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무대 뒤에도 사람 있어요.

찬란했던 경희대 축제가 끝나고 난 뒤
농구 코트와 주차장만 덩그러니 있던 노천극장에 어느새 웅장한 무대가 세워졌다. 단과대학 건물 앞에는 하나둘 천막 부스가 들어섰고, 학교 곳곳에는 가을 축제의 분위기를 알리는 현수막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캠퍼스가 눈 깜짝할 새에 가을 축제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아니, 과연 '눈 깜짝할 새'였을까?

청춘의 열정으로 축제를 만들어낸 두 명의 축제 기획단원, 그들의 기나긴 준비 과정과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축제가 끝나고 난 뒤 들어봤다.



경희대 대동제 콘텐츠기획팀 부팀장
송은지,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KnocKH 기획운영처원


축제 기획단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
이번 대동제에서 새롭게 신설된 ‘콘텐츠기획팀’의 부팀장으로 활동하며, ‘KHU made this!’ 현수막 공모전을 개최하고 학우들의 굿즈 구매 및 판매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축제 당일에는 굿즈 현장 수령과 판매 부스 운영, 줄 관리, 배달존 및 퇴장구 운영, 노천 무대 주변 안전관리 등 다양한 업무에 투입되어 현장을 총괄적으로 지원했다.

본인이 했던 일에 대한 대략적인 과정을 타임라인별로 소개해달라.
2025 가을 대동제는 축제 시작 약 두 달 전인 8월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내가 총괄했던 ‘KHU made this!’는 단과대학별로 개성을 드러내는 소개 멘트를 회기 상권에 현수막 형태로 게시하는 공모전이었다. 대동제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축제 두 달 전부터 팀원들과 함께 공모전 부제, 진행 방식, 시각적 콘셉트 등 세세한 부분까지 논의했다.

이후 대동제 한 달 전, 카드뉴스를 제작해 공모 접수를 약 일주일간 진행했고, 축제 3주 전에는 대동제 인스타그램의 하이라이트 투표 기능을 활용해 단과대학별 최종 1위 멘트를 선정했다. 선정된 멘트들은 축제 일주일 전부터 대동제 기간까지 회기 상권 곳곳에 현수막으로 게시했다.


축제 준비 과정 중 가장 힘들거나 부담스러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이번 대동제에서 콘텐츠기획팀 업무와 함께 굿즈 판매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번 굿즈는 야구복, 반다나, 슬로건 타올 등을 포함해 총 9종류였는데, 약 600명의 학우들이 믿고 구매해 준 만큼 금전이 오가는 일을 맡는 것이 부담스럽고 책임감 있게 느껴졌다. 

또, 축제 준비가 본격화된 두 달 전부터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바쁜 일정이 이어졌고, 매일 새벽이 다 되어서야 퇴근할 정도로 강도 높은 준비 과정이 힘들기도 했다.


무대나 부스처럼 눈에 띄진 않지만, 공모전이나 굿즈 총괄 같은 일이 축제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나?
이번 대동제를 준비하며 “축제가 별이라면, 스태프는 밤하늘과 같은 존재다”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이 더 반짝이듯, 스태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역할을 다할 때 무대나 부스 같은 메인 콘텐츠가 더 빛난다고 생각했다. 

공모전이나 굿즈 판매 같은 일은 언뜻 보면 축제 속 작은 부분처럼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가 현수막을 보고 미소를 짓거나, 학우들이 불편함 없이 굿즈를 구매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낀다.

학생으로서 축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해 아쉬움이 컸을 것 같다. 

나는 축제를 즐기는 것보다 ‘진행하는 것’을 더 즐기는 사람이다. 물론 무대 앞에서 함께 뛰고, 다양한 부스를 체험하는 시간도 행복하다. 하지만 두 달간 팀원들과 함께 땀 흘려 준비한 축제로 2만여 명의 학우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일도 매우 값진 경험이다. 


가끔 축제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학우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관객분들께 오래 기억될 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떠올리곤 한다.



축제가 끝나고도 해야 하는 일이 있을까? 그중 가장 신경 쓰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축제 당일, 모든 관객이 노천극장을 떠난 뒤에는 공연장에 남은 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2만여 명의 학우들로 가득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고요해지는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는데 기획단만 남아 쓰레기를 줍고 있다는 사실이 서럽게 느껴질 때도 있고,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가까운 순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작한 축제는 우리가 깔끔하게 마무리하자”라는 마음 하나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축제 기획단끼리만 공유했던 인상 깊은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2025 가을 대동제를 사흘 앞둔 날, 총학생회 처원들끼리 축제 운영 관련 시험을 치렀다. 평균 점수가 가장 낮은 부서가 총학생회실 청소를 맡기로 했는데, 결과는 '기획운영처'가 1위, '대외협력처'가 2위였다. 


그런데 이 결과를 납득할 수 없던 대외협력처원들이 점수를 다시 확인해 보니, 다른 부서의 점수가 실수로 함께 집계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대외협력처'가 1위를 차지하며 명예를 되찾았다. 비록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그만큼 각 부서가 축제 운영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일화였다.



이번 축제는 본인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 같은지.
나에게 ‘Masterpeace : Holiday’는 아픈 손가락처럼 오래 기억에 남을 축제다.

누군가에겐 이번 축제가 다소 아쉽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모든 처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해 보고 싶다’라는 마음 하나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인력이 부족했던 탓에 밥 먹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뛰어다녔고, 때로는 거친 말에 상처받는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던 학우의 “너무 고생하십니다.” 한마디에 눈물을 닦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축제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끝까지 힘을 냈다.

축제가 끝난 지금, 후련함보다 아쉬움과 서운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남아 있다. 늘 결과만을 중시하던 나에게 이번 축제는 ‘최선을 다한 과정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값진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Masterpeace : Holiday’에 함께해 준 모든 학우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경희대 대동제 무대기획팀 팀원
우영서,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KnocKH 대외협력처원



축제 기획단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
축제 기획단에서 무대기획팀원으로 활동하며 무대 프로그램 기획과 대본 작성 등에 참여했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이틀 내내 입장구 스태프로 근무하며 학우들의 입장을 안내하고 진행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

본인이 했던 일에 대한 대략적인 과정을 타임라인별로 소개해달라.

무대기획팀은 축제 2~3개월 전부터 무대 프로그램 기획을 시작한다. 경희대에는 실력 있는 밴드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경희대 밴드 중 최고의 팀을 가리는 경연 프로그램을 함께 구상하고 약 두 달간 발전시켜 정식 프로그램으로 완성했다. 이후, 다양한 무대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 대본을 작성했으며, 그 과정에서 MC 섭외와 학생 MC 면접 진행 등의 업무도 맡아 수행했다.



축제 준비 과정 중 가장 힘들거나 부담스러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힘들었던 일을 굳이 꼽자면, 뭐니 뭐니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대본 작성 과정이었다. 팀장님, 부팀장님, 그리고 팀원들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수많은 재학생 밴드 공연과 프로그램 대본을 하나하나 완성해야 했는데, 이 작업이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했다.

하지만 대본을 다 썼다고 일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대본을 바탕으로 해야 할 수백 장의 큐카드를 직접 제작하는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팀장님과 부팀장님의 배려 덕분에 과정이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대기획팀에게는 가장 큰 노동이자 동시에 팀워크가 빛난 순간이었다.

축제 기간은 예상한 대로 잘 흘러갔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다.

축제 기간 중 쓰레기를 정리하던 중, 쓰레기봉투를 옮기다가 그 안에 있던 꼬치가 튀어나오면서 봉투가 ‘팍’하고 터지는 사건이 있었다. 그 순간 쓰레기 내용물이 튀어 올라 나와 함께 치우던 스태프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버렸고, 당황스러움에 모두 얼어붙었다. 


특히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자몽 맛 음료를 많이 마셨던 건지, 쓰레기 냄새 속에 은은한 자몽 향이 섞여 정말 묘한 냄새가 났다. 잠깐 정적이 흐르더니,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결국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학생으로서 축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해 아쉬움이 컸을 것 같다.
작년부터 총학생회에서 활동하며 벌써 네 번째 축제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다. 지금 2학년이지만, 새내기 때부터 단 한 번도 ‘관객으로서의 축제’를 즐겨본 적은 없다. 물론 축제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기획단원으로서의 책임감이 그보다 훨씬 크다.

상투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친구들과 수많은 경희 학우들이 무대를 보며 웃고 뛰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그 자체로 축제를 즐기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의 즐거운 모습이 어떤 아티스트의 공연보다도 아름답게 보였고, 그걸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기획단과 스태프들과의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도 관객으로 즐기지 못했지만 아쉬움은 전혀 없다.

축제가 끝나고도 해야 하는 일이 있을까? 그중 가장 신경 쓰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축제 기간 동안 내가 맡은 가장 큰 일은 새벽 2~3시까지 이어지는 뒷정리 작업이었다. 노천극장에 쌓인 수많은 쓰레기와 분실물을 수거하고, 수십 개, 때로는 수백 개의 쓰레기봉투를 한곳에 모으는 일은 스태프가 아무리 많아도 항상 손이 부족했다. 


몇 시간 동안 이 작업을 마치고 나면 온몸에 쓰레기 냄새가 밴 채로 학생회실에 돌아가게 된다. 심지어 그 상태로 새벽 4~5시까지 전날 운영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을 갖는데, 피로와 졸음을 참으며 집중해야 해서 정말 큰 인내심이 필요했다.  



축제 기획단끼리만 공유했던 인상 깊은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축제가 끝난 뒤, 서로를 안아주고 “고생했다”, “정말 수고 많았다”라고 말하던 그 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무도 모를 수 있지만, 몇 달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쏟은 노력을 서로만큼은 알고 있기에, 그 한마디가 진심으로 위로가 되고 보상이 되어 마음이 뭉클했다.


이번 축제는 본인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 같은지.
작년부터 참여한 네 번의 축제 중에서도, 이번만큼 ‘정말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임한 축제는 없었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밤낮없이 뛰고, ‘잘하고 싶다’라는 일념 하나로 버티는 모습이 내게는 그 어떤 장면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그만큼 아쉬움도, 감사함도 배로 남았다. 돌이켜보면 이번 축제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였다. 이번 축제는 나에게 힘들 때 다시 생각하게 될 젊은 날의 열정으로 기억될 것 같다.



캠퍼스의 시끌벅적함이 잦아든 뒤에도, 이들의 축제는 끝나지 않는다. 단 이틀의 행사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열정과 노력이 모여 완성된 순간이었다.

조명이 꺼진 뒤에도 남아 있던 그 마음들이 ‘Masterpeace : Holiday’를 진짜 축제로 만들었다. 이 글을 빌려, 무대 뒤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청춘을 보낸 모든 이들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마음만큼은 오래 빛나길 응원한다.



#축제기획단#대학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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