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홍대 시각디자인과는 춤까지 잘 춰야 한다고?
'R711 전시실'을 둘러싼 섹시 댄스 소문의 진실

최근 X에서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이하 '시디과') 졸업 작품 전시회(이하 '졸전')의 전시실 ‘R711’에 관한 수상한 소문이 돌았다. 바로 ‘섹시 댄스 대결을 펼쳐 우승자에게 가장 좋은 전시 공간인 R711 실기실을 배정한다.’라는 이야기. 많은 이들이 소문의 사실 여부를 궁금해하지만,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던 리포터는 '섹시 댄스 대결' 글의 주인공인 mincer(@mrk_mg)를 직접 만나보았다. 소문의 진실부터 홍익대 시디과 졸전에 관한 이야기까지 함께 들어보자.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21학번 강민서입니다. 현재 이인수 교수님이 담당하시는 I분반 친구들과 함께 R711 실기실에서 졸업 전시를 준비 중입니다.
X에 올린 글이 큰 화제였는데, 해당 글을 올리게 된 계기가 있나요?
R711을 홍보하는 것에서 시작된, 반쯤 계획된 일입니다. 사실 R711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전시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전시 공간이에요. 졸전 준비 중 힘들 때마다 하는 위로의 말이 ‘그래도 R711이 아닌 게 어디야.’이기도 합니다.
다른 전시실보다 훨씬 좁고, 구석진 위치로 인해 전시 공간처럼 보이지 않으며, 다른 전시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학교 다닌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R711의 존재를 작년에 처음 알았을 정도예요.
R711이 위치한 복도그 이후, 소문이 퍼진 과정은 어땠나요?
X에서 팔로워를 약 2,900명 보유한 친구 '재필(JP)'이가 저보다 먼저 졸전 홍보를 올렸었는데요. 홍대 시디과 졸전이 작가적, 사회문화적, 기업적 디자인을 분류하여 반마다 다른 전시를 한다는 유용한 내용이어서 노출도가 꽤 높았습니다.
그 글에 제가 반쯤 농담으로 '홍대에서 제일 섹시하고 아름다운 작업물은 R711에 있다.'라는 인용을 달았고, R711의 실체를 아는 홍익대 친구들과 재필(JP)이가 재밌다며 리트윗해 주었습니다.
처음 게시한 인용 글얼마 뒤, 위 인용 글이 여러 사람에게 노출이 되며 오해가 시작됐습니다. 어느새 리트윗이 2천 회가 넘어가고, R711이 어딘지, 정말로 홍대에서 제일 좋은 작업물들은 그곳에 있는 건지, 일부러 구석진 곳에 두는 전략인지 오해하는 인용들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R711의 아트디렉팅을 같이 하는 학우분께서 X에서 이 게시글을 봤다며 저한테 보내주었습니다. R711이 어쩌다 보니 노출이 되어서 좋지만, 사실에 대해 해명하자는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해명이 아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섹시 댄스 밈의 시작이 된 글순식간에 알림창이 터졌습니다. 게시글이 올라가고 고작 3시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거의 10년 가까이 연락하지 않던 중학교 친구가 저에게 DM을 보낼 정도였습니다. 정말 섹시 댄스를 췄냐는 친구의 질문에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내가 전시하는 R711을 홍보하고 싶어도, 학과를 섹시 댄스 대결의 장으로 만들어도 되는 걸까?' 싶었지만 이미 조회수는 180만을 넘어갔습니다.
그렇다면 소문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정말 섹시 댄스를...
이미 위의 답변을 보고 눈치채셨겠지만... 거짓말입니다. 구석지고 다들 기피하는 전시 공간인, 그러나 제 전시 공간이 되어버린 R711을 홍보하기 위해 진행한 일입니다. 섹시 댄스를 정말로 춘다면 재미있겠지만, 아쉽게도 전시공간은 랜덤으로 배정되며, 반마다 있는 공간부 부원들이 뽑기로 공간을 정합니다. 즉, 저희 반은 뽑기를 통해 R711에 배정되었습니다.
'섹시 댄스 대결 출입 금지' 사진의 정체는요?
게시글을 올리기 위해 제가 급조한 사진입니다. 프린트실에서 직접 인쇄해 사람들 몰래 찍었습니다. 급조할 당시 R711 주변엔 늘 그렇듯 사람이 없었으나, 하필 맞은편 학과 사무실에서 학우분이 나오셨습니다. "민서 님 뭐하고 계세요?"라는 물음에 허겁지겁 종이를 뜯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도망친 기억이 있습니다.

R711 배정의 순간 매우 절망적이었을 것 같아요. 그 당시 심정은 어땠나요?
당시 숫자 '6'을 뽑으면 자동으로 R711에 배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희 반은 유학생 부원이 숫자를 뽑았는데, 매우 곤란한 얼굴이었습니다. 멀찍이 있던 저희가 몇 번을 뽑았는지 물어봤고, 부원은 대답 대신 손짓으로 '6'을 알렸습니다. 전시실 배정 날, R711의 아트디렉터 두명 모두 아침 운세 순위가 꼴찌였는데, 그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정이 끝난 한참 뒤에도 교실을 못 떠나고 문 앞에 앉아 있다가 저희 반 반장에게 힘없이 전화했습니다.
"그래서 어디 됐어?"
"어디일 것 같아?"
한참의 정적 끝에 "아... 그렇게 됐구나."라는 반장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직 배정 결과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야 하는데, 서로 네가 공유하라고 양보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반장에게 책임을 넘겼어요. 반장은 '저희 R711입니다' 한 줄이면 될 내용을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민서 님이 올린 X 게시글이 이렇게 화제가 될 줄 아셨나요?
솔직히 어느 정도의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볼 줄은 몰랐습니다. 홍익대 시디과 친구들이 '이거 진짜다', '나도 작년에 추느라 힘들었다', '민서 님 춤 잘 봤다' 등의 거짓말을 보태주어 소문이 더욱 사실처럼 퍼진 것 같습니다. 심지어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학생회장께서도 인용해 주셨어요.
게시글이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같은 과 친구가 지인으로부터 홍대 시디에서 진짜로 섹시 댄스를 추는 것인지 묻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런 전통이 있는 줄 몰랐다는 1학년 후배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선배로서 올바르게 행동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전부 사실이고 너희도 3년 뒤 섹시 댄스를 춰야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친구들의 반응게시물이 화제가 된 후 겪은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일단 앞서 말한 것처럼 오랜만에 동창에게 연락이 오고, 1학년 후배들이 속고, 홍익대 시디과랑 전혀 관련이 없는 분들마저도 R711에 관심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속인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같은 반 분께서 제게 'R711 홍보대사'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섹시 댄스가 저희 반의 밈이 되었는데, 소문 덕분에 같은 반 사람들끼리 더욱 친해진 듯하여 기쁜 마음입니다.

거짓말의 규모가 제법 커졌는데, 이것만큼은 꼭 해명하고 싶은 게 있을까요?
저 게시글을 올린 뒤 작업실을 같이 쓰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한 친구가 섹시 댄스는 안 속아도 'R711에 제일 아름답고 섹시한 작업물이 있다'라는 글은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시험이나 절차를 거쳐 가장 잘하는 학생들이 R711에 배정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습니다. R711뿐만 아니라 다른 전시 공간 전부 4학년 분들이 한 학년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만든 좋은 작업물들이 가득합니다. 긴 여정 끝의 결실을 전시하는 만큼, 모든 작업물 하나하나가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졸업 전시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역시 제 최애는 단 하나입니다.)
또, R711과 섹시 댄스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중인데 교수님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아트 디렉터님께서 교수님께 이 얘기를 전하라고 했는데, 왠지 쑥스러워 아직 알려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R711 섹시 댄스 대결 음모론과 무관함을 밝힙니다.
R711 졸업 전시 'OFF THE WALL'졸전을 앞둔 학생으로서 본인의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Malice>라는 제목의 만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섹시 댄스 밈으로 저를 처음 접한 분들은 예상치 못할 만큼 개그 요소가 전혀 없는, 고어하고 잔인한 내용입니다. 짧은 흑백 만화로, 남자 주인공이 가문 후계의 자리를 잃고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입니다.
작업 중인 만화 내지늘 만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커리어로 선택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졸업 전시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만화를 그린 후, 디자이너로 취업 준비를 하고자 했으나 그리면 그릴수록 놓아주기 어려울 것 같아 고민입니다. 전시가 끝나면 결론이 나지 않을까 싶은데, 다들 오셔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린 엽서와 책갈피도 가져가실 수 있답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악마전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심정이 어떠신가요?
정말 괴롭습니다... 다들 비슷한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뿌듯한 마음이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라는 마음은 아직 없습니다. 수능이 11월 모의고사처럼 느껴진다고들 하는데, 저도 졸업 전시가 조금 일찍 제출하는 기말고사 과제 정도로 느끼고 있습니다. 끝나고 나서야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 실감 날 것 같아요.

포스터 레터링을 만드는 과정. 반의 23명 모두가 함께 만들었다.홍익대 시디과 졸업 전시만의 차별점이 있다면요?
약 300명이 참여하는, 규모가 큰 전시라는 것이 장점입니다. 그만큼 다양한 전시를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시각디자인 전 분야의 전시를 한 번에 다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이인수 교수님 반처럼 개성 넘치는 작가적인 작업부터 실무 중심의 기업적인 작업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 홍익대 시디과 졸업 전시의 차별점입니다.

졸업 전시에서 ‘이런 부분을 주목해 보세요!’ 감상 포인트가 있나요?
앞서 잠깐 언급되었듯이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전은 작가적, 사회문화적, 그리고 기업적인 디자인을 하는 반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각디자인의 여러 분야 중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 예비 디자이너분이 저희 졸전을 통해 정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R711에서 전시하는 I반의 기조는 'OFF THE WALL'인데, 작가적인 성향이 강한 저희 반의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모습을 은유한 이름입니다. 벽 한쪽에 작업 과정을 전부 인쇄해서 전시해 둘 예정인데,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결과물이 나왔는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홍대 시디과 졸전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 한마디 해 주세요!
우리 전시 보러 와줄 거지~? 너를 기다리고 있어...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졸업전시는 12월 1일부터 6일까지 열린다. 학생들의 노력과 열정을 직접 마주해보면 어떨까. 소문의 주인공, R711 전시실을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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