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나는 버는 만큼만 살았다
내가 가진 돈에 맞춘 선택을 진짜 내 선택이라 믿으면서
부모님은 투자보다는 저축, 돈을 불리기보다는 안 써서 돈을 모으는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다. 특히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짠돌이라는 구박을 받을 정도로 옷이나 외식, 취미활동에 돈을 쓰는 데 신중했다. 그런 안정지향적인 아버지의 성향 덕분에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 와 우리 네 식구가 살 수 있는 집을 장만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종종 구박했다. 어머니는 계절이 바뀌거나 모임이 있는 날이면 새 옷을 장만하는 낙을 즐기시는 분이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딱 반씩 닮았다. 옷을 사거나 맛집에 가고 유명한 디저트를 사먹는 데에는 돈을 그리 아끼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큰돈이 들어간다 싶으면 주춤하게 된다. 콘서트에 가고 싶다가도 20만원이라는 숫자를 보면 ‘내가 이 가수를 그렇게까지 좋아했던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개인 PT를 받아볼까 싶다가도 1회에 10만원을 훌쩍 넘기는 숫자를 맞닥뜨리면, 유튜브를 보며 홈트를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최면을 걸게 된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나중에 취업하고 돈 벌면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하나 둘씩 미뤘다. 하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돈을 벌 궁리를 하기보다는 내가 지금 가진 돈 안에서 아끼고 모아서 누릴 수 있는 행복에 만족했다. 그렇게 휴대폰 메모장에는 필라테스 배우기, PT 받기, 뮤지컬 관람, 영어회화 공부, 후원하기, 스쿠버다이빙 하기 등 ‘언젠가’ 할 일들의 리스트만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취업을 위해 비슷한 자기소개서를 몇 번씩 쓰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다 깨달았다. 안분지족인 줄 알았던 내 삶이, 그냥 내가 가진 돈에 맞춰 나의 선택지를 가두는 삶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미루거나 돌아 나오거나 포기한 선택들 사이에서 나만의 경험이라 부를 만한 것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여러 후회와 의문들이 떠올랐다.
아르바이트를 더 해서라도 필라테스를 제대로 배웠더라면, 끈기 있게 무언가를 해낸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만 했던 공연들을 실제로 가서 봤더라면 나에게도 취향이란 게 생기진 않았을까. 와중에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작년에 인턴을 하면서 모은 돈을 털어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던 게 생각나 친구에게 새삼 고맙기까지 했다.
자소서를 쓰다 보면 정말 별거 아닌 경험, 지나친 순간들 하나하나가 아쉽게 다가온다. 왜 그때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해보지 않았을까, 욕심을 더 부려볼 걸 하는 생각들. ‘소비’라는 게 단순히 돈을 써버리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 투자고, 그만큼의 가치를 위한 물물교환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교과서적인 소리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은 게 어딘가.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선택을 망설이는 그 날의 나에게 소리쳐 말해줄 방법도 전혀 없지만, 지금의 나는 바뀔 수 있다. 그게 가장 빠르고 또 확실한 방법이다.
휴대폰 속의 은행 앱과 메모장을 번갈아 확인한다. 은행 계좌의 잔액을 보니 조금씩 모아둔 돈이 쌓여 걱정했던 것보다는 여유가 있다. 그동안 버킷리스트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메모장에 적어두기만 했던 후보군 중에 일단 하나쯤은 해볼 수 있는 정도의 여유. 코로나 때문에 당장은 여의치 않은 필라테스, PT, 스쿠버다이빙, 뮤지컬 관람 등을 하나씩 넘기다 보니, ‘영어회화 공부’가 눈에 들어왔다. 내친 김에 바로 유명한 영어학습 서비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예전에도 몇 번이나 들락거렸던 곳이다. 그때는 수강 신청 페이지에서 결제 금액을 확인하곤 항상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었다. 넷플릭스 미드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합리화하면서.
이번에는 큰맘 먹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알림음과 함께 은행 앱에서 출금 안내 메시지가 바로 날아왔다. 더는 타협하고 미루지 말기. 후회 없는 소비였다는 생각이 들도록, 소비한 만큼 내가 뭔가를 얻으면 될 일이다. 그동안 나는 버는 만큼만 살았다. 이제는 사는 만큼 넓어지고 싶다.
Writer 지안
27세, 언젠가 5분 거리에 바다가 있는 동네에서 뭐라도 쓰면서 살고 싶어 계속 써보려고 합니다.
[에세이 기고 안내]
‘쓸 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대학내일은 20대를 보내는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솔직한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딱 반씩 닮았다. 옷을 사거나 맛집에 가고 유명한 디저트를 사먹는 데에는 돈을 그리 아끼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큰돈이 들어간다 싶으면 주춤하게 된다. 콘서트에 가고 싶다가도 20만원이라는 숫자를 보면 ‘내가 이 가수를 그렇게까지 좋아했던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개인 PT를 받아볼까 싶다가도 1회에 10만원을 훌쩍 넘기는 숫자를 맞닥뜨리면, 유튜브를 보며 홈트를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최면을 걸게 된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나중에 취업하고 돈 벌면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하나 둘씩 미뤘다. 하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돈을 벌 궁리를 하기보다는 내가 지금 가진 돈 안에서 아끼고 모아서 누릴 수 있는 행복에 만족했다. 그렇게 휴대폰 메모장에는 필라테스 배우기, PT 받기, 뮤지컬 관람, 영어회화 공부, 후원하기, 스쿠버다이빙 하기 등 ‘언젠가’ 할 일들의 리스트만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취업을 위해 비슷한 자기소개서를 몇 번씩 쓰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다 깨달았다. 안분지족인 줄 알았던 내 삶이, 그냥 내가 가진 돈에 맞춰 나의 선택지를 가두는 삶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미루거나 돌아 나오거나 포기한 선택들 사이에서 나만의 경험이라 부를 만한 것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여러 후회와 의문들이 떠올랐다.
아르바이트를 더 해서라도 필라테스를 제대로 배웠더라면, 끈기 있게 무언가를 해낸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만 했던 공연들을 실제로 가서 봤더라면 나에게도 취향이란 게 생기진 않았을까. 와중에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작년에 인턴을 하면서 모은 돈을 털어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던 게 생각나 친구에게 새삼 고맙기까지 했다.

자소서를 쓰다 보면 정말 별거 아닌 경험, 지나친 순간들 하나하나가 아쉽게 다가온다. 왜 그때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해보지 않았을까, 욕심을 더 부려볼 걸 하는 생각들. ‘소비’라는 게 단순히 돈을 써버리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 투자고, 그만큼의 가치를 위한 물물교환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교과서적인 소리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은 게 어딘가.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선택을 망설이는 그 날의 나에게 소리쳐 말해줄 방법도 전혀 없지만, 지금의 나는 바뀔 수 있다. 그게 가장 빠르고 또 확실한 방법이다.
휴대폰 속의 은행 앱과 메모장을 번갈아 확인한다. 은행 계좌의 잔액을 보니 조금씩 모아둔 돈이 쌓여 걱정했던 것보다는 여유가 있다. 그동안 버킷리스트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메모장에 적어두기만 했던 후보군 중에 일단 하나쯤은 해볼 수 있는 정도의 여유. 코로나 때문에 당장은 여의치 않은 필라테스, PT, 스쿠버다이빙, 뮤지컬 관람 등을 하나씩 넘기다 보니, ‘영어회화 공부’가 눈에 들어왔다. 내친 김에 바로 유명한 영어학습 서비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예전에도 몇 번이나 들락거렸던 곳이다. 그때는 수강 신청 페이지에서 결제 금액을 확인하곤 항상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었다. 넷플릭스 미드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합리화하면서.
이번에는 큰맘 먹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알림음과 함께 은행 앱에서 출금 안내 메시지가 바로 날아왔다. 더는 타협하고 미루지 말기. 후회 없는 소비였다는 생각이 들도록, 소비한 만큼 내가 뭔가를 얻으면 될 일이다. 그동안 나는 버는 만큼만 살았다. 이제는 사는 만큼 넓어지고 싶다.
Writer 지안
27세, 언젠가 5분 거리에 바다가 있는 동네에서 뭐라도 쓰면서 살고 싶어 계속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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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대학내일은 20대를 보내는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 솔직한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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