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이번 정류장은, 환승역입니다
더 나은 내일에 도전한 전과, 반수, 편입생들
2학기가 시작되고, 지난 한 학기를 함께하던 동기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전과에, 반수에, 편입까지.
잘못 탄 기차가 때로는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잘못 올라탄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꼿꼿이 버텨 목적지를 찾아낸 사람들의 얘기. 의심의 여지 없이 옳다고 생각했던 기차가 점점 나를 외딴 길로 데려가는 것만 같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준 적 없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 걸까?', '정말 이 전공으로 학위를 따고 졸업해도 될까?'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고민으로 어지러운 2학기다. 관심 분야를 마음껏 배울 수 있다는 기대와 로망을 가득 품고 입학했건만 한 해의 절반을 보낸 후 남은 건 깨진 환상과 늘어난 고민뿐. 전공 학점이 하나둘 채워질수록 진로에 대한 확신은 약해져만 간다.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면 한 번쯤은 '환승'을 고민해 볼 때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기꺼이 갈아타길 결심한 대학생 3인을 만나봤다.
전과, 체육학과 -> 경영학과
"있나요... '졸업하고 뭐 해 먹고 사나' 고민해 본 적"이준형,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24학번
새내기 시절 4년 내내 입을 줄 알고 구매했던 체육학과 과점퍼.
1년 만에 입을 일이 없어졌다.
체육학과에 입학한 계기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듯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흔히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진로와 관련해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기에 내 성적과 역량을 최선으로 발휘할 수 있는 전공과 학교를 고민하다 보니 경희대학교 체육학과로 진학하게 됐다.
전과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졸업 후의 진로를 생각했을 때 아무래도 예체능 계열보다는 인문 계열이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았다. 아직 2학년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직무를 준비할지 결정하진 못했지만, 졸업 후의 선택지를 넓히고자 전과를 결심했다.
전과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가?
학점 관리가 가장 어려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전과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 학생을 위한 제도임에도 선발에서 기존 전공 성적을 많이 본다. 그러다 보니 기존 전공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전과 후 한 학기를 보냈다.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10점 만점에 8점 정도. 원하는 학과 공부를 할 수 있게 돼서 좋지만, 예전보다 이론적인 암기가 많아서 따라가기 벅찰 때도 많다. 1학년 내내 붙어 다녔던 과 동기들을 자주 못 보게 됐다는 것도 조금은 아쉽다. 체육학과와 경영학과는 캠퍼스 자체가 다르다 보니 '배신자' 소리도 많이 들었다. (웃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럴 때마다 부러우면 너희도 전과 하라고 대답해 준다.
반수, 수원대학교 -> 한양대학교
"남들보다 일 년 뒤처지는 거? 일 년 더 살면 그만이야"김윤지, 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22학번
1학년 2학기 22학점을 들으며 반수를 준비하던 시절.
학기가 끝나기 전에 수시 합격 발표가 나와 대부분의 기말고사를 응시하지 않았다.
수원대학교에 입학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딱히 계기라고 할 만한 건 없다. 흔히 말하는 '정시 파이터' 였고, 평소보다 잘 나온 9월 모의고사 성적에 기세등등해져 수시 원서를 쓰지 않았는데 결국 수능을 망쳤다. 성적에 맞는 대학 중 학과에 대한 관심, 통학 거리 등을 고려하다 보니 수원대학교를 선택했다.
반수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목표했던 학교가 아니기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코로나 펜데믹까지 겹치며 대부분의 수업이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됐고, 이대로는 졸업까지 배워갈 게 없을 것 같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고민 끝에 대학을 옮겨야겠단 결심이 섰고,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한창인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으로 수능 준비를 시작했다.
반수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가?
남들보다 늦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반수에 성공했을 경우에도 남들보다 일 년이 뒤처지는 것인데, 실패하게 된다면 지난 반년이 무의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2학기에도 휴학 없이 무려 22학점이나 들으며 학교를 다녔고, 주변에도 반수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준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일 년 늦는 게 별거라고. 참 겁이 많았구나 싶다.
반수 후 3년이 지났다.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10점 만점에 10점이다. 남들보다 늦어지는 게 두려워 반수를 고민해 놓고, 2학년을 마치고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휴학을 하기도 했다. 아마 4학년을 마치고는 졸업 유예를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주변을 보니 다 그렇게 휴학도 하고 유예도 하며 살더라. 20살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지금은 나이에 대한 두려움 없이 그저 '남들보다 몇 년 뒤처지면 몇 년 더 살지 뭐' 하는 마음뿐이다. 두 대학 간의 비교를 떠나서 당시 반수에 도전해 본 경험 자체가 내게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편입, 한국외국어대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연애도 환승, 직장도 환승인데 학교는 왜 안돼?"박정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21학번
편입 시험을 준비하며 새벽까지 독서실을 다니던 시기에 찍은 사진.
당시의 밤공기가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린 시절부터 '영드'나 '미드'를 통해 해외 문화를 자주 접하다 보니 자연히 외국어에도 관심이 생겼다. 막연하게 어문학을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어문은 한국외대'라는 주변 사람들의 추천에 한국외대를 목표로 준비하게 됐고, 별다른 고민 없이 성적에 맞는 학과에 입학했다.
편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조금 어이없게 들릴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통학에 대한 부담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주위에서 다들 '무슨 그런 이유로 학교를 옮기냐'고 하더라. (웃음) 자취는 무섭고, 기숙사는 싫은데 그럼 어떡하나.
아, 또 한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자면, 한국외대는 복수 전공 제도가 잘돼 있는 대신 전과의 경우 1학년만 가능한데, 2학년 무렵 뒤늦게 불문학에 흥미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디 한 번 전공도, 학교도 바꿔보자'라는 생각으로 편입에 도전했다.
편입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가?
사실 영어에 자신이 있어서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문과 편입은 영어만 잘 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입 영어가 그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다. 외워도 외워도 모르는 단어들이 등장하니 정말 미칠 것 같더라.
어느 날은 시험을 두 개나 연달아 봤는데 하필 그날 본 시험들에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이 나온 거다. 바로 다음 날 시험을 또 준비해야 하는데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에 집중은 안 되고, 책상에 앉아 계속 울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다시 하라면 절대 못 할 것 같다.
편입 후 2년이 지났다.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10점 만점에 11점, 아니 100점이다. 전공도, 학교도 매우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편입학 전까지만 해도 2년의 공백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조금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첫 학기부터 줄곧 좋은 성적을 유지 중이다.
가끔 편입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고민 상담을 하면 항상 '무조건 추천'이라고 말한다. 한 학년이 다 지나도록 계속해서 아쉬움이 남는단 건 분명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환승연애도, 이직도 자유로운데 대학이면 뭐 어떤가. 과감히 '환승대학' 해보는 것도 고려해 보길 바란다. (웃음)
움직이는 열차에서 내려 다른 역으로 갈아탈 결심, 그 순간의 결정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든다. 지금 몸을 싣고 달려가는 종착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면 더 늦기 전에 발을 뻗어 환승역으로 향하는 건 어떨까.
혹시 모른다. 우연히 올라탄 새로운 기차가 당신을 또 다른 목적지로 데려다줄지도.
#전과#반수#편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