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애니 보는 사람은 힙하다
1인 1 서브컬처를 즐기는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라는 유행어, 기억하시나요? 2000년대 초반부터 자주 인용되던 말로, 오타쿠 문화를 향한 경멸 어린 시선에 당당하게 맞서는 선언이자, 동시에 주류 문화가 소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놀리며 사용하는 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굳이 “취향을 존중해달라”고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취향을 존중하는 태도가 너무나 당연해졌습니다. 한때 거대한 흐름을 주도하던 ‘주류 문화’는 여러 갈래로 파편화되었고, 애니메이션이나 록 음악처럼 소수 취향으로 분류되던 문화들 역시 지금은 대중적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SNS, 특히 숏폼이 있습니다. 숏폼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취향을 큐레이팅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오히려 과거에는 비주류로 취급되던 문화들이 새로운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틈새(Niche) 문화 시장에 대한 열광(Fever)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2025년 3분기 틱톡 트렌드 키워드는 바로 이 ‘니치 피버(Niche Fever)’입니다. Z세대가 어떻게 매니악한 취향을 새로운 쿨함으로 소비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취향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찾아온 애니메이션 전성기
올해 여러분이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무엇인가요? 2025년은 한국 영화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았던 해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과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가 각각 상·하반기 개봉하며 큰 화제를 모았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작품보다 더 큰 인기를 얻은 영화는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누적 관객 수 약 547만 명을 기록하며 올해 국내 개봉작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습니다.
올 3분기 극장가 최고의 히트작,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사실 국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바람이 처음 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문화 개방이 본격화되기 전인 1998년 이전에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중심으로 한 1세대 오타쿠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 시기를 전후로 X JAPAN, L’ArcenCiel 같은 J-Rock이 국내에서 크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열풍이 잦아들며 애니메이션은 다시 어느 정도 음지 문화로 취급되었고, ‘원나블’처럼 워낙 유명한 작품들을 제외하면 “오타쿠나 보는 만화”라는 편견이 강했습니다.
국내 J-ROCK 열풍의 시효, X-JAPAN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Z세대 사이에서 완전히 새로운 작품들이 부상하면서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진격의 거인>, <주술회전>, <귀멸의 칼날>처럼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들이 국내에서도 빠르게 자리 잡으며,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문화가 이전보다 훨씬 대중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마인크래프트로 에바 시리즈를 구현한 틱톡 영상(@eva_gear)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너 애니보냐, 너 덕후냐 라는 표현은 누군가를 모욕할때 쓰는 표현이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제가 애니를 좋아하게 되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덕후들 사이에서 '덕후'라는 표현은 칭찬에 가깝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덕후가 아닌데 본인을 덕후라고 칭한다던가 덕후인척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갓반인' 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덕후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 허지원(21)
*'갓(God)'과 '일반인'을 합친 말로, 특정 분야에 깊이 몰입한 사람(덕후 등)들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더러 '신'에 버금갈 정도로 자신들보다 낫다는 뜻으로 부르는 자조적 용어.
서브컬처 문화평론가 수차미는 최근 애니메이션 트렌드가 다시 확산된 데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하나는 <귀멸의 칼날>이나 <진격의 거인>처럼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OTT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진격의 OO’, ‘무지성 OO’ 등의 표현이 공중파 방송에서도 활용될 만큼 대중에게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에 OTT뿐 아니라 인플루언서와 스트리머의 추천이 작품 확산을 더욱 빠르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입니다.
거의 매일 빠짐없이 올라오고 있는 <귀멸의 칼날> 관련 틱톡 콘텐츠틱톡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흥행 이후 성우진의 녹음 장면을 편집한 숏폼이나 코스프레 영상이 유행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AI 활용이 증가하면서 애니메이션 원작의 ‘실사 영화 촬영장 비하인드’를 AI로 생성한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실사 영화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실제 촬영 현장을 구현한 듯한 영상은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작품에 대한 과몰입을 돕고 있습니다.

실사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이런 AI 영상은 해당 애니메이션에 과몰입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좋다고 생각해요! 저도 슬램덩크의 실사 영화판 AI 영상이 보인다면 여러 번 보면서 ‘진짜 같다…’ 생각하면서 해당 콘텐츠에 과몰입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원작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덕후들의 시선을 끌고, 대중에게도 조금 더 실제처럼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AI를 잘 활용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원작 ip의 저작권이나 원작 재해석 과정에서 덕후들의 니즈가 제대로 반영이 되었는지 같은 건 고려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 강유나(22)
AI 기반 콘텐츠에 대해 수차미 평론가는, 원본이 존재하면서도 밈 자체가 독자적인 콘텐츠처럼 소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콘텐츠는 단순 2차 창작을 넘어 1차 창작처럼 기능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저작권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는 원작이 없더라도 무한한 1차원처럼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Z세대가 틱톡에서 애니메이션 IP를 능동적으로 재창작하며 즐기는 방식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습니다.
틱톡에서 자주 바이럴되고 있는 요네즈 켄시의 노래일본 애니메이션이 유행할 때, 항상 함께 화제가 되었던 J-Pop도 요즘은 성수동, 용리단길 등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옵니다. 틱톡에서도 이런 음원을 활용해 숏폼 영상을 만드는 Z세대가 많기도 하고요. 음악평론가 임희윤은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커질수록 주제가나 OST 아티스트가 함께 주목받는 경향이 강하며, 지리적·문화적으로 가까운 일본 음악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 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어둠의 MOOD가 트렌드로
틱톡에서는 오래전부터 유저들이 독특한 화장법, 분장 기술, 혹은 숏폼 필터를 활용해 ‘Before & After’ 형식의 변신 영상을 만들어왔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영상은 평범한 일상 속 본인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변신 후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며 많은 유저들의 관심을 끌어왔죠.

그중에서도 올해 3분기에 특히 크게 유행한 밈이 바로 ‘보름달 뜨기 전 / 보름달이 뜬 후’ 영상입니다. 평소에는 순진무구한데 보름달이 뜨면 포악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변한다는 콘셉트의 숏폼으로, 셀카 영상 위에 그로테스크하고 다크한 분위기의 필터를 입혀 본인의 ‘숨겨진 다른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때 사용되는 필터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고스(Goth) 메이크업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고스 룩은 ‘고딕 패션’이라고도 불리며, 어둡고 절망적인 감성을 담은 고스 록을 즐기던 뮤지션들 사이에서 발전한 스타일입니다. 서구권의 패션·음악계에서도 비교적 마이너한 장르로 취급되던 문화지만, 특유의 고혹적인 분위기와 퇴폐적 무드가 Z세대의 취향에 맞아떨어지면서 틱톡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행으로 부상했습니다. 최근 해외 틱톡에서는 ‘80’s goth fashion’ 키워드가 패션 카테고리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을 정도로 다시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 밈은 아이돌 관련한 콘텐츠에서 2차적으로 활용되면서 더 확산된 사례라고 생각해요. 보름달 뜨기 전에는 아이돌의 '귀여운 매력', 보름달이 뜬 후에는 '다크한 매력' 등 반전을 보여주는 밈으로 쓰이는 것을 자주 발견한 적 있어요. 해당 영상처럼 '사실 너도 똑같더라고' 밈과 결합되면서 뜬 것으로 보이고요. - 정민경(22)
실제로 이 밈이 확산된 배경에는 가수 허회경의 <김철수 씨 이야기> 중 ‘사실 너도 똑같더라고’라는 부분이 틱톡 BGM으로 유행한 영향이 컸습니다. 고스 메이크업은 직접 시도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필터로 가볍게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유저들이 재미를 느끼며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은 여기에 ‘야채를 업신여김’, ‘우드머리’ 같은 텍스트를 더해 유머러스하게 소비하고 있죠.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밈이라고 생각해요. *'숨듣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 나는 이렇다'라는 느낌의 메시지를 주는 느낌이에요. 보름달이 뜨기 전과 후에 반전이 있는 게 재미 포인트고요. 개인적으로는 ‘보름달이 뜬 후’ 장면에서 쓴 필터를 좋아해서 그 부분도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이 숏폼이 뜬 이유도 둘 사이의 반전이 흥미롭기 때문일 것 같아요. - 곽연재(21)
*'숨어서 듣는 명곡'의 줄임말로, 남들 앞에서는 듣기 민망하지만 본인에게는 매우 좋아서 숨어서 듣는 노래를 의미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록밴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티저 포스터2025년 들어 대중음악계 분위기도 이러한 무드의 유행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힙합 열풍이 다소 약해지고 록 장르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음악평론가 임희윤은 “2·3인칭 화자의 플렉스에 대리만족하던 감상 방식에 피로감을 느낀 대중들이, 보다 직설적이고 1인칭의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는 록 음악에 공감하기 시작한 흐름”이라 분석합니다. 실제로 틱톡에서 유행한 ‘보름달’ 밈과 비슷한 무드의 록·메탈 스타일 패션이 다시 주목받고 있고, 다크한 모노톤의 빈티지 티셔츠, 체인, 금속 목걸이 같은 아이템이 트렌드로 떠오르는 중입니다.
철 지난 취향을 탐닉하는 세대
니치(Niche)라는 단어는 ‘틈새’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누구나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테디셀러 향수가 아닌, 특정 취향을 가진 소수를 위해 제작된 고급 향수를 ‘니치 향수’라고 부르는 것이죠. 최근 Z세대 사이에서는 이러한 ‘소수 취향’이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현상이 바로 ‘오래된 것’에 대한 동경입니다.
이 흐름은 2020년대 유행한 레트로 열풍과 닮아 있지만, 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두 문화 모두 오래된 것에 열광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레트로가 과거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움을 만드는 반면, 지금의 니치 피버는 과거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즉, 레트로가 대중적 유행을 형성했다면, 니치 피버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퍼져 나가는, 보다 정교하고 취향 기반의 흐름에 가깝습니다.

20대연구소 이재흔 연구원은 이 현상을 온라인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에서 찾습니다. TV 중심의 시대에는 방송 시간에 맞춰 ‘본방사수’하며 콘텐츠를 소비해야 했지만, 지금은 유튜브·틱톡 같은 플랫폼 덕분에 ‘시차’가 사라졌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콘텐츠도 얼마든지 검색해 찾아볼 수 있는, 무경계·무시차 콘텐츠 환경이 조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Z세대는 과거 콘텐츠를 ‘다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동시대의 콘텐츠처럼 ‘처음 발견하는 것’에 가깝게 경험합니다.
‘옛날 감성’이라고 하죠. 옛날 노래, 영상만이 주는 그 느낌을 좋아해요. 그래서 실제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리거나 할 때도 옛날 노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변진섭의 <숙녀에게>라는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 그때만의 레트로한 감성, 지금처럼 디지털 시대에는 날 수 없는 그 감성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예전에 유행했던 문화 콘텐츠들도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많이 소비하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때 묻지 않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지친 세대이기에 더 예전 감성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 곽연재(21)
수차미 평론가 역시 인터넷은 일종의 ‘비고고학적 공간’이기 때문에 콘텐츠의 생성 시점이 의미를 잃는다고 설명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오래된 콘텐츠와 최신 콘텐츠가 동일한 타임라인 위에 병렬로 존재하고, 오히려 콘텐츠가 오랜 기간 쌓아 온 ‘간극’과 ‘층위’를 즐기며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죠. Z세대는 바로 이 간극에서 발생하는 깊이를 ‘파먹듯이’ 탐색하는 데 재미를 느낀다는 해석입니다.
NCT 위시가 커버한 파파야의 <내 얘길 들어봐> 틱톡 챌린지 유행이러한 흐름은 틱톡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최근 틱톡에서는 2000년에 발매된 파파야의 <내 얘길 들어봐>가 다시 유행했습니다. 25년 전 음원이지만, 2016년 오마이걸이 리메이크하며 한 차례 재조명된 바 있고, 2025년 8월에는 NCT 위시가 SBS 가요대제전에서 다시 리메이크하면서 10·20대에게까지 널리 알려졌습니다. 틱톡에서는 NCT의 댄스 챌린지에 맞춰 확산되었지만, 정작 유행한 음원은 파파야의 원곡입니다.
노래가 뜨자 과거 파파야의 음악방송 영상, 인터뷰, 근황 등이 다시 발굴되며 숏폼 콘텐츠로 재가공되었고, 해외 팬들조차 <PAPAYA - LISTEN TO ME>라는 제목으로 원곡 영상을 업로드하는 움직임도 나타났습니다.
이재흔 연구원은 이러한 현상을 Z세대의 콘텐츠 소비 방식인 ‘디깅(digging)’으로 설명합니다. 과거 스타들의 근황을 찾아보고, 오래된 무대 영상·비하인드 영상을 탐색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재미가 된다는 것이죠. 지금의 10·20대에게 오래된 콘텐츠는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는 취향 기반 소비가 강해진 세대에게 과거의 아이템이 오히려 희소하고 개성적인 선택지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본인들에게는 낯선 기기인 '닌텐도 DS' 리뷰 영상에 호기심을 보이는 10대 틱톡 유저들틱톡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더 명확하게 관찰됩니다. 과거의 패션 아이템이나 오래된 상품을 리뷰하는 영상이 올라오면, 이를 처음 접한 Z세대들이 “사고 싶다”, “지금 다시 유행해도 좋겠다”라는 댓글을 남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과거는 단순히 복고가 아니라, 현재의 취향을 강화하는 ‘새로운 니치 문화 자원’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소비로 이어지는 크리에이터 덕질
개인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춘 크리에이터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 제품을 선보이고, 아예 자신의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는 사례도 흔해졌습니다. 크리에이터가 하나의 브랜드로 기능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죠.
특히 틱톡에서는 뷰티 크리에이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며, 브랜드와 크리에이터의 협업 제품이 연달아 출시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터 ‘시네’는 2024년 에이프릴스킨과 두 차례 협업한 데 이어, 올해 3분기에는 에뛰드와 협업한 BB크림을 출시해 큰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시네는 자신의 틱톡 계정에서 제품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리뷰 영상을 꾸준히 올리며 팬들의 신뢰를 얻었고, 이러한 ‘진정성’에 감동한 댓글이 1만 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기도 했습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틱톡 크리에이터 시네와 에뛰드의 콜라보 제품라인저는 평소에 즐겨보던 뷰티 유튜버가 공동 제작하거나 콜라보한 제품을 구매한 적 있습니다. 평소 꾸준히 콘텐츠를 보며 쌓인 내적 신뢰감과 유대감 덕분에, 이 분 제품이라면 믿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정 판매'라는 희소성이 소장 욕구와 소속감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또한 그 크리에이터에 대한 애정과 응원의 표현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러한 굿즈 구매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와 취향을 공유하고 애정과 지지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 정민경 (22)
높은 모델료를 지불하고 연예인을 기용하는 대형 뷰티 브랜드보다, 자신이 꾸준히 팔로우하며 신뢰를 쌓아 온 크리에이터의 제품을 선택하는 Z세대가 늘면서, 작은 브랜드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열렸습니다. 명품 브랜드나 유명 연예인이 사용하는 제품과 함께 ‘크리에이터 OO가 제작한(추천한) 제품’이 하나의 독립된 취향 카테고리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질 좋은 제품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크리에이터와 취향을 공유하고 지지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재흔 연구원은 요즘 10·20대가 ‘취향과 지향이 뚜렷한 사람’을 매우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합니다. 이들은 자신 또한 취향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신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명확히 드러내며 활동하는 1인 크리에이터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고, 이들이 만든 제품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그 매력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은 뷰티 분야를 넘어 굿즈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저희 친오빠는 예전에 침착맨 삼라만상 티셔츠를 구매한 적이 있는데요. 저는 ‘사코팍(사우스 코리안 파크)’이라는, 사회 풍자 애니메이션 캐릭터 키링을 살까말까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평소 마음에 들던 크리에이터인데 굿즈 자체가 매력 있을 때 구매 의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 김가린(22)
틱톡 크리에이터 채널 사코팍(@southkoreanpark8)의 캐릭터 키링 굿즈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의 제품을 소비하는 행위는 단순한 ‘팬 활동’이나 ‘굿즈 수집’을 넘어, 자신의 취향을 세상에 보여주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크리에이터의 제품을 당당히 사용하는 모습을 SNS에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것이죠. 이재흔 연구원은 초개인화 시대가 되면서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덕분에, ‘덕질’ 자체가 하나의 성향이자 캐릭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합니다.
즉, Z세대에게 크리에이터 콜라보 제품의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취향 기반 연대’와 ‘정체성 표현’의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틱톡에서 활동하는 취향 기반의 크리에이터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오닝(@oningoning)은 철저히 본인의 ‘덕질’ 취향을 기반으로 꾸준히 활동 중인 리뷰 크리에이터입니다. 스스로를 ‘방구석 오타쿠’라고 정의하는 오닝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자신을 어떤 크리에이터로 정의하고 계신가요?
저는 ‘귀엽고 신박한 제품을 리뷰하는 방구석 오타쿠’예요. INTP이라 밖에 거의 안 나가고 거의 방에서만 살다시피 하죠(웃음). 얼마 전에는 침착맨 팝업 스토어를 가려고 예매 사이트에서 광클해서 겨우 성공했는데, 정작 현장 가면 기 빨릴까 봐 그냥 안 갔어요.
크리에이터가 된 계기도 궁금해요. 원래부터 크리에이터는 아니셨을거 같아서요.
전에는 개인 캐릭터 사업을 했어요. 제 캐릭터 이름이 ‘오닝’이었는데, 제 닉네임도 거기서 따 온 거죠. 처음에는 캐릭터를 알리고 싶어서 틱톡을 시작했어요. 제 캐릭터 위주로 업로드하다가 아무래도 너무 심심한 거예요. 다른 귀여운 인형이나 소품을 찍어서 올리다 보니 반응이 점점 좋아졌고, 어느새 뭔가를 리뷰해서 올리는 게 전업인 크리에이터가 되어 있더라고요. 관심받는 게 좀 짜릿하더라고요(웃음). 소심한 관종이라고 해야 할까요?
정말 다양한 제품을 리뷰하시더라고요. 어떻게 찾고, 또 그 물건들은 찍고 나서 어떻게 처리하세요?
사실 알고리즘이 다 찾아 줘요. 제가 뭔가 신기한 걸 사면, 온라인 몰이 “너 이런 것도 좋아할 걸?”하면서 추천을 계속 띄워 주거든요. 그렇게 걸려들어서 구매한 게 한가득이에요. 주변에서 종종 제보하는 경우도 있고요. 문제는… 안 찍은 제품들이 훨씬 많다는 거죠. 집이 거의 창고 수준이에요. 방 세 개에 제품들이 가득 쌓여 있거든요.
리뷰할 제품을 선정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나요?
처음엔 제가 갖고 싶은 제품을 리뷰한다는 핑계로 합리화하면서 샀어요(웃음). “이건 어차피 살 거고, 찍으면 또 이득이지 뭐!” 라는 식이었죠. 기준은 특별히 없고, 제가 좋아하는 걸 사요. ‘이건 되겠다’ 싶은 감이 오는 제품들이 있거든요. 결국 제 콘텐츠의 핵심은 ‘내가 좋아하는 걸 그냥 보여주는’ 거예요.
원래부터 덕질을 열심히 하셨거나, 마이너한 취향을 갖고 계셨나요?
맞아요.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일본 출장을 자주 다니셨는데, 귀여운 캐릭터 시계나 문구를 자주 사오셨어요. 그 때부터 캐릭터에 빠지기 시작했죠. 십수 년 전부터 캐릭터 오타쿠로 살았던 것 같아요. 가끔씩 캐릭터 제품 광고를 받거나 리뷰할 일이 생기면 여전히 행복해요. 어릴 적 꿈을 이룬 기분이랄까요?

캐릭터 상품을 리뷰하면 대부분 성과가 잘 나는 편인가요?
처음 틱톡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캐릭터 콜라보 제품을 지금처럼 쉽게 구할 수 있진 않았어요. 요즘은 다이소, 올리브영, 편의점에서도 콜라보 제품이 넘쳐나죠. 단순히 캐릭터가 붙었다고 잘 팔리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진짜 덕후 감성’을 이해하는 기획자가 붙은 제품이 잘 돼요. 가끔 성의 없이 캐릭터만 붙인 제품이 광고로 들어올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이건 좀 아닌데…’ 싶은 생각도 들죠.
광고로 콘텐츠를 만들면, 구독자들이 실제로 제품을 구매하는 것 같나요?
대형 브랜드 제품은 저 뿐 아니라, 다른 크리에이터들도 많이 리뷰해서 체감은 잘 안 되는데요. 저랑만 협업하는 소규모 브랜드 제품은 은근히 잘 팔리나 봐요. 실제로 영상을 올리고 나서 매출이 잘 나왔다는 후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럴 땐 나름 영향력이 있구나 싶어서 뿌듯하죠.
콜라보 제품을 내고 싶다거나, 직접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아직 공식적으로 그런 제안이 들어온 적은 없어요. 제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런가(웃음). 그래도 제 캐릭터 오닝이랑 브랜드 제품 콜라보를 성사시켜 보고 싶은 꿈은 있어요. 제 자식 같은 존재라서, 제가 아닌 오닝이 화장품 모델이 된다든가… 그러면 정말 좋겠죠?
‘덕질 트렌드’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예전에는 덕질이 뭔가 ‘숨겨야 하는 취향’ 이었던 것 같아요. 가방에 캐릭터 키링이라도 달고 다니면 “쟤 오타쿠 아냐?”라며 수군거렸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트렌드가 달라졌어요.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가방에 귀여운 인형 키링을 하나씩 달고 다니죠. 정말 좋은 세상이 왔다고 생각해요.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믿음이 유효한 세상이 된 거죠.


니치 커뮤니티를 공략하는 브랜드 전략의 중요성
영국의 글로벌 인플루언서 에이전시 Digital Voices가 발표한 〈The State of Influence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브랜드들은 더 이상 ‘연령·성별’ 같은 전통적인 인구통계 기반 타깃팅보다, 취향·관심사 기반의 ‘니치 커뮤니티’를 공략하는 전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소규모이지만 강한 결속력을 갖는 니치 커뮤니티는 특정 취향에 매우 충성적이기 때문에, 대중적 제품보다 작고 특화된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도 높습니다. 이는 니치 피버 현상과도 맞닿는 흐름으로, 취향 기반 소비가 점점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문 읽기)
가볍고 빠르게 번지는 ‘마이크로 니치 트렌드’ 확산
Sprinklr가 발표한 〈25 TikTok Trends for Businesses in 2025〉 보고서에 따르면, 틱톡에서는 특정 취향을 가진 소규모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밈·패션·취미 콘텐츠가 순식간에 대중화되는 ‘마이크로 니치 트렌드’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BookTok’, ‘PlantTok’처럼 니치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가 트렌드 생성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이는 대세 중심의 유행에서 벗어나 작지만 강력한 취향 집단이 문화를 주도하는 니치 피버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됩니다. (전문 읽기)
대형 플랫폼 대신 니치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Z세대
Business Insider는 최근 Z세대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메타 플랫폼에서 이탈해 Tumblr·Pinterest 같은 ‘마이크로 커뮤니티형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Z세대는 알고리즘 중심의 거대 플랫폼보다, 취향 기반의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선호합니다. 이러한 플랫폼 이동은 Z세대가 취향의 힘을 중시하고, 나만의 니치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에 가치를 둔다는 점에서 니치 피버 현상을 더욱 굳건히 뒷받침합니다. 대형 플랫폼만큼 대중적이면서도, 동시에 소수 취향의 콘텐츠가 빠르게 부상하고 확산되는 틱톡의 역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전문 읽기)
지금까지 우리는 Z세대와 알파 세대가 틱톡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어떻게 ‘니치 피버(NICHE FEVER)’라는 새로운 문화 소비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거대한 유행을 따라가던 시대에서 벗어나, 각자 취향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공명하는 이들과 즉각 연결되는 독특한 문화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소수 취향이 ‘유행’하는 현상을 넘어, 디지털 세대가 취향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 그리고 문화를 향유하는 리듬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다시 찾아온 애니메이션 전성기
- OTT와 틱톡을 통해 <귀멸의 칼날>, <진격의 거인> 등 애니메이션이 자연스럽게 대중 장르로 확산
- 성우 녹음 영상, AI 실사화 숏폼 등 다양한 재창작이 유행하며 애니메이션 IP가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됨
2. 어둠의 MOOD가 트렌드로
- 고스 룩, 다크 필터, ‘보름달 뜨기 전/후’ 밈 등 어둡고 괴기한 감성이 틱톡에서 빠르게 유행
- 메이크업·패션·음악 취향이 숏폼을 통해 대중화되며, ‘다크 무드’가 자기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음
3. 철 지난 취향을 탐닉하는 세대
- 파파야 <내 얘길 들어봐>처럼 1990~2000년대 콘텐츠가 틱톡에서 ‘새로운 발견물’처럼 재유행
- OTT·숏폼 환경에서 과거 콘텐츠와 현재 콘텐츠의 시차가 사라지며 디깅(digging) 자체가 놀이가 됨
4. 소비로 이어지는 크리에이터 덕질
- 크리에이터 협업 제품·굿즈를 구매하며 취향과 지지를 표현하는 소비 방식이 강화
- ‘크리에이터 OO가 만든/추천한 제품’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으며 팬심이 구매력으로 전환됨
이재흔 연구원은 “숏폼은 취향을 드러내고 교류하기 좋은 환경이며, 오프라인에서 만나기 어려운 ‘취향이 통하는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라고 말합니다. 즉, 니치 피버는 단순히 콘텐츠의 유행이 아니라, 디지털 세대가 서로를 찾아가는 방식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서브컬처평론가 수차미는 “숏폼 플랫폼은 진성 오타쿠와 일반인 사이의 ‘중도층’을 끌어들이며 문화의 저변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며, 소수 취향이 향후 더 큰 주류 문화로 확장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니치 피버는 취향이 곧 관계가 되고, 콘텐츠가 곧 자기 표현이 되는 지금 세대의 정체성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키워드입니다. 틱톡과 같은 숏폼 플랫폼은 더 이상 유행을 따라가는 공간이 아니라, 작고 다양한 취향들이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 움직이는 감각적 허브가 되고 있습니다.
2025년에도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틱톡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들이 어떤 취향을 드러내고, 무엇에 반응하며, 어떤 방식으로 문화를 재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은 Z세대를 가장 정확히 이해하는 방법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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