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직장을 그만두고 호랑이 캐릭터를 만든 이유

탈직장을 꿈꾸는 디자이너 브랜드 '무직타이거'

20대라면 한 번쯤 캠퍼스에서, 친구 가방 속에서, 인스타그램에서 이 호랑이 캐릭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늘어진 포즈에 천하 태평한 표정이 매력 포인트인 ‘뚱랑이’다. ‘어떤 작가가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분명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벗어났다. ‘뚱랑이’의 엄빠(?)는 대기업을 퇴사하고 나온 8년차 직장인 부부였다.  

‘뚱랑이’ 캐릭터로 노트북 파우치, 에어팟 케이스 등 생활 제품을 디자인하는 브랜드 ‘무직타이거’의 두 대표, 송의섭과 배진영을 만났다.
   
(왼쪽) 송의섭 대표 (오른쪽) 배진영 대표 
무직타이거라는 브랜드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의섭: 무직타이거는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일상 속 제품을 디자인하는 브랜드입니다. ‘뚱랑이’ 뿐만 아니라, ‘헤리티지 타이거’ 등 다양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굿즈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엔 민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전통적인 호랑이를 그리셨더라고요. ‘뚱랑이’는 훨씬 현대적인 느낌인데, 어떻게 지금의 ‘뚱랑이’가 탄생하게 됐나요? 
진영: 초반엔 컨셉과 그림체를 여러 가지로 바꿔가면서 ‘1일 1드로잉’을 했어요. 그러다 캐릭터를 조금 더 귀엽게 표현하려고 선을 단순화했더니 SNS 팔로워들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대중의 취향을 천천히 맞춰가면서 캐릭터의 특성을 바꿔나갔고, 지금의 ‘뚱랑이’가 탄생했죠.  

민화와 호랑이로 디자인을 시작하셨는데, 평소에도 역사나 전통, 민화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의섭: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 디자인 센터가 있었어요. 미국센터, 유럽센터, 한국센터 등 지역별로 나뉘어 서로 경쟁하는 구조였죠. 거기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뿌리를 둬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한국에 뿌리를 두고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1020대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의섭: 늘어져 있는 ‘뚱랑이’의 모습에 많이 공감해 주시더라고요. 조금 쉬어도 되고, 누워있어도 괜찮다는 의미로 다가가는 것 같아요. 이런 모습 때문에 힐링이 된달까요? 실제로 ‘뚱랑이’가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웃음)
  
혹시 그런 늘어지는 모습을 한 뚱랑이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물이 있나요? 
진영: “100일 뒤면 2020년이 지나가 버린다”며 SNS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어요. “한 해 동안 이룬 게 없어. 남은 100일 동안 뭘 해야 하지?”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글이 많더라고요. 딱히 걱정할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뚱랑이’가 늘어져 있는 그림을 그렸어요. “100일 동안 뒹굴뒹굴하면서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행복하기만 하면 돼.”라는 메시지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했는데, 너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댓글에 각자 친구들을 태그해서 “야, 우리 괜찮대”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고, ‘이래서 뚱랑이를 좋아해 주시는구나’ 느꼈죠.  

인스타그램에 올려 두신 그림들이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세요? 
의섭: 딱 한 가지 소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건 아니고, 여러 분야에서 영감을 얻죠. 책을 많이 읽고, 갤러리도 최대한 가보려고 노력해요. TV도 일부러 더 챙겨 보고요. 일상에서 ‘번뜩’하고 “이런 소재로 그리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정말 여러 방면으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진영: 이전 회사에서는 세상과 단절되어도 디자이너로서 업무를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는 건 다른 문제더라고요.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고, 사람들이 SNS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아야 해요.  

문구•팬시류는 특히 유행이 엄청 빠르게 바뀌는 분야잖아요? 무직타이거의 제품들은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는 것 같아요.
의섭: 아니에요, 회사에 30대밖에 없어서 트렌드 캐치가 느려요. (웃음) 그래도 디자이너다 보니까, 조금 더 영(young)하게 표현하는 기술이 있는 것 같아요. 진영: 운영 실장님이 굉장히 젊은 마인드를 갖고 계세요. 저희가 모르는 신조어도 잘 쓰고 102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을 실시간으로 접하시거든요. 그분이 제일 가까이서 아이디어를 주시곤 하죠.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대학생 친구들이 제품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고요.
  
대학생 직원이 이름을 지어준 제품은 뭐였어요? 
진영: ‘뚱랑이’의 볼이 귀엽게 눌려 있는 키링을 제작하고, 이름을 뭐라고 지을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대학생 친구가 “짜부타이거 어때요?”라고 아이디어를 던져줘서 실제로 그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했어요. (웃음)  

회사에서 7~8년 정도 근무하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진행하셨나요? 
의섭: 자동차 외관 디자이너로 근무했습니다. 말 그대로 자동차의 외관을 드로잉하고 디자인하는 업무를 담당했어요. 진영: 샘표라는 브랜드에서 제품 패키지 디자인을 하다가, 현대 모비스로 이직해서 계기판이나 미디어 화면 등 차량 디스플레이에 뜨는 그래픽을 디자인했어요.  

요즘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회사를 퇴사하셨네요. 솔직히 아쉽거나 힘든 부분은 없었나요? 
의섭: 요즘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져서 크게 아쉽진 않았어요.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퇴사했거든요. 아예 직업을 바꿔가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진영: 전혀 아쉽거나 후회되지 않았어요. ‘30년 동안 계속 이렇게 회사생활을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현타가 왔거든요. 미래가 너무 명확하게 예상되니까 지루할 것 같더라고요. 안정적인 건 좋은데, ‘냄비 속 개구리’ 같잖아요. (웃음)  

냄비 속 개구리요…? 무슨 뜻이죠? 
의섭: the boiled frog 신드롬이요. 개구리를 삶으려면 뜨거운 물에 바로 넣으면 안 되고, 불을 서서히 올려야 본인이 삶아지는 것도 모른 채 익는다고 하는... 좀 잔인한 내용이긴 한데 비유적 표현이니까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웃음) 진영: 회사 생활이 너무 안정적이고 따뜻하면 나가기가 싫어지잖아요? 특히 대기업은 승진이나 연봉 테이블이 다 정해져 있어서 미래를 예측하기가 더 쉬웠거든요. 퇴사 고민은 길었는데 결정은 순식간에 했어요.  

그럼 반대로 자체 브랜드를 가진 디자이너의 가장 큰 장점은 뭔가요? 
진영: 무엇이든 도전해볼 수 있다는 점이요. 회사 업무는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도나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자체 브랜드를 운영할 땐, 내가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해요. 열심히 하면 잘 되고, 마냥 놀기만 하면 잘 안 되고. (웃음)
의섭: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회사에서 일할 땐 아무리 열심히 해도 들인 노력과 성취감이 정비례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자기 브랜드를 꾸려나갈 땐 그 두 개가 정비례해요. 가끔은 결과나 성취감이 배가 돼서 돌아올 때가 있어요. 예상보다 더 많은 호응을 얻을 때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 중, 취업과 브랜드 론칭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둘 다 겪어본 업계 선배로서 20대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의섭: 일단 회사는 경험해보면 좋아요. 회사에서 적어도 3년 이상 일해보면 업무 프로세스를 알 수 있고, 트렌드를 보는 감각을 키울 수 있거든요. 배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배운 다음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진영: 디자인이 출시되기까지 회사 내부에서 끊임없는 수정을 거쳐요. 마치 돌을 깎아서 창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 과정을 만약 혼자 했다면 어디까지 깎아야 창이 되는지, 어디서 깎는 걸 멈춰야 적당한지 그 정도를 잘 몰랐을 것 같아요. 커다란 조직 안에서 창을 첨예하게 깎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적정선을 판단하는 감각을 키울 수 있었죠. 덕분에 지금 무직타이거의 제품을 출시할 때 위험도가 줄어든 것 같아요.  
 
역시 업계에 오래 계셔서 그런지 조언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네요. 
진영: 더 개인적인 조언을 해주자면, 회사 경험이 있다 보니까 쉽게 쫄지 않는 것 같아요. (웃음)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미팅 나갈 일이 많거든요. 만약에 아무런 사회 경험도 없이 혼자 브랜드를 론칭했다면, 협업 요청이 오거나 미팅 자리에 나갈 때마다 엄청 쫄았을 것 같아요.  

두 분의 대학생활도 궁금해요. 대학생 때부터 디자인을 전공하셨던 거죠? 원래부터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나요? 
의섭: 네, 시각디자인과를 전공했어요. 대학생 때부터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죠. 글로벌하게 경험치를 쌓고 싶어서 현대그룹으로 입사했고, 꽤 오랫동안 재밌게 일했어요.
진영: 기업에 취직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게 꿈이었어요.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다 보니 엄마가 “넌 절대 사업하지 마.”라고 하셔서 남자친구도 직장인이길 바랐죠. 어쩌다 보니 대학생 때부터 CC였던 저희 둘이 같이 사업을 하고 있네요. (웃음)  

동아리, 공모전 등 대학생 때 여러 경험을 하잖아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도움이 많이 됐던 경험이 있나요? 
의섭: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라고 글자로 디자인을 하는 분야가 있는데, 관련 동아리를 했던 경험이 있어요. 전공과 관련 있는 분야는 아니어서 회사에서 일할 땐 큰 도움이 안 됐어요. 지금은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모든 일을 스스로 하려다 보니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진영: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 놓는 게 중요해요. 저도 주전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도자 공예를 복수전공 했거든요. 그때의 경험이 업무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할 순 없지만, 도전하는 태도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무직타이거 브랜드를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됐어요. 3년간 브랜드를 유지해 온 원동력이 있다면? 
진영: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으니 잘 돼야 하잖아요?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웃음) 저희 둘 다 기본적으로 욕심이 있는 성향이라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3년간 유지해온 것 같아요.
의섭: 이름은 무직타이거지만, 직장이 없다는 뜻이지 직업이 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되게 아이러니한 게, 늘어진 호랑이를 정말 열심히 그리거든요. (웃음)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덧 3년을 지나왔네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하셨는데, 무직타이거라는 브랜드로 또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진영: ‘대원미디어’라는 파트너사와 함께 계획을 세우는 중이에요. 그 전까지만 해도 캐릭터를 콘텐츠화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고 싶긴 했지만, 굿즈 판매 정도만 생각했죠.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지만, 영상이든 그림이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브랜드를 키워가고 싶어요.  

대학내일 독자분들께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의섭: 아까 20대에게 조언해달라는 질문에 답할 때도 느꼈지만, 요즘 대학생들에게 감히 뭐라고 조언해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저희 때보다 취업하기 더 어려워졌잖아요?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해주는 조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섣불리 조언하기가 조심스럽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나아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진영: 남의 눈치 안 보고 사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그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죠. 요즘은 기준이 워낙 다양해져서 “이 분야에서 내가 제일 높은 깃발을 꽂았다.”라고 할 수 없더라고요. 남의 눈치 보느라고 쏟는 시간과 열정이 너무 아까워요. 그냥 스스로의 목소리에 잘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디자인브랜드창업#무직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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