‘먹고살 만큼의 돈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나의 생존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점점 꿈보다는 돈이 간절해지고 있었다. 술을 마시다가 씁쓸한 현실에 잠시 말을 잃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주문을 외듯 말한다. “복권 당첨되고 싶다.” 어쩌면 그게 우리의 가장 큰 꿈이 된 것 같다.
  
졸업을 앞둔 만큼, 올해는 휴학했던 동기들이 복학하면 함께 수업도 듣고 추억을 많이 남기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퍼지면서 학교에 못 가게 되었고, 추억은커녕 얼굴도 보지 못하고 지낸다.  

중요한 시기에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며 하루하루 무기력과 싸우지만, 같이 우왕좌왕하는 동기들이 있어 조금 힘이 되기도 한다. 혼자 과제하기 외롭다며 영상통화 걸어두고 하는 우리들. 졸업하면 연락 끊을 것 같다며 서로를 구박하지만, 그 말은 곧 멀어지기 싫다는 말로 들린다. 나는 소원을 빌듯 말한다. “우리 모두 잘 돼서 웃으며 연락하자.”  

사실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며 요즘 주변의 얼굴을 돌아보고 있다. 어지럽힌 책상을 정리하는 것 같다. 어떤 얼굴은 노트에 끼워두고, 어떤 얼굴은 구겨서 버린다. 어떤 얼굴은 나중에 꺼내 보려 서랍에 넣고, 어떤 얼굴은 언제든지 볼 수 있게 책상 위에 올려둔다. 나에게 졸업은 학업을 마치는 것보다 대학생으로 살면서 형성된 인간관계를 정리한다는 의미로 다가와 있나 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졸업이 가까워지니 전람회의 <졸업>보다는 토이의 <뜨거운 안녕>을 자주 듣는다. 가사 중에 ‘맘껏 취하고 싶어’, ‘밤새도록 노랠 부르자’ 부분은 졸업식 뒤풀이 같고, ‘앞만 보고 달려가자’, ‘바보처럼 울지 말자’는 미래의 사회인이 될 우리를 응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제일 와닿는 부분은 대학 생활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내 마음을 담은 듯한 ‘이 순간이여 영원하라’이다. 제목의 ‘뜨거운’은 화끈하게 보내주는 안녕이 아니라, 졸업이 싫어 흘리는 내 눈물을 의미하는 것만 같다.  

밤이면 혼자 졸업식을 상상한다. 내년 2월, 학사모를 쓰고 졸업장을 품에 안은 채 <뜨거운 안녕>을 듣는 나의 모습을. 코로나가 종식되어 마스크를 끼지 않은 모습으로, 사랑하는 동기들과 후배들을 품에 안고 외치고 싶다. 안녕, 나의 대학시절. 소중했던, 찬란하게, 사랑했던 날들이여. 뜨겁게 널 보낸다. 행복했던 먹보 대학생이여. 뜨겁게 뜨겁게 안녕.  

Writer 황예솔
스물다섯 대학생. 빈티지, 발라드, 아이돌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모두에게 마음을 다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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