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많은 사람을 얻진 못할지언정 단단한 자신을

이제야 비로소 나를 찾은 느낌이다.

초중고 도합 12년의 학창 시절 내내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얼음공주’ 캐릭터를 끈덕지게 유지해 온, 그런데 혼자는 죽기보다 싫었던 내게 새로운 환경은 항상 지옥이었다. 신기하게도 눈알만 굴리며 가만히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와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었기에 혼자는 면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가족과 일기장에만 주절주절 이야기를 수더분하게 늘어놓는 나에게, 주위에 사람이 넘쳐나는 인기쟁이들, 소위 ‘인싸’들은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고 언젠가 한 번은 입어 보고 싶은 예쁜 옷이었다.  

그렇게 19년 차 인싸 지망생이었던 나는 20살이 되어 ‘대학교’라는 아주 좋은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대학교는 전국 각지에 모인 새로운 또래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타지에서 첫 시작을 앞둔 나에게 이런 ‘티 없이 완벽한 새로움’은 이미지 변신을 하기 너무나도 적합한 타이밍이었다.  
 

1학년 새 학기부터 과 대표를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나섰고, 비록 술을 못 마셔 얼굴과 몸이 울긋불긋 홍당무가 되더라도 각종 술자리엔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나갔다. 그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고 즐기기 위해 알지도 못하며 좋아하지도 않는 술 게임을 유튜브로 예습해 갔고, 다채로운 사람들과의 인맥을 위해 금 같은 회비까지 내며 동아리도 여럿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는 2년이 지나갔다. 여느 때처럼 기숙사 침대에 누워 창밖에 휘날리는 눈을 가만히 보고 있던 밤, 가볍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눈송이들이 지금 내 인간관계와 너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이들이 많이 늘었지만, 쾌활하고 사람 좋아하는 타고난 인싸가 아닌 나에게 그들을 친구로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지친 몸과 마음, 그리고 연락만 하지 않았다면 바로 끊어질 얕고 방대한 인간관계뿐이었다.  

그날부로 나는 또다시 아싸의 길을 선택했다. 아무도 모르게 지르고 본 2023년도 휴학은 다시 돌아봐도 정말 나다운 선택이었다. 혼자 남겨질 시간이 필요했고 넓은 인간관계를 쫓느라 놓쳤던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이 간절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한, 나만을 위한 결정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경계하는지 나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표와 느낌표를 주고받았다. 상자 속에 웅크리고 있던 내 일기장을 다시 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나를 찾기 위해 매일 하나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밥 먹는 친구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천천히 점심 먹는 것을 좋아한다. 카페에서 고소한 오트라떼와 바나나 푸딩을 먹으며 마음껏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좋아한다. 에메랄드 빛 제주 바다에서 종일 유영하고, 지는 해를 보며 밴드음악을 듣는 걸 좋아한다. 독자들에게 다정한 매거진 에디터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도 찾았다.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맛의 행복들은 양껏 맛봤다. 내 삶 속 그 많은 것 중, 내가 혼자라는 사실 하나쯤은 별거 아니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를 찾은 느낌이다. 빈자리가 생기니 항상 내 곁을 지켜준 소중한 인연들도 다시 보였고, 나와 모양이 잘 맞는 사람들이 새롭게 그 자리를 메꾸었다. 다시 학교에 돌아간다면, 난 또다시 자발적 아싸가 될 계획이다. 많은 사람에 날 욱여넣으며 갉아먹을 바엔, 충분하고 행복한 삶 속에서 홀로 매끄럽게 헤엄칠 작정이다.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인싸 지망생이었던 과거의 나와 비슷하다면, 나는 그만 애써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사람을 얻진 못할지언정 단단한 나 자신 하나를 얻게 될 테니까.  


Writer. Hee 
일본, 오호리공원에서 여유 속을 유영하며
#20's voice#대학생 에세이#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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