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자만추 시대에 플라토닉 러브를 말하다

4월의 문화 리뷰
한때 ‘플라토닉 러브’라는 개념이 유행했다. ‘손만 잡고 잘게’도 입구컷 당하는 순수한 정신 연애의 세계. 지금은 어떤가? ‘자고 만남 추구’라는 말까지 나오며 유교걸, 보이들의 뒷목을 잡게 하는, ‘남녀칠세부동석’보다 ‘남녀칠명합석’이 더 어울리는 시대다. 과연 2023년에도 플라토닉 러브가 가능할까? 그 답을 엿볼 수 있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영화 <화양연화>


“우린 그들과 달라요.”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 사이임을 알게 된 소려진이 주모운에게 한 말이다. 불륜의 시작점을 찾기 위해 둘은 계속 만나게 되고, 결국 또 다른 불륜이 시작된다. 서로의 끌림을 거부하려 했지만 육체적 사랑보다 더 큰 정신적 사랑이 어느새 가슴 깊이 자리 잡은 것이다. 아니, 자신의 배우자들과 같아질 수 없기에 둘은 플라토닉 러브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짧은 대사들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넘어서는 짜릿한 감정을 전달한다.

“나도 처음에는 당신처럼 생각했어요. 우린 그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틀렸어요.” 영화 말미, 주모운이 소려진에게 말한다. 각자의 배우자가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상태까지 가버린 둘은 마지막 결심을 내린다. 주모운이 홍콩을 떠나는 것으로 이별을 연습하고 실행하기로. 둘은 과연 서로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을까? 물리적인 거리감을 핑계로, 감정마저 끊어낼 수 있을까?




영화 <Her>

 
ChatGPT가 발전하여 음성 서비스까지 도입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주인공 테오도르는 AI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 아니 구매한 후 사랑에 빠진다. 만질 수 있는 육체, 볼 수 있는 캐릭터 이미지도 없지만 그건 테오도르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어폰만 꽂으면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원하는 답을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로 답해주는 사만다가 언제나 함께니까. 어쩌면 이런 모습이 근미래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사랑의 유형일 것이다. 내가 듣고 싶은 말과 위로를 아낌없이 해주는 AI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테오도르처럼 사람에게 상처받은 직후라면 더더욱 말이다. 어느 날 우리도 어느 개발자가 만든 코딩 값과 플라토닉 러브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연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끝까지 갈등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AI와의 플라토닉 러브는 진짜일까 착각일까? <Her>는 우리에게 사랑의 존재와 유형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Editor 김학성
Designer 몽미꾸  
#문화리뷰#컬쳐#플라토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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