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그날, 학생들은 오월 광주를 기록했다.

작별하지 않을 용기로.
'드디어 우리도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겠다.'

1980년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대학생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는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5월 17일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했다. 

"계엄을 즉시 해제하라!" 

뜨거운 외침이 전남대학교에 울려 퍼졌다. 군인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 손에 수첩을 꼭 쥔 청년이 단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두 눈과 발을 바쁘게 움직였다.

오월의 광주를 잊지 않기 위해, 그날을 담은 기록을 따라가 보자. 


1980년 5월 8일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와 조선대학교 민주 투쟁위원회는 민족 민주화 성회를 개최했다. 약 3,500명의 학생이 모여 군부 독재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특히, 휴교령에 대비한 행동 양식을 구체화했으며 친군부 교수들을 '어용 세력'으로 규정하고 척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했다. 


전남대 신문방송사 전대방송 제공


1980년 5월 14일 - 5월 16일 

전두환의 정권 장악 시도를 눈치챈 학생들이 교문을 뛰쳐나왔다. 14일부터 사흘간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시국 성토대회를 개최했다. 지역 대학생과 시민들은 '계엄령 해제'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평화로운 시위를 이어갔다. '광주의 아들'로 불리는 박관현 열사와 정익섭 교수는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전남대 신문방송사 전대방송 제공 
광주 소재 대학생 연합 작성  / 5.18 기념재단 기증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80년 5월 18일 - 5월 27일
 
학생들은 계엄령이 확대되면 다시 모이자는 약속을 기억하고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전남대학교를 장악한 군인들이 등교를 저지하자, 학생들은 '계엄 해제'와 '휴교령 철폐'를 외치며 항의했다. 군인들은 학생들을 무차별 폭행했고, 이는 5.18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 10일간 이어진 광주 시민의 저항은 집단 총살 앞에 막을 내렸다. 

전남대학교 교수 일동 작성 / 연세대학교 기증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80년 5월 18일, 그날 이후 

수많은 민주 시민이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사람은 고문과 재판으로 고통받았다. 광주는 한동안 침묵해야 했지만, 전국 각지에서 그날의 진실을 밝히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음 해 5월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광주 진상 규명'을 주장하는 시위가 지속되었다. 이는 전두환 정권 반대 운동으로 승화되어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경희대학교 대학의 소리 방송국 국제 제공 

조선대학교 교육방송국 제공



언론사가 권력 앞에 침묵할 때, 학생 기자들이 거리로 뛰쳐나갔다. 5월의 광주는 그들 손에 기록되어 지금까지 기억된다. 군인에게 쫓기는 순간, 가쁜 호흡과 일그러진 표정이 절로 떠올라 마음에 박힌다. 우리는 친근한 얼굴들에 '민주주의'를 빚졌다. '작별하지 않을 용기'로 기억을 이어가야 한다. 

#광주 #민주화운동 #5.18
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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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영
2025.05.19 01:41
지금 당장 상명대도 찾으러 가본다 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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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hnfh
2025.05.19 10:42
사용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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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hnfh
2025.05.19 10:42
이번 콘텐츠 기획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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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카아
2025.05.19 14:59
진짜 좋은 콘텐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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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
2025.05.19 19:25
작별하지 않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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