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수능은 그런 일이 아닐지 몰라

입시가 끝나고 많이 울었다.

‘수능’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좀, 어딘가, 뭉클해지는 느낌이 있다. 대학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십몇 년 간의 고생을 평가받는 날이 아니던가.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지. 참 오랜만의 수능이다. 대학에 오며 이제 나와 더는 상관없게 된 수능. 나 힘든 것에 바빠서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던 작년 수능날의 일이 떠오른다.  

얼마 있음 수능이래, 며칠 후에 수능이래, 내일 수능이래, 그러다가 오늘 수능이래, 이런 말들을 넘겨들으며 작년 이맘때, 오랜만에 안산에 갔었다. 대학만 바라보던 고등학교 시절의 내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 학원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학교 가는 버스, 갈까 싶었던 대학교 셔틀버스, 아르바이트 했던 가게……. 그런 곳들을 정말 오랜만에 걸으면서, 체육복을 입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서로를 마주치고 “잘 봤어?” 하는 친구들을 보고서야 아, 오늘 진짜 수능이지 싶었다.  

그제야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지금쯤 대부분은 번화가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있을 거다(올해는 코로나19로 그런 분위기마저 여의치 않아졌겠지만). 가족들과 피자를 먹고 있을 수도 있고, 학원으로 돌아가 가채점을 했을 수도 있겠지. 나름대로 기분이 좋을 수도 있고, 어쩌면 많이들 울고 있을 것이다.  

난 수능날 뭘 했더라? 수능이 한창 까마득한 줄로만 알던 고2 때는 학교가 쉬니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토스트를 먹었다. 그러다 토스트 가게에 혼자 들어온, 수능을 치고 온 듯한 지친 학생을 봤었고, 그 기억이 어딘가 크게 남았는지 아직도 수능 하면 그 사람이 생각난다. 내가 당사자가 되어 수능을 봤을 땐 바로 미술 학원에 가서 가채점을 했다. 나름 괜찮은 점수여서 울진 않았던 것 같다. 수능이 끝나도 입시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 후련하지도 않았다. 입시가 끝나고는 많이 울었지만.  
  
대학은 중요하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데 대학보다 중요한 것들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너무 뻔한 말이긴 한데, 생각보다 조금 더 많다. 어쩌면 입시에 실패해 어영부영 대학을 다니고 있는 대학생의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자기 합리화를 한다고 해서 피해를 보는 이도 없고, 지구 종말이 오는 것도 아니니까 계속해서 써보겠다.  

난 입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다만 입시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지 내 뒤통수를 후려쳤고, 나는 예상과 다른 전개에 (많이) 놀라서 울었다. 하지만 그때를 떠올려 보면 후회가 남는 건 공부를 한 장이라도 더 할걸, 그림을 한 장이라도 더 그려볼걸, 하는 게 아니다. 그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하기 싫은 걸 그렇게 붙잡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나는 내가 대학에, 모의고사 성적에, 그림 평가에, 옆 친구의 그림이 잘 그려진 것에 목을 매며 학창 시절을 다 보낸 게 아깝다. 흑역사를 조금 더 파헤쳐보면 대학에 오고 얼마 전까지는 미련이 남아서, 이 학교가 너무 싫어서, 매사 싫고 우울했다. 내 지난날들에게 미안했다. 내 미래에게도 물론 미안해했겠지. 그렇게 학교를 어영부영 다니면서, 교수님이 하라는 대로, 학점만 받아 챙기면서 1년을 보냈다.  

지금 내가 후회하는 건 그렇게 보낸 시간, 그렇게 쓴 마음이다. 무슨 자격증을 땄더라면, 뭘 더 했더라면, 하고 바라는 게 아니다. 그 시절에, 충분히 행복해도 되었을 시간들에, 미련하게 허우적대던 내 스무 살이 안쓰러운 거다. 우울한 그 시절이 분명 지금의 나를 만들기도 했다. 마음이 조금 더 마음이 단단해졌다던가 그런 것. 하지만 수능은 누군가의 한 시절을 불행하게 해도 되는 요소가 아니다. 그건 아주 분명하다. 그때의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었고, 의무도 있었다.  

행복해지라고 남이 옆에서 아무리 읊어대도, 우리는 각자의 사정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보듬는 것뿐이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우울은 조금 슬픈 구석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삶의 어느 순간에서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자책하며 우울하게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 인생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너의 인생이라고.  


Writer 햇빛
25세. 제 인생은 되도록 재미있는 게 좋겠어요.  
#대학생에세이#입시#행복할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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