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반수할 결심
“재수는 없어도, 반수는 남았다.”
이 학교에 있기엔 내가 너무 아까워 떠나겠다며,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홀연히 사라진 동기 놈이 했던 말이다. 수능 망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니, 보험으로 이 학교엔 적만 두고 고3들 곁으로 떠나 버렸다. 나중에 듣기로는 반수 성적도 그렇게 좋진 않았다더라. 그런데, 더 좋은 데로 가겠다며 떠벌려둔 얘기가 있어 차마 돌아오진 못했던 모양이었다.
반수엔 결심이 필요하다. 떠날 용기와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도 필수다. 한동안 잊고 살던 수험생활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바이오 리듬을 다시 고3 수험생으로 돌린다는 건 어지간한 결심이 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어쩌면 재수보다 힘든 게 반수일지도 모른다.
여기 그 힘든 걸 결심한 대학생들이 있다. 이들의 ‘반수할 결심’은 어디서 비롯했을까?
반수엔 결심이 필요하다. 떠날 용기와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도 필수다. 한동안 잊고 살던 수험생활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바이오 리듬을 다시 고3 수험생으로 돌린다는 건 어지간한 결심이 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어쩌면 재수보다 힘든 게 반수일지도 모른다.
여기 그 힘든 걸 결심한 대학생들이 있다. 이들의 ‘반수할 결심’은 어디서 비롯했을까?

목표가 바뀌면 끊임없이 도전해도 돼
송딸기 / 경상국립대학교 23학번
처음엔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계열로 입학했는데, 약사가 되고 싶어 반수로 경상국립대학교 약학대학에 진학했다. 반수를 결심한 건 당시 성과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도 있고, 나중에 취업 준비가 두려워서인 것도 같다.
처음 입학할 땐 남들보다 늦은 것에 걱정이 조금 있었는데, 막상 약대에 오니까 학생들 나이대가 매우 다양했다. 다른 일 하시다가 수능 다시 쳐서 오신 분도 계셨는데, 그 모습을 보니 전혀 늦었다는 생각이 안 들고, 앞으로도 목표가 바뀌면 끊임없이 도전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도전을 회피할 필요는 없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찾고, 자신을 알아가고, 새로운 길이 궁금하다면 과감하게 도전했으면 한다. 100세 시대인데,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20대엔 더 방황해도 된다.

스스로 내 실력을 인정할 수 없었다
11 / 서강대학교 23학번
첫 학교는 건국대학교 식품유통공학과였다. 6지망 중 5지망으로 합격한 학교이고, 정확히 뭘 배우는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합격했다는 기쁨으로 후회없이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열심히 공부해 1학기 18학점 수강 4.4/4.5 성적으로 딘즈 리스트 상을 수상하고 성적 우수 장학금도 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학 레벨이라는 틀에서 내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게 보낸 3년의 결과가 5지망 합격이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물론 대학 레벨이나 특정 학교가 사람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내 실력을 인정하지 못해 스무 살 여름에 휴학하고 정시반수를 시작했다.
스스로 후회가 없고 마음이 편해지니 남들이 말하는 레벨이나 사회의 기준 따위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대학에 가서도 고등학생의 기준이나 그 때의 조급함이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부를 위해 진로를 바꾸기로 했다
김민우 / 서울대학교 24학번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다니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1년 동안 경험한 모든 게 가치 있었기에 반수 결심에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메디컬 계열 진로가 주는 장점이 선명해 포기할 수 없었다. 충분한 수준의 고소득을 평생 유지할 수 있다는 압도적인 매력에 끌려 반수에 도전하기로 했다.
덧붙이자면, 사실 대학에 들어온 후 아직까지 연애를 못 해봤는데, 조금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나중에 배우자를 찾을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적성은 의료 분야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모든 직업은 결국 할 만한 수준이면 될 것이고, 소득이 직업을 평가하는 1순위가 될 것 같다는 가치 판단의 결과, 부를 위해 진로를 바꾸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후회는 없을 거다.

사실은 서울에 가고 싶었다
이혜빈 / 중앙대학교 25학번
전적대인 한국교원대학교 특성상 대부분 임용고시 준비를 하다보니 학교 분위기, 커리큘럼 등이 모두 교사 준비, 임용에 맞춰져 있다. 입학 할 때부터 임용 생각이 없었던 난 교육 외에도 다른 분야를 더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사실은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가서 문화생활이나 더 넓은 활동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기도 하고.
전적대와 진학하는 학교 전공이 같아서, 내가 1년 더 이 내용을 똑같이 배워야 하는 게 시간 낭비는 아닐까 걱정도 되고, 전적대에서 맺은 관계가 소중해 모든 걸 두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컸다. 아직도 새내기를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은 긴장되지만, 전적대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에 후회는 없다.
전적대를 1년동안 다니면서 인간관계, 학업, 진로 등 다양한 경험으로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하기에 남들보다 1년 늦은 입학이 결코 그냥 허비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기회가 있으면, 한번 도전하길 바란다. 반수를 고민하시는 분들이라면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남아있지 않은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잠시 잊고 살았던 목표 대학에 가고 싶었다
박주선 / 동덕여자대학교 24학번
전적 대학을 다니던 도중, 우연히 2024 대학 모집 요강을 보게 됐다. 한참을 보다가 잠시 잊고 살았던 목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반수 고민으로 마음이 요동치는 내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서 “인생에서 한 번쯤은 원하는 목표를 위해 1년의 시간을 쓰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아”라고 용기를 주셨다. 작은 불씨가 바람을 만나 큰 불씨가 되는 것처럼, 부모님의 응원은 반수를 시작하는 데 최고의 밑거름이 되었다.
남들보다 늦어진다는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반수라는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원하던 성적이 나오지 않아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성장했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는 더욱 또렷해졌다.

재수 학원 학생 중 성공하는 사람은 20%도 안 된다
정민 / 홍익대학교 25학번
나는 수시 학종러였는데, 수시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1학기를 마치고 반수로 정시 공부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재수 학원에 들어갔는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됐다. 비록 재수 학원에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 중에 성공하는 사람은 단 20%도 안 된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본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내가 반수를 하지 않았으면 오직 성공과 실패만 운운하는 단순한 '결과집착형' 인간이 됐겠지만, 반수를 통해 과정이 결과만큼 중요하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그러니 반수를 고민하는 독자가 있다면, 한 번쯤은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린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내 마음 하나는 정말 단단해져 있을 거니까. 우리는 아직 서툰 청춘이니 이 청춘을 마음껏 누리길.
Designer 김밝음
#반수#재수#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