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의 경쟁률을 뚫고 소설가가 된 22살 대학생
여기, '너무 도박 아니냐'는 질문 속에서 스스로를 믿고 수백 시간을 투자한 끝에 이른 나이에 꿈에 가닿은 21살 대학생이 있다. 실패가 두려운 당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금이정'소설가를 소개한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소설 쓰고 있는 금이정이다. 그리고, 오늘은 ‘대학내일’의 인터뷰인 만큼 학생 신분으로도 인사드리겠다.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22학번 김예준이다.
소설가는 되게 낭만적인 직업인 것 같다. 언제부터 꿈 꾸기 시작했는지.
직업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그때의 감정이나 당시 상황에 대한 자투리 글을 썼었다. 이후 대입을 준비하며 문예창작과란 과를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 글을 쓰고 완성해 내는 것도 재밌지만, 누군가 내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순간이 즐거웠다.
'예술하는 사람은 굶어 죽기 좋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또한 등단 제도를 밟아 소설가로 데뷔하더라도, 문단에서 살아남는 소설가는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불안정한 직업을 꿈꾸는 만큼 주변에서 우려나 만류는 없었는지, 그럼에도 꿈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금전과 관련된 현실적인 걱정들을 많이 받았다. 그러한 말들이 애정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은 알았지만, 겁이 나긴 하더라. 나에게 ‘소설’이란 좋아하는 것임과 동시에 먼발치에 있어 닿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포기할까?’ 싶다가도, ‘내가 쓰는 이야기들이 꿈에 가 닿을 수 있도록 믿어주자'라고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다.
습작생들 사이에선 ‘등단하는 것보다 아이돌 준비하는 것이 더 쉽다’라는 농담이 돌 정도로 등단 경쟁률이 높은 것으로 안다. 데뷔하기까지 많은 습작을 했을 것 같다.
사실 그렇게까지 많은 습작을 하지는 못했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 등단 시점인 스물두 살까지 대략 여덟 편 정도를 썼다. 대신 하나의 소설을 쓸 때 많은 정성을 들이는 편이다.
특히 등단작을 오랜 시간 동안 매만졌던 것 같다. 자주 가던 카페에서 수정 작업을 했는데, 붙박이장이라도 된 듯 오픈 시간부터 마감 시간까지 노트북을 두드리곤 했다. 무릇 소설은 쓰면 쓸수록 아쉬운 부분이 보이는 법이라…. 계속 카페 안에 있다 보니 나중에는 손님이 아니라 카페 안에 늘 존재하는 의자나 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그래도 음료나 디저트를 중간중간 많이 시켜 사장님은 좋아하셨다(웃음).
등단하기 전까지 여러 실패를 맛봤다고 들었다. 이런 실패 속에서 본인을 믿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하다.
보통 고등학생 때는 대학 하나에 인생 전체가 결정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나. 입시를 준비했던 문예창작과는 개설 학교가 워낙 적었기에 경쟁률이 굉장히 높았다. 그렇기에 기회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러던 중 수시 면접을 망쳐 한 학교에 떨어지게 되었다. 가고 싶던 학교였는데, 기운이 쭉 빠지더라.
그때 고등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무수히 많은 도전의 기회가 있을 테니 모든 결과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다. 순간이나 어떤 찰나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너무 좋은 말 아닌가. 그때부터 그 말을 삶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로 삼았던 것 같다. 유의미한 결과가 객관적인 지표로 이어지거나 앞으로의 보탬이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결과에 휘둘리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레 뒤따라오기 마련이니까.

약 190:1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현진건 신인문학상’을 통해 데뷔한 것으로 안다. 수상 연락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사실 결과를 바라고 냈다기보다는 실전 경험을 쌓고자 낸 것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정말 놀랐다. 그다음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던 것 같다. 단순히 기쁘다기에는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동시에 꿈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는 생각에 눈물도 나왔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데뷔작인 <스며드는 것들>에는 남편과 애인을 오토바이 사고로 잃은 두 인물이 등장한다. 성별이 다른 여자 화자를 묘사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창작 계기가 궁금하다.
‘용서할 수 없는 존재를 결국에는 용서할 수 있는 날이 올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소설이다. 이 질문과 어울리는 인물을 짜는 과정에서, '용서'라는 개념의 대칭으로 ‘배반’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용서는 기본적으로 어떤 관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면, 배반은 정확히 그 반대에 놓여있는 것이니까. 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아이러니한 관계성이 탄생했다.
소설가에게 등단은 출발선일 뿐, 데뷔 이후의 행보가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포기하지 않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 작품이 잘 되거나 상을 받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 또한 중요하겠지만, 스스로에게 있어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소설을 발표해 나가고 싶다.

소설가 ‘금이정’에게 소설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일종의 ‘초대장’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쓰는 과정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응집시켜 하나의 세계로 만드는 일이라면, 독자에게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느낌이다. 결국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설은 소설로 남을 수 없게 되니까. 그래서 쓰는 과정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읽히는 과정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대학생인 ‘김예준’에게 소설이란?
러닝메이트. 앞선 질문에서 말했듯 더 잘하고 싶고 때로는 멀게 느껴지는 존재가 소설이다. 그렇기에 더 노력하게 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존재다.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도전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한 한마디 부탁한다.
방황과 도전은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는 존재 같단 생각이 든다. 길을 알 수 없어 헤매고, 헤매고 있기에 길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방황하며 걸어온 발자국을 이어보면 그 또한 하나의 길이 되곤 한다. 스스로를 믿고 계속해서 직진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약한 위로일 수 있겠지만, 여러분을 늘 응원하고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