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내가 마신 그 모든, 맵고 짜고 단술

새내기 때 술 마실 핑계는 차고 넘쳤다.

매운 술 
나는 술을 잘못 배웠다. 새내기 때부터 부어라 마셔라밖에 할 줄 모르는 동기들과 술자리가 잦다보니 빨리, 많이, 오래 마셨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마셔댔다. 술 마실 핑계는 차고 넘쳤다. 시험이 끝나서, 팀플을 하던 와중에, 과제가 너무 많아서, 마침 동기가 헤어져서, 교수님이 수업 중에 헛기침을 몇 번 하는지 내기를 하다 졌기 때문에, 강의를 째보고 싶은 로망으로, 새내기라서, OT때 점찍어둔 후배가 학생회로 들어왔기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말도 안 되게 예쁘니까, 어쩌면 마실 이유가 없어서 마셨을 것이다.

놀 거 다 놀아본 날라리가 정신 차리고 독하게 공부하면 무섭다는 구전설화는 술쟁이 대학생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셔볼 술은 대학생활 내내 마셔댔기에 사회 초년생인 지금은 죽어라 마시고 싶진 않다. 그땐 그랬다. 새벽 5시까지 소주병을 늘어놓고서 4시간 뒤인 오전 9시 강의에 출튀하는, 청춘답고도 건방진 행동을 한 학기 내내 했다. 지금은 시켜도 못 마실 그때 그 시절 매운맛 술. 그때 그 동기들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마셔도 이제는 술이 안 맵다. 매운 닭발을 먹고 계란찜을 몇 번 퍼먹으면 중화되듯이 맵지가 않다.
  
짠 술
나만의 규칙이 생겼다. 슬플 때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정했다. 몇 번의 최종면접 탈락 이후 가진 술자리에서 나는 떨어진 회사에 대한 미련으로 구남친처럼 ‘자니?’를 옛 연인에게 보내버렸다. 미련 없이 카톡 탈퇴를 눌렀고 이불을 먼지 나도록 뻥뻥 차야했다. 광화문과 여의도 그리고 상암에 있는 수많은 언론사들을 보며 내 자리 하나쯤 있을 거라 꿈꿨다. 나보다 먼저 취업준비에 뛰어든 친구는 그럴 것 같지? 근데 내가 해봤잖아? 진짜 없다? 하며 산통을 깼다. 나는 속으로 네가 열심히 안 해서 그렇겠지, 라며 흘려들었다. 그 사이에 친구는 기특하게도 광화문에 본인의 자리를 만들었고, 나는 내 자리 없이 계속 서 있는 신세가 되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새내기 때 술통에 빠지느라 날렸던 학점을 빠른 속도로 복구하느라 막학기는 교내 아싸로 살며 대외활동 수십 개에 공모전과 인턴을 몇 번이나 했는데. 뭐 하나에 빠지면 무섭게 빠지는 편이라 취업 준비에 돌입하면서부터는 연애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그저 나를 더 갈아 넣을 생각만 했다. 회사 탓도, 사회 탓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현실은 자꾸 내게 어깃장을 놨다. 처음에는 서류에서 떨어질 때, 나중에는 최종 면접에서 떨어질 때만 술을 마셨다. 나 같은 청년들은 차고 넘쳐서 같이 마실 사람 또한 차고 넘쳤다. 짠맛 술. 아, 그렇게 마셔댈 때는 이게 눈물인지 술인지 참, 짰다.  

단 술. 
숨 돌릴 틈이 생겼다. 누군가 쫓아와 죽을 듯이 달리다가 숨이 넘어가려던 차에, 백수생활을 청산했다. 나보다 똑똑해서 말문을 막히게 하던 옛 연인이 그랬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 좋다고. 나는 그 말에 머리채 풀고 미친 듯이 달렸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서야 겨우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럼 이제 나는 배울 점 많은 어른이 된 걸까.

나이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퀘스트를 깨듯 인생의 숙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포션 빨듯 술을 즐겼고 그곳에서 얻은 사람들이 막막한 항해의 동료가 돼주었다. 목에 걸린 사원증이 무거워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동기들과 삼겹살에 달달한 소주 한잔. 단맛 술. 절제할 줄 아는 자가 진정으로 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럴 때야말로 술이 달다.  


Writer 짝주
술을 짝으로 마십니다. 알콜 중독자는 전혀 아니에요. 27살, 14학번입니다.   
#대학생에디터#새내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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