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오늘도 덕질하는 젊은 날의 당신에게

덕질에 대한 짧은 에세이


오뉴월의 푸르름이 싱그러운 캠퍼스에서 오늘도 나는 많은 학생을 마주한다. 이번 학기도 캠퍼스에서 많은 학생을 마주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그들 삶의 락(樂)은 무엇일까?’ 상상해 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많은 이에게 ‘덕질’은 삶의 희(喜)요 락(樂)이다. 좋아하는 대상, 분야에 관련된 것들을 열정적으로 파고들거나 수집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인생의 씁쓸함에 때로는 좌절하고 닥쳐올 앞날에 대한 고민에 조바심이 날 때도 나를 위한 찰나의 행복에 몰두하는 순간은 충분히 가치 있다.  
 

OTT 서비스가 부재하던 시절, 나는 쇼탱(쇼! 뮤직탱크)과 뮤뱅(뮤직뱅크) 생방을 손꼽아 기다리고 특정 가수의 신곡 발매일이면 라디오 프로그램에 주의를 집중하던 학생이었다. 온 세상이 연예인 덕질에 물음표를 던지던 그때, 나는 굴하지 않고 신화, 동방신기의 덕질로 KPOP 부흥기를 누렸다. 오빠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학창 시절의 나는 어쩌면 다른 어떤 시절의 나보다 개성 있었고, 열정 넘쳤으며, 생산적인 에너지로 가득했던 것 같다.  

인생은 알 수가 없다. 덕업일치를 외치며 예능 PD를 꿈꾸던 내가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서 꽤 오랜 시간 외국 생활을 했으니 말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논문을 쓰고 출판하고 타국에서 직업을 찾는 일은 매일이 나와의 싸움이었다.

운이 좋아 면접에 초청 받더라도 3박 4일가량 이어지는 임용 인터뷰가 기다렸다. 나의 필요성을 상대방에게 증명해야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는 고독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큰 위로를 전해준 것은 나의 학창 시절을 풍요롭게 해주던 음악이었다.


주말이면 물 한 병과 스마트폰을 챙겨 하이킹을 하며 신화의 <I Pray 4 U>, BTS의 <Euphoria>, <Answer : Love Myself>와 같은 노래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BTS의 노랫말처럼 현생에 치여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되새기곤 했고 조금 더 자신을 믿어주자 다짐하곤 했다.

덕질의 효용감은 놀라웠다. 맞닥뜨린 벽 앞에서 자신의 능력 부재를 탓하며 도망치고 싶었던 때 K-POP이 비서구권을 넘어 서구의 음반 차트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음악뿐 아니라 K-POP과 관련된 콘텐츠가 하나의 큰 문화 현상으로 확장되어 가는 흐름까지 현장에서 경험했다.  

덕질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콘서트에 가고, ‘최애’의 무대를 찾아보며 팬덤이 생산하는 아이디어 넘치는 ‘밈’과 2차 창작물을 즐기는 일은 나의 현생을 살아가게 했던 에너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좌절하는 나를 발견했지만, 또 그때마다 소소한 삶의 희(喜)와 락(樂)을 찾아가며 오늘도 이 자리를 지키고 살아갈 동기를 스스로 부여했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변화하고 있는 K-문화 콘텐츠와 미래 세대의 삶에 대해 사회학자로서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현재 진행 중이니 나름 덕업일치의 삶을 사는 중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젊은 날의 당신, 혹시 덕질하고 있는가? 무엇이 되었건 그 덕질을 놓지 않길 바란다. 현생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줄, 좌절이 조금은 더 견딜 만한 것이 되게 할, 지루한 일상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만들어 줄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무엇을 할지 망설이는 당신의 미래에 반짝이는 해답을 제공해 줄 발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지 모를 일이다.    
 

Writer. 이연진 교수
이연진 교수는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다. 인구학을 전공했고 홍콩대학교에서 사회정책을 가르쳤다. 2년 전 한국에 돌아와 빅데이터와 사회학 논문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고, 이 시대 젊은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는 삶을 꿈꾸며 덕업일치를 위해 열일중이다.
#덕질#이연진교수#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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