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하듯 살자, 우리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고픈 사람들의 이야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위 구절은 이세계의 <낭만젊음사랑>이라는 노래 가사 중 일부이다. 낭만이란, 젊음이란,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라는 말,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괜찮을 거라는 말, 왠지 모르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쉽게도 현실은 다르다. 낭만보다는 스펙이, 젊음보다는 노련함이, 사랑보다는 혐오가 조금 더 우위에 있는 가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자주 있다. 내가 얼마 괜찮은 사람인지 보단, 내가 얼마나 잘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나침반 없이 떠나는 항해는 결국 방향을 잃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빨리 가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낭만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느리더라도 자신만의 보폭으로 나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01. "편지만의 신중함이 좋아요."
박윤서, 한양대학교 정책학과 22학번

편리함의 세상에서 진심을 전하는 것
빨리빨리의 시대를 넘어 이른바 챗GPT의 시대가 도래했다. 손편지 대신 DM으로 간단하게 전하는 마음이 더 익숙한 요즘, 좋아하는 사람에게 손으로 꾹 꾹 눌러 쓴 손편지를 전하는 일은 꽤나 촌스럽고 밍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모두 그렇게 진심을 전했다. 조금은 서툴고 느리지만, 그렇기에 더 따뜻했던 마음이 있었다.
어린 시절 우연히 부모님의 연애편지를 본 적이 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종이에 새겨진 글씨는 많이 바래고 옅어졌지만, 서로를 향한 부모님의 마음은 아직도 너무 선명했다. 그날부터 손편지를 좋아하게 됐다. 그런 투박하지만 따뜻한 마음들이 참 좋았다.

새까만 종이에 새하얀 글자를 적는다는 일
나는 손편지를 쓸 때면, 그 어떤 일을 할 때 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진다. 편지에는 "전송 취소"기능이 없기에, 편지를 쓰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한 마음을 한 단어씩 써 내려간다. 이런 습관이 쌓이다 보니, 일상에서 사람을 대할 때도 그 신중함이 드러났다.
평소 말을 툭툭 내뱉던 내가, 편지를 쓰는 습관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새하얀 종이에 새까만 글자를 적듯 조심하여 말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는 마찬가지로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나는 다시 그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마음들을 받았다. 그렇게 손편지가 내게 알려준 신중함은, 결국 나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 '나만의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02. "세상은 내 뜻대로 안되지만, 빵은 내 레시피대로 되니까요."
정서현,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24학번

요즘 누가 빵을 직접 만들어 먹어?
빵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동네 작은 빵집부터 유명한 체인까지, 어느 곳에서나 쉽고 간편하게 맛있고 예쁜 빵을 쉽게 살 수 있다. 그렇기에 제빵사도 아닌 내가 굳이 모든 재료들을 사서 직접 빵을 만드는 과정은 누군가에겐 지독한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빵을 만드는 것은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유일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완성되는 일이었다.
삶은 늘 예측할 수 없고, 아무리 애써도 내 손을 벗어나는 결과가 많다. 하지만 빵을 만드는 과정만큼은 내가 정한 레시피만 지킨다면, 내가 원하는 맛과 모양대로 비교적 정확하게 만들어진다. 어지럽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그 단순하고 명확한 결과가 큰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 순간은 내가 빵을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베이킹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더 크고 확실하게 다가왔다. 내가 직접 만든 빵을 먹었을 때 느껴지는 차원이 다른 만족감, 사진에서만 보던 케이크가 실제로 내 눈앞에 구현되는 그 과정들은 나에게 매번 새로운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은 내가 다른 일에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로 이어졌다.
빵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결과로 돌아오는 경험은, 거대하고 압도적이고 잘난 사람들만 가득한 세상에서 나도 결국엔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예전에는 지레 겁먹고 포기하던 일들도, 이제는 '조금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붙잡게 된다.
03. "걷다 보면 내 작은 세상에선 문제였던 게
이 넓은 세상에서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도아, 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과 24학번

가끔은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나에게는 취미가 하나 있다. 거창하지 않지만 나를 다시 단정하게 만들어주는 나의 소중한 취미는 '굳이 돌아서 집에 가는 것'이다. 요즘처럼 속도와 효율이 중요한 시대에 일부러 한 두 정거장 먼저 내려 돌아가는 것은 비효율적인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머리가 복잡할 때, 내 마음과 시야가 좁아졌다고 느낄 때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건 걷기다.
그렇게 돌아서 길을 걷다 보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흘러가는 시간과 바람과 하늘과 보인다. 그리고 결국 넓은 세상 속 내가 다시 보인다. 나에게 걷는다는 건 단순히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생각과 시야를 환기시키는 '나만의 숨통'인 셈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나를 다시 세운다
예전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복잡한 머릿속에 매몰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문제는 나의 전부가 되어 있었고, 해결되지 않으면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를 꺼내 준 게 걷는 일이었다. 걷다 보면 내 작은 세상에서는 문제였던 것이 이 넓은 세상에서는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넓은 세상에는 정답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 생각은 나를 다시 진정시킨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 마음이 복잡할 때 잠시 걸어보면 좋겠다. 꼭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어도 괜찮고, 예쁜 노을이 지는 시간이 아니어도 좋으니 그 길에서 세상을 보고 다시 나를 세우는 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끝으로 내가 걸으면서 자주 속으로 중얼거렸던 마법의 문장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또다시 헤메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대학생낭만나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