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취준 n년 차, 오늘도 무기계약직 원서를 쓴다
친구가 말한 ‘제대로 된 일’은 무엇이었을까?
방역복을 입은 사람이 체온을 재고 있다. 체온을 잰 뒤에는 이름과 서약서를 쓰라고 재촉이다. 얌전히 말을 잘 들으면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선별진료소 같은 이곳은 한 공기업의 시험장이다. 기업 이름은 잊어버렸다. 언덕을 올라가 왼쪽으로 가면 A관, 그대로 언덕을 올라가면 B관이다.
B관은 정규직 시험장이고, A관은 무기계약직 시험장이다. 지금 B관으로 가는 사람들은 마시멜로를 눈앞에 두고도 잘 참는 사람들일까. 괜히 B관으로 가는 사람들을 흘겨보다가 A관으로 걸어간다.
입실 제한 10분 전, 나는 자리에 앉았다. 책상 모퉁이에 내 이름과 수험 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보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내 옆자리에는 클러치 백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오른쪽 발목을 왼쪽 무릎에 올린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흰머리가 쭈뼛한 것이 마흔은 된 것 같았다. 그 뒤에는 문제집인지, 요약본인지에 줄을 그으면서 공부를 하는 20대 여자도 있었다. 대충 봐도 꽤 많은 사람이 무엇이든 붙잡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멀뚱히 앉아 있는 것은 클러치 백 아저씨와 나, 내 앞에 화장실에 갔다 와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정도였다.
시험을 시원하게 망치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동안, 이 많은 사람들이 대체 왜 ‘무기계약직’에 지원하는지 궁금해졌다. 낯짝만 두꺼웠으면 옆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월급도 최저 시급 수준에, 앞으로 오른다는 보장도 없고, 잡플래닛 리뷰 기준으로 오만가지 잡일을 다 한다는 이 직무에 대체 왜 지원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직무는 경쟁률이 몇 백 대 일이 될 만한 직무가 아니었다. 시험장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이 직무를 간절하게 원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기계약직 필기시험을 말아 먹은 후, 사립대학교 계약직 공고에 지원했다. 1년 6개월 정도의 계약이었지만, 독서와 글쓰기를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일이라 마음에 들었다. 자기소개서에 내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고, 글쓰기는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녹여낸 다음 미련 없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입사 지원은 거의 습관 같은 것이 되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의를 두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붙었다. 서류 전형은 5배수, 최종적으로 1명을 뽑으니 5명만 합격하는 것인데 내가 그중에 한 명이 됐다.
이 직무는 필기전형 없이 면접전형만 있었는데 면접은 2주 뒤 월요일로 잡혔다. 서류에 합격하는 일이 흔치 않아서, 친구들에게 이 일이 어떨지 물어봤다. 한 친구는 돈 많이 주면 하라고 했다. 다른 친구는 2022년이면 우리 나이가 서른인데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말문이 막혔다. 서른? 이 일을 하다가 서른이 돼서 계약이 만료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일은 경력도 안 될 것 같은데.
사립대학교 계약직 면접날이 다가왔다. 나는 가지 않았다. 계약 만료 후에 또 다시 지금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일이라니, 공고를 보고 마음에 들어 했던 순간이 무색해졌다. 친구가 말한 ‘제대로 된 일’은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1년 6개월 뒤가 보장되지 않는 일은 아닐 것이다. 불안함 앞에서 내 선택은 다시 안정감을 연장해줄 일로 돌아갔다. 이런 것도 ‘선택’이라 부를 수 있다면. 오늘도 무기계약직 채용 공고를 찾아 원서를 쓴다.
Writer 윤가람
28살. 집에선 공무원 시험을 치라고 하지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에세이 기고 안내]
‘쓸 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대학내일은 20대를 보내는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솔직한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B관은 정규직 시험장이고, A관은 무기계약직 시험장이다. 지금 B관으로 가는 사람들은 마시멜로를 눈앞에 두고도 잘 참는 사람들일까. 괜히 B관으로 가는 사람들을 흘겨보다가 A관으로 걸어간다.
입실 제한 10분 전, 나는 자리에 앉았다. 책상 모퉁이에 내 이름과 수험 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보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내 옆자리에는 클러치 백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오른쪽 발목을 왼쪽 무릎에 올린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흰머리가 쭈뼛한 것이 마흔은 된 것 같았다. 그 뒤에는 문제집인지, 요약본인지에 줄을 그으면서 공부를 하는 20대 여자도 있었다. 대충 봐도 꽤 많은 사람이 무엇이든 붙잡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멀뚱히 앉아 있는 것은 클러치 백 아저씨와 나, 내 앞에 화장실에 갔다 와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정도였다.
시험을 시원하게 망치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동안, 이 많은 사람들이 대체 왜 ‘무기계약직’에 지원하는지 궁금해졌다. 낯짝만 두꺼웠으면 옆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월급도 최저 시급 수준에, 앞으로 오른다는 보장도 없고, 잡플래닛 리뷰 기준으로 오만가지 잡일을 다 한다는 이 직무에 대체 왜 지원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직무는 경쟁률이 몇 백 대 일이 될 만한 직무가 아니었다. 시험장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이 직무를 간절하게 원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기계약직 필기시험을 말아 먹은 후, 사립대학교 계약직 공고에 지원했다. 1년 6개월 정도의 계약이었지만, 독서와 글쓰기를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일이라 마음에 들었다. 자기소개서에 내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고, 글쓰기는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녹여낸 다음 미련 없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입사 지원은 거의 습관 같은 것이 되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의를 두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붙었다. 서류 전형은 5배수, 최종적으로 1명을 뽑으니 5명만 합격하는 것인데 내가 그중에 한 명이 됐다.
이 직무는 필기전형 없이 면접전형만 있었는데 면접은 2주 뒤 월요일로 잡혔다. 서류에 합격하는 일이 흔치 않아서, 친구들에게 이 일이 어떨지 물어봤다. 한 친구는 돈 많이 주면 하라고 했다. 다른 친구는 2022년이면 우리 나이가 서른인데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말문이 막혔다. 서른? 이 일을 하다가 서른이 돼서 계약이 만료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일은 경력도 안 될 것 같은데.
사립대학교 계약직 면접날이 다가왔다. 나는 가지 않았다. 계약 만료 후에 또 다시 지금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일이라니, 공고를 보고 마음에 들어 했던 순간이 무색해졌다. 친구가 말한 ‘제대로 된 일’은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1년 6개월 뒤가 보장되지 않는 일은 아닐 것이다. 불안함 앞에서 내 선택은 다시 안정감을 연장해줄 일로 돌아갔다. 이런 것도 ‘선택’이라 부를 수 있다면. 오늘도 무기계약직 채용 공고를 찾아 원서를 쓴다.
Writer 윤가람
28살. 집에선 공무원 시험을 치라고 하지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에세이 기고 안내]
‘쓸 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대학내일은 20대를 보내는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솔직한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20's voice#에세이#계약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