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마지막 한 분을 찾을 때까지
유해 발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유해발굴병들의 이야기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이따 눈뜨면 우리 집 안방이고,
난 아침 먹으면서 형한테 얘기할거야. 정말 진짜 같은 이상한 꿈을 꿨다고...-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 중-
총성과 굉음, 매일 울리는 비명.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꿈이 아닌 전장의 한복판, 6.25의 비극은 75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실로 남아있는 아픈 기억이다. 약 281만 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이 사건은 한반도에 있어 씻을 수 없는 깊은 흉터가 되었다.
휴전 협정 후 7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지만 여전히 전국 산속에는 조국을 지키다 전사한 영웅들이 고향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고향에 무사히 보내드린다는 일념 하나로 총 대신 삽과 붓으로 무장한 특별한 군인이 있다.
바로 “유해발굴병”.
전쟁 영웅들을 집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오늘도 땀을 흘리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하사 홍승혁 (2023. 03. 13 ~ 2025. 03. 12)

유해발굴병이 어떤 병과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유해발굴병은 6.25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자들의 유해와 흔적을 찾아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병과입니다.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지역에 직접 들어가 유해를 발굴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유해발굴병이란 보직을 기존에 알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해당 보직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입대를 앞둔 상황 속 여러 보직을 알아보던 중, 제 대학 동기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유해발굴병으로 복무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해당 병과에 관심 가지고 살펴보며 "유해발굴병은 정말 뜻깊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보직"이란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식지 제4호
발굴 지역 선정부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알고 싶습니다
우선, 많은 사료를 통해 전투지역이었던 곳을 발굴 지역으로 선정하게 됩니다. 그 후 유해를 발굴하면 유해발굴감식단의 감식소로 보내집니다. 감식소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위한 시료를 유해에서 채취하고 DNA 검사도 같이 진행합니다. 최종적으로 유해와 유가족의 DNA를 맞춰 신원 확인이 되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2번 출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식지 제9호
3번 출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식지 제 10호
살면서 유해를 본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무섭지 않으셨나요
첫 유해 수습 때가 생각이 납니다. 처음으로, 전사자분의 아래턱뼈를 식별했는데 치아가 하나도 손상되지 않아 소름 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름과 동시에 야산에서 몇십 년간 계셨을 전사자분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 임무를 수행할수록 발굴의 취지를 잊지 않고 더 많은 분들을 집으로 보내드려야겠다는 사명감이 확고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팀원들과 화야산 지대 탐색 중인 허송의 모습
1차적으로 출토된 유해의 모습
출처 : 노무현사료관
당시 팀장님과 팀원, 모두와 함께 찍은 사진
첫 유해 수습 때가 생각이 납니다. 처음으로, 전사자분의 아래턱뼈를 식별했는데 치아가 하나도 손상되지 않아 소름 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름과 동시에 야산에서 몇십 년간 계셨을 전사자분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 임무를 수행할수록 발굴의 취지를 잊지 않고 더 많은 분들을 집으로 보내드려야겠다는 사명감이 확고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병장 허송 (2022.10.17 ~ 2024.04.16)

원래 보직이 박격포병이었는데, 파견으로 유해 발굴병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박격포병으로 복무 중에 유해발굴병 파견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박격포병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유해를 직접 발굴해 가족의 품으로 보내 드리는 유해발굴병의 모습에 매료되었어요. 더 의미 있는 군 생활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했고, 입대 한지 3개월 후부터 파견병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발굴 중엔 유해만이 아닌 여러 가지가 함께 출토될 것 같은데, 어떤 것들이 출토되었나요
주로 탄피와 고철이 많이 나옵니다, 그 외에도 실탄이 가득 들어있는 탄통, 단추도 나옵니다. 여담이지만 발굴하며 지뢰도 한번 발견했었습니다. (지뢰의 상반부만 나와 있어서 터지진 않았습니다.) 안 터진 폭탄도 나왔던 경험이 종종 있어 발굴 때마다 목숨 걸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출처 : 노무현사료관
유해 발굴 임무를 수행하며 기억에서 잊지 못할 순간은 언제였나요
유해를 발견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세월이 지나 흙으로 덮인 전장을 삽으로 조금씩 깎아내리며 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유해가 나왔을 때 기분이 좋으면서, 한편으로 묘한 감정이 드는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발굴과 감식 끝에 유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기쁜 가운데, 왜 이제서야 발견했는지 의심도 같이 들었습니다. 워낙 산을 많이 타는 병과다 보니, 크게 다칠뻔했던 기억과 뱀을 밟을 뻔한 경험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유해발굴병 임무 이후, 달라진 가치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해발굴병 임무를 통해 6.25전쟁에 대한 역사를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소중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희가 지금 이 평화로운 세상에 사는 것이 선조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되었고,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사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병장 박원균 (2022.08.01.~2024.01.31)

발굴 과정에서 가장 골칫거리가 있다면 어떤 게 있었나요
아무래도 발굴 현장 훼손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지 약 75년이 지난 만큼, 당시 전투 지역이 현재는 군부대 시설로 활용된 경우도 많았고, 등산코스로 변모한 때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 토층이 일정하지 않고 섞여 있어 발굴 높이나 면적을 정하기도 어렵고, 임무 수행 중에는 일상 쓰레기들이 같이 나와 발굴 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될 때도 많습니다.

출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식지 제10호
국군과 북한군, 중공군 등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파악하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큰 증거는 유해 주변에서 발견되는 유품들입니다. 착용, 소지, 주변, 지역 유품으로 분류해 중요도를 두고, 유해발굴병과 발굴 팀장님의 의견을 종합해 1차적으로 국군인지 아닌지를 판단합니다. 팀장님과 유해발굴기록병들은 탄피와 탄두의 종류를 미세한 길이, 두께 등을 통해 알아내고 유품들을 특성을 외워 판단에 도움을 줍니다.
예시로 어떤 유해는 손목 부근과 늑골, 척추 부근에 적군의 단추가 발견되었습니다. 동시에 주변 탄피들도 모신나강(당시 공산권 국가에서 쓰던 소총)에 사용된 탄피가 발견되어 적군으로 판정하였습니다. 이 외에 해당 지역의 역사적 자료를 통한 공격 방향, 위치 등도 참고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고 합니다.
아군, 적군 등의 소속이 파악된다면, 유해는 어떤 처우를 받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국군 소속의 유해로 판별 시 감식 후 현충원에 안치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적군으로 판별 시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적성 묘지로 보내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출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식지 제10호
세월이 많이 흘러 발굴이 어려울 거라 생각되는데, 실제 현장에서 유해를 발굴하는 경우가 잦은 편인지요
발굴지마다 다르긴 하나 전방의 경우, 몇십구의 유해가 발견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반면 후방의 경우 평균 2~3구만 식별될 정도로 유해를 발굴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앞서 말했듯 등산로나 훈련장으로 사용된 경우는 식별이 더더욱 어려워집니다.
발굴 이후,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을까요
매우 희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군 생활 중 한번을 제외하고는 송환 과정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통계적으로 해마다 발굴된 유해도 적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고, DNA를 매칭해 감식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측 : 2022년 유해발굴사업 발굴성과, 출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식지 제9호

좌측 2번 : 고 김학수 이병과 배우자 고 이소저 님의 약혼사진, 출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식지 제9호
맨 우측 : 약 14년만에 진행된 고 김학수 이병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출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식지 제9호
지난 2008년 9월, 강원 인제군 서화면에서 유해의 일부와 전투화 밑창, 우의 조각만 발견되어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던 유해가 존재했었다. 감식에 어려움을 겪던 중, 약 14년이 지난 2022년 4월, 유해 감식 결과 6.25 전쟁의 전사자 중 고(故) 김학수 이병으로 확인되었다.
6.25 전쟁의 국군과 UN군을 포함한 사망자 수는 약 18만 명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국방부 휘하 유해발굴감식단을 통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전쟁 발발 후 약 75년이 지난 지금, 사업의 성과는 낮아지고 있다. 2022년 기준, 현재까지 발굴되어 수습한 유해 수는 약 1만 3,000여 구 수준이며, 아직 12만 2,000여 구를 발굴조차 하지 못했다. 발굴 되었더라도, 고 김학수 이병의 사례와 같이 감식이 늦어지는 경우도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출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식지 제10호
한반도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비극, 6.25 전쟁. 전쟁이 발발한 후 벌써 75년이나 지났다. 너무나 많은 사상자를 기록한 전쟁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매번 유해 발굴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 발전, 점점 쌓이는 세월은 발굴 사업을 더디게 만든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땅속에 묻혀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면 시료 채취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항간의 말처럼, 발 벗고 나서 하루빨리 더 많은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심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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