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내 인생은 어쩌면 애매한 덕질의 연속이었을까

사랑하는 것들이 많은 만큼 나의 색은 다채로울 것이다

평생 무언가를 덕질하며 살아왔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보다 음악방송과 연예 뉴스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하기 바빴고, 나의 초중고 졸업사진엔 내가 당시 무엇에 빠졌었는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렇게 나의 학창시절은 방송국PD, 아나운서, 작가, 공연기획자 등의 수십 가지 꿈으로 가득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연예계에 관심이 많았지만, 11살에 전학생 친구를 따라 본격적으로 ‘덕질’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내가 특정 이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부모님께 숨겼고, 때로는 원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못해 혼자 방에서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일 년 정도가 지나니, 주변 애들 사이에서도 덕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분위기와 부모님의 지원이 필요하여 자연스레 내 취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의 덕질 기간은 항상 길지 않았다.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돌을 3년간 좋아한 것을 제외하고, 길면 1년, 대부분 몇 개월을 흠뻑 빠졌다가 식어버리는 ‘금사빠’, ‘금사식’이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관심사가 다양해서 뮤지컬, 야구, 드라마 등 가리지 않고 좋아해, 잡지식만 많은 사람이었다. 어느덧 대학교 고학년이 된 최근에는 나의 이러한 취향이 방향성 없는, 줏대 없는 사람인 것 같아 회의감이 들어왔다. 내가 동경하고 눈길을 주는 사람들은 각자만의 취향과 분위기가 확고해서 좋아하는 건데, 정작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어떤 사람일지 정리하기 힘들었다.  
 

코로나와 겹쳐 로망을 실천하지 못했던 지난 기간을 청산하고자 최근 2년을 계획 없이 보냈다. 나는 그때마다 마음 가는 선택을 했고,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벌써 졸업을 기다리는 동기들을 보면 내 현실에 괜히 조바심이 난다. 처음 만난 누구와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보고 들은 이야기와 유의미한 몇몇 경험들이 있지만,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떳떳하게 대답할 수 없는 요즘이다. 가뜩이나 자기PR이 매우 중요해진 시대에 이런 걱정은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밝히면 나는 “저도 그거 좋아해요!”라고 맞장구쳤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에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내 인생은 내 덕질인생과 꽤 닮지 않았는가. 이제는 덕후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넓고 얕은 ‘덕력’으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덕질을 따라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친구들이 덕후로 여기는, 항상 무언가에 빠져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작년부터 과거에 취미였던 야구 직관과 공연 관람을 덕후인 친구를 통해서 따라갔다. 한동안 그 분야 ‘머글’이었던 나는 팬들의 지나친 열정이 무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으나, 현장을 함께 느끼며 익숙했던 감각을 되찾았다. 그들의 열정은 무모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개인적인 소중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보답하는선수들의 경기와 아티스트의 무대, 더운 날씨를 더 뜨겁게 데우는 수많은 관객의 발걸음이 만들어낸 현장이었다. 그 현장에선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자신만이 찾을 수 있는 영감과 원동력, 깨달음이 있다.  

이십 대 초반과 대학생 때,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라는 조언은 주저 없이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대상이 무엇이든 애정을 쏟아 보고, 그것을 통해 내 애정을 확인하는 과정은 인생의 방향을 찾을 수도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의기소침해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 세상에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지만, 그것들을 모두 좋아해 줄 것이고, 그만큼 나의 색은 다채로울 것이다. 그리고 나의 다채로움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Writer. 최현수
사랑가득한 삶을 살겠습니다.
#20's voice#대학생에세이#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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