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세상은 개과천선하지 않는다
드라마 〈개과천선〉

패배도 하고 작은 승리도 거두면서 그는 분명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석주가 모 기업과 노조의 잠정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소식을 들은 차영우 대표는 싸늘하게 읊조린다. 여러 기업에서 써먹는 ‘노조 와해 프로그램’의 기초 작업을 누가 한줄 아느냐고. 바로 김석주라고. 인수합병 때마다 늘 노조 문제가 따랐고, 그것까지 해결해달라는 경영진의 요구에 직접 틀을 만들었던 것이다. 김석주는 거대 로펌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가 싸워야 할 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자신이었다. 엔딩의 방점이 개과천선한 김석주의 웃는 얼굴 대신 이전의 김석주가 기득권을 위해 구축해놓은 틀에 찍혀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사회가 썩었다고? 그 썩은 틀을 짜고 판을 만든 것은 ‘(내가 아닌) 그들’ 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그들의 판을 공고히 만드는 데 나의 지분이 1%도 없다고 말할 순 있을까? 그것이 환멸에 의한 무관심이든, 먹고살기 바빠 시선을 돌린 것이든, 당장 더 재밌는 것을 추구했던 것뿐이든 말이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나?” 냉소하곤 한다. 맞다. 쉽게 변하지 않는다. 김석주 또한 머리를 세게 맞고서야 변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속도보단 사람이 더 빠르게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작은 정의와 행동이 드라마틱한 성과를 낼 수 없더라도 그 주변을 희미하게나마 들썩였다면 그 또한 가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차영우 로펌에서 일하던 변호사들이 어느 순간 김석주의 조력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지는 날이 이기는 날보다 훨씬 많을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이 몸 담았던 더러운 판의 반대편에 섰다. 현실을 사는 우리가 그처럼 완전히 변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택할 수 있다. 썩은 판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겠다고. 당장의 즐거움과 귀찮음을 위해 눈길을 돌리지 않겠다고 말이다.
Editor 김슬 dew@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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