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극내성향 교수님이 왜이리 무대체질이야
축제 무대에 오른 인하대 교수님을 만나다.
대학 축제가 시작되면 유난히 소외되는 존재들이 있다. 축제 당일에도 휴강은 없고, 3시간을 꽉 채운 수업에, 칼같이 정식 출석을 부르는 교수님이다. 모두가 무대를 바라보며 뛰어노는 순간에도 그들은 평소처럼 연구하시거나 강의 준비를 하시겠지.
그런데 여기, 축제 무대 위에 오른 교수님이 있다. 연구실도, 강의실도 아닌 무대 위의 교수님이라니. 심지어 학생들과 함께 '고백'을 떼창해 SNS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교수님이 왜 여기서 나와? 빠뜨롱(patron)나오라그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인하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정일영 교수님을 만나봤다.
정일영 교수, 인하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님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인하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는 정일영입니다. 28년 동안 여러 대학에서 프랑스어 회화, 문법, 문화 등을 강의했으며, EBS에서 12년 동안 수능 프랑스어 관련 동영상 강의와 교재를 집필했습니다. 현재는 대학 강의와 함께 시원스쿨에서 프랑스어 공인 인증 자격증 시험인 <DELF> 강의 및 교재 집필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인하대학교 비룡제에서의 ‘비와 당신’ 무대가 SNS에서 화제였어요. 무대에 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노래에 대해서는 늘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잘한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살 정도로 자신이 있고, 그래서 노래하는 걸 좋아하기도 합니다. 작년에 합정역에서 밴드 공연을 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 제자들이 공연 영상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려서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는 제가 노래를 꽤 한다고 알려져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올해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측에서 먼저 축제 공연을 부탁하더군요. 제가 내년이면 65세가 되어 학교를 떠나야 하는데, 뭔가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은 생각에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무대 영상을 보고 나니 파워 E실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무엇보다 MBTI나 평소 성격이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MBTI를 믿지 않지만, 검사를 해봤을 땐 ISFP가 나왔어요. 사람들이 무슨 내성적인 성격이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고 공연하느냐는 말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정말 소심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 극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MBTI쯤은 집에서 나올 때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는 거죠.
‘고백’과 ‘비와 당신’을 선곡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 교수님의 18번 곡인가요?
젊었을 때는 고음과 바이브레이션 같은 기교를 부리길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담백한 멜로디에도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곡들이 생기더라고요. 공연 준비를 하면서 문득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이 떠올랐어요.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이상하게 학생들이 태어나기 전에 발표된 곡임에도 꽤 많은 학생들이 알고 있더라고요. 공연의 꽃은 역시 떼창이라는 생각에 이 노래를 부르면 학생들이 따라 부르면서 공연의 흥이 나겠다 싶었죠.
또 다른 정말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가사 때문이에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도대체 노래 가사가 외워지질 않더라고요. 거의 30년 동안 꾸준히 불렀던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종종 키를 높여서 부를 만큼 제 18번 곡이라, 최소한 가사를 잊어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준비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같이 무대 할 밴드를 구성하고 이들과 연습하는 데 가장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저와 함께 공연한 밴드는 사실 일종의 프로젝트팀이었어요. 드럼 치는 친구가 과거에 제 강의를 들었던 제자였거든요. 항상 같이 음악 얘기를 하곤 했었는데 졸업하고 연락이 끊겼다가 25년 만에 연락이 닿아 아직도 음악을 하냐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그럼 내가 공연할 테니 밴드 인원을 모아 달라 부탁했죠.
각자의 본업이 따로 있는 부원들이 모이는 거라 처음에는 준비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는데, 어렵게 시간을 내어 합을 맞추고 연습을 거듭한 덕에 좋은 무대가 나올 수 있었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 그리고 공연하는 순간의 기분이 어떠셨나요?
밴드 공연에서 제일 좋은 것은 무대 위에 오르기 전 연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밴드에 맞춰서 부르고, 또 식사도 하면서 젊은 친구들과 곡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말이죠. 노래 연습할 때만큼은 세상 시름을 다 잊고 소리를 질러내니까 정말 시원함을 느낍니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 처음에는 내 심장 소리가 내 귀에 ‘쿵덕쿵덕’하고 들릴 정도로 흥분되고 긴장돼요. 무대 앞에 있는 관중들이 안 보이고 멍한 상태가 되지만 몇 초만 지나면 내 뒤에 있는 밴드들의 힘찬 악기 소리와 함께 관중들의 환호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죠. 이럴 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됩니다.

원래 학생들과도 친근하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평소 학생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저는 원래 인하대 출신이기 때문에 인하대 학생들은 제게는 제자이자 후배가 됩니다. 평소에도 가능하면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어려움이나 힘든 점들을 들어주고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어요. 정말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라서, 종종 장난도 치고 방송 출연에 함께 가기도 해요.
축제 무대 이후 주위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평소 학생들에게 늘 하던 이야기를 무대에서도 했었는데, ‘절망적인 순간에 자신을 탓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공연이 끝나고 며칠 뒤 한 학생이 취업 준비로 힘든 상황에서 이 말을 듣고 힘을 얻어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었다며 감사 메일을 보내온 적 있는데, 그때 정말 선생 되기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공연을 좋아해 주니 저도 좋더라고요. 학생들이 공부하랴 취업 준비하랴 힘든 일이 너무 많은데 저로 인해서 그나마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죠.
교수님 개인적으로는 축제 무대 경험이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내년이면 65세라 학교를 떠나야 하는데요, 젊었을 때는 정말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하루하루 학교에서 강의하는 순간들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어쩌면 제 대학 생활 중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축제 공연은 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원래 꿈을 정말 꾸지 않은 편인데 가끔 축제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꿈을 꾸는 것을 보면 축제에서의 공연 무대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마음속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무대 이후에 다시 제안이 들어오거나, 스스로 다시 서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나요?
고양이가 생선 맛을 안 경우라고 해야 할까요? (웃음) 63년 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나 혼자 노래하다가 이번 기회로 많은 학생 앞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정말 큽니다.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각 대학교 축제 담당자분들, 저와 제 밴드는 언제 어디라도 가서 공연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불러만 주세요!
끝으로, 교수님께 '대학 축제'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와 관련해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주위 어른들이 "지금 실컷 즐겨라, 지금 이 순간은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라고 늘 말하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신경 끄시고 댁들이나 잘 사세요'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제가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네요.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지내는 시간은 정말로 다시 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축제는 대학생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 같은 것이에요. 공부하느라, 다른 일 하느라 바쁘다며 ’나중에‘로 미뤄두지 마세요. 졸업 후의 사회에선 대학 축제만큼의 낭만이나 순수함을 찾기 힘드니까요. 대학생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축제의 분위기를 마음껏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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