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독립운동가가 대학생이 된다면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25학번 유관순
'대한 독립 만세', 일제에 빼앗겼던 빛을 다시 찾은 광복절. 독립운동가들은 35년간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다. 목소리로 혹은 남다른 지략으로 방법은 달랐지만, 독립을 향한 마음은 같았다.
'독립운동가들이 우리처럼 대학생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해방된 세상에서 대학생이 된 그들이 궁금하다. 어떤 학과에 다니고 어떤 수업을 들을까. 그들의 삶과 정신을 바탕으로 한번 상상해 봤다.

유관순 |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1919년 3월 1일,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 열사는 친구들과 함께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 학생 시위가 격렬해지자 조선 총독부는 임시 휴교령을 내렸고, 유관순은 고향인 천안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열린 만세 운동 소식을 전하고 4.1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사람들의 외침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알고 일제 강점기 구조적 억압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 유관순은 사회학과 학생이 되어 사회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탐구하지 않았을까.

안중근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이후 뤼순 감옥에서 신문을 받는 동안 미조부치 검찰관과 논쟁을 벌였다. 미조부치는 일본이 한국을 보호하는 것은 국제법상 인정되며,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것은 살인을 금하는 천주교 교리를 위반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에 안중근은 일본은 한국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먹이로 삼은 것'이라 지적하고 나라와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를 방관하는 것이 더 큰 죄라고 반박하였다. 안중근은 국제법 분야의 전문성을 길러 국익을 대변하고 국가 간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했을 것 같다.

이봉창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영화과
이봉창은 '이기기 위해선 적을 알아야 한다'라는 결심으로 일본에서 여러 직업을 거치며 일본 생활을 익혔다. 능숙한 일어 솜씨와 옷차림 때문에 그는 술에 취해 사치와 호사를 즐기는 일본 건달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 덕에 일제 영사관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고 도쿄 시내에 의심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의 거사는 실패했지만, 세상은 한국 독립운동의 강인함에 놀랐다. 자연스러운 연기로 의심을 피하고 행동으로 독립을 향한 간절함을 전달한 이봉창은 연극영화과 학생이 되어 세상을 설득하는 연기를 익히지 않았을까.

남자현 |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남자현 여사는 3.1 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일본에 대항하는 것이 의병 활동 중 전사한 남편을 위한 길임을 깨닫고 아들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서로 군정서에 가입한다. 이후 독립 자금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병들고 다친 군사들을 정성껏 간호하며 '만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린다. 또한, 애국지사들이 석방될 때까지 투옥 생활을 도우며 자애로운 손길을 아끼지 않았다. 독립군의 상처를 돌보며 생명을 지켜낸 그녀는 치료를 넘어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극복하는 간호사가 되었을 것 같다.

나석주 | 육군사관학교
의열단원이던 나석주는 김창숙의 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 폭파 제안을 수락한다. 1926년 12월 28일, 그는 먼저 식산은행을 향해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이었다. 절망도 잠시 태연하게 동양척식회사를 향해 폭탄을 던졌으나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이어 추격하는 일본 경찰과 격렬한 접전을 벌이다가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 강인한 정신으로 기꺼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그는 육군사관학교에서 그 정신과 용기를 이어 조국을 수호하는 진정한 군인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남자현 의사가 생을 마감하며 남긴 말이다. 독립 정신을 이어 나라를 지킨 그들이 오늘날 대학생이 되어 함께 캠퍼스를 거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쩌면 그들이 이어온 정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건 우리의 몫이 아닐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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