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잘 지내시나요, 안부를 묻습니다

지금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나와 같은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들 이번 가을을 어찌 맞이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참 지난한 시간이었는데, 재학 중이라 그 중에서도 시간표를 확정하는 일이 어려워졌다는 것이 참 묘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정정기간 마지막 날에야 겨우 시간표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어려운 적이 없었는데’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녀석이 이번에 처음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전과는 달리 고려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비단 시간표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들에서 말이지요. 그리고 시간표를 짜는 것에 큰 불편을 느꼈다는 것은 한 마디로 모두가 인생에서 얼마간의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졌다는 것과 같겠습니다. 한치 앞도 짐작하기 어려우니까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미래보다는 오늘의 안정을 찾게 됩니다. 저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자취방을 빼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막연히 다음 학기엔 학교에 올라가 방을 구해 살 거라는 기대 대신, ‘집에 있게 되어도 들을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자’라고 생각하는 축에 끼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영부영 집에 틀어박힌다는 말을 장황하게도 했습니다만, 인간이 본디 안정만을 추구하는 동물이 아니기에 우리에게 이 시기는 참 어렵습니다. 만약 선조들이 그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런 풍요를 누릴 수 없었겠지요.

저는 저 스스로 안정감을 굉장히 선호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혼자 방구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밥을 해먹고 노래를 듣는 그런 시간이 저에게 곧 힐링이라고 여겨왔지요. 그러나 ‘힐링’이라는 말을 되짚어보니, 이 단어는 결국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어떤 상처나 고난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치유라는 건 상처 없이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 우리에게 새롭게 상처를 주는 것들은 거의 집 안에 있으므로 집에서 생긴 상처는 치유할 방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힐링’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일상이 됨에 따라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리란 것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겠지요. 그래본 적이 없으니까요.

코로나 사태를 겪은 우리는 이전보다 커진 조심성, 미래에 대한 불안감, 안정을 찾으려는 성향 등을 무의식에 지니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리가 기성세대가 되는 때가 오면 사회가 또 어떤 풍조를 띠게 될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상황이니 힘들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논리 중에 하나이니까요. 다만 지금 같은 상처를 DNA에 아로새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꾸 무기력해지고 매사 답답해지는 게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침전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으나, 결국은 여러분이 겪는 어떠한 피로나 염세적인 사고, 우울감 같은 것들이 비정상적인 게 아니라는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조바심 난 제가 저에게 하는 말도 되겠지요. 왜냐하면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보다는 남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이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에게 손을 뻗으면, 그 사람이 또 저의 손을 잡아주겠죠. 그래서 서로 상처 난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묻고 싶은 것입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 괜찮은 건지 슬쩍 인사를 건네 봅니다. 얼굴을 보고 확인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기에.  


Writer 이현서
22세, 요즘은 집에 틀어박혀 책도 보고, 감상도 틈틈이 쓰고 있습니다.
#에세이#코로나#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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