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꿈 많던 아이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어린이날 맞이, 세 명의 대학생이 꺼낸 꿈 이야기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 시절 꿈을 떠올려봤다. 누군가는 장래희망란에 매일 다른 꿈을 썼고, 누군가는 한 가지 꿈만을 오래 붙잡았다. 지금의 전공과 진로는 그 시절의 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세 명의 대학생에게 물었다. 

“꿈 많던 아이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어릴 적 꿈은 통역사, 지금은 모델을 향해 걷는다
박세현 / 홍익대학교 22학번 공연예술학부 뮤지컬전공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는가?
어린 시절 꿈은 통역사였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어학원에 다니며 자연스럽게 영어와 가까워졌다. 중학교 때까지 주 2~3회 어학원을 다니며 영어 단어, 회화 등을 꾸준히 공부했고, 그런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꿈을 키워나갔다.

꿈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던 시기
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차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영어도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고, 통역사라는 목표도 막연하게 느껴졌다.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뭘까’ 고민하던 중, 예전에 한 번 서봤던 모델 무대와 연기 수업의 기억이 계속 떠올랐다. 처음으로 나의 감각에 집중했고, 조금씩 예술이라는 길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1년차 모델, 다양한 브랜드 행사 초청과 촬영

모델이라는 새로운 무대를 만나다
현재는 홍익대학교에서 뮤지컬을 전공하고 있으며, 휴학 중에는 본격적으로 모델 활동에 도전하고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 키가 커서 모델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낯가림과 부족한 자신감 때문에 한 번 무대에 선 뒤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 짧은 경험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잊히지 않았다.

피팅샵에 DM을 수십 통… 그렇게 시작된 모델의 길
군악대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예상치 못한 공백기를 맞으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모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수십 개의 남성 피팅샵에 무작정 인스타그램 DM을 보냈고, 답장이 없어도 멈추지 않았다. 

몇몇 브랜드와 지인을 통해 기회가 조금씩 이어졌고, 그렇게 모델로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모델이든 무엇이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꿈은 계속 변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말고, 소중한 사람들과 많이 웃고 많이 놀아. 
그 시절은 다시 안 오니까 마음껏 즐겨.



노래하던 아이, 지금은 마케터의 길을 걷고 있다
배정민 / 국민대학교 23학번 국제통상학과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는가?
어린 시절 꿈은 가수였다.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세상이 조용해지고, 시간도 잊혔다. 몰입이란 단어를 몰랐던 나이지만, 그 감정이 ‘좋은 것’임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디션, 합창부 활동, 보컬 학원, 축제 무대까지 조용하지만 꾸준한 꿈을 향한 시간이었다. 
 
진로를 접고, 전공을 탐색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 가수라는 길을 잠시 접기로 하면서 막막함이 밀려왔다. 대학 전공 소개 페이지를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처음 마케팅이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다. ‘이건 재미있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 순간 처음으로 ‘가수가 아니어도 괜찮겠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모르는 건, 직접 해보는 타입이다
경영학이 뭔지도 몰랐던 고등학생 시절, 서울대 평생교육원 수업을 직접 수강했다. 교수님께 메일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실제로 정중한 답장을 받았다. 그 경험은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대학내일 트렌드 크롤러, 캠퍼스 에디터, 콘텐츠 제작 활동 등 마케팅 관련 대외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며 실전 감각을 쌓아왔다. 

특히 국민대 피에타 작품을 제보해 뉴스, 해외 기사로 이어진 경험은 '내 손끝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해준 계기였다.  

미국 어학연수

영어 면접에서 웃기만 하던 내가, 미국에서 말하게 되기까지
마케터를 꿈꾸며 영어 면접을 준비했지만, 막상 외국인 앞에 서면 웃거나 리액션밖에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았고, ‘직접 부딪혀봐야겠다’는 생각에 결국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매일 영어를 사용하고, 현지 문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다.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시간을 넘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스스로를 몰아넣은 첫 번째 훈련이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한마디 전한다면?
자신감을 더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 그랬다면 더 편하게 꿈꾸고, 더 용기 있게 도전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지금 막막하고 갈팡질팡하더라도 괜찮아. 그 시간을 그냥 다 느껴도 좋아.
내일은 또 오고, 결국 넌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그녀, 지금은 소설가를 꿈꾸다
김예은 / 단국대학교 23학번 문예창작과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는가? 
어릴 적 내 꿈은 발레리나였다. 공주 같은 의상을 입고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에 하루가 즐거웠다. 
실제로 발레를 배우기도 했는데, 유연성이 부족해 다리찢기를 잘 못했다. 처음엔 선생님이 도와주시려 했지만, 나중엔 그냥 못 본 척 지나치셨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추억이다.
 
소설가라는 진로로 바꾸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엑소 팬이던 시절 '빙의글'을 쓰기 시작한 게 계기였다. 단순한 덕질로 시작했지만, 인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엮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말보다 더 강하다고 느꼈다. 그때 처음으로 ‘나도 이걸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대학에 떨어졌던 나,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받았다
문예창작과 진학을 목표로 준비했지만, 처음엔 모든 대학에서 탈락했다. 스무 살의 봄은 좌절로 가득했고, 하루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고 분석문을 쓰는 루틴을 반복했다. 몸이 무거워 뼈까지 아픈 느낌이 들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추가합격 전화를 받았다. 전년도엔 6번까지 붙었는데, 나는 9번이었다. 정말 기적 같았다.
 
소설 작업 과정과 단대신문 기자활동

전공을 배우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엔 단순히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 됐다. 단대신문,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하며 다양한 글을 써보고 있고, 좋아하는 작가들을 포토카드로 만들어 들고 다니거나 “ㅇㅇ작가 ㄹㅇ 고트임” 같은 말로 밤새 대화하는 게 요즘 내 모습이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릴 적 나에게 처음 완성한 내 소설을 선물하고 싶다. “이렇게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줄 몰랐지?” 하고 말해주며, 마음껏 자랑하고 싶다. 아마 그 모습에, 뿌듯해할 테니까.


어린이날을 맞아 과거를 돌아봤다. 꿈은 바뀌고, 방향도 달라지지만 그때 좋아했던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지금도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또 다른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어떤 어린이로 남을까?



 
#어린이날 꿈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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