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스무 살의 우연은 삶의 방향이 되기도 한다

포엠매거진 운영자 배동훈 인터뷰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우리를 참 이상하게 만든다. 어설픈 설렘에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갑자기 삶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놓기도 한다. 

"그냥 좋아서", 단순하지만 벅찬 이유 하나로, 시를 읽고, 시를 전하고, 결국 회사까지 그만둔 사람. 시의 매력을 인스타그램으로 쉽고 간편하게 소개하는 채널 포엠매거진의 운영자 배동훈을 만났다. 

의류, 사람, 벽, 인간의 얼굴이(가) 표시된 사진AI가 생성한 콘텐츠는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국문학이 아닌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그 당시 인문 분야에는 관심이 없었나?
고등학생 때부터 옷을 좋아해서 정시 지원 당시에도 가, 나, 다군 모두 패션디자인과를 지망했다. 인문 분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막상 패션디자인과에 입학하니 내가 생각했던 일과는 거리가 있어서, 학교를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다(웃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 대학에서 배운 게 지금 삶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데.
포엠매거진 콘텐츠 디자인에 사용하는 디자인 기술도 모두 독학으로 익혔다. 학교에 다닐 때는 정말 옷만 만들었기 때문에, 대학에서 배운 내용이 현재의 삶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예상치 못한 기회로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시를 좋아하게 된 시점도 궁금하다. 
시는 대학교 입학 후인 20살 여름, 우연히 서점에서 시집을 처음 읽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쭉 읽고 있다.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좋아서’, 번개를 맞은 것처럼 사랑에 빠졌다. 

포엠매거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는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인 장르인데, 사람들은 시가 마냥 어렵고 난해하다고 오해하는 게 억울했다. 누군가가 나서서 친근하게 시의 매력을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더라. 결국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포엠매거진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그 마음은 포엠매거진을 시작하는 동력이 되었다. 동훈에게 좋아하는 마음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삶을 더 솔직하게 살게 해주는 감정이다.
 사랑하면 내 부끄러운 모습도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늘 최선을 다하고 싶고, 가장 예쁜 마음을 주고 싶지 않은가. 이런 마음이 모여 삶을 더 진심으로 대하도록 이끌어준다.

요즘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대학생다. ‘좋아하는 것’을 찾을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무엇이든 좋으니 일단 해봤으면 좋겠다. 평소에 전혀 하지 않을 일을 하고, 먹지 않을 음식을 먹고, 닿지 않을 곳으로 떠나고, 말 걸지 않을 친구에게 말을 걸고. 그러다 보면 하나쯤 얻어걸릴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는 세상과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필요까지는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막무가내로 강행하는 건 오히려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견적을 보면서 좋아하기를 바란다. 

동훈은 무엇을 적당히 타협하고 있는가?
특정 트렌드나 흐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에겐 별로인데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 ‘이게 왜 잘 되지?’ ‘사람들은 왜 이런 걸 좋아하지?’ 같은 의문이 드는 콘텐츠들. 대학생 때는 그런 흐름을 부정하고 싶었다. 사실은 대중의 시선을 부정하면서 혼자 고상하고 특별해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는 딱히 의문을 품지 않는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지점에는 분명 이유가 있고, 이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좋은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텍스트, 야외, 건물, 창문이(가) 표시된 사진AI가 생성한 콘텐츠는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프리랜서 포엠매거진의 하루는 어떠한가?
규칙적으로 사는 것을 좋아해서 늘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일을 한다. 그렇다고 직장인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나름의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전 9시 - 오후 6시까지는 ‘포엠매거진과 관련된 일을 하는 시간’으로 정해놨다. 그래야 나만의 리듬이 생기고 마음이 편안하더라.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선택하던 순간의 심정도 궁금하다. 모두가 가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두려움은 없었나?

내가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그게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길은 모두 다르다. 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있다.’라고 생각했다. 

물론 두려움이 아예 없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한 번은 팀장님께 퇴사하겠다고 말씀을 드린 다음 날 번복한 적도 있다(웃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시 출근하는 것이 참 곤욕이었다. 그 정도로 나 자신조차 퇴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머릿속이 잔잔한 호수처럼 맑아지는 순간이 오더라.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결심이 서는 순간이 말이다. 그때 두려움이 깔끔히 사라져 퇴사를 속행했다. (근데 나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내 케이스를 보고 퇴사를 결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좋아하는 일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장면, 실내, 책, 의류이(가) 표시된 사진AI가 생성한 콘텐츠는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시를 ‘좋은 문장’, ‘텍스트힙’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방식이든 일단 소비되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2015년경 혁오 밴드가 스멀스멀 인기를 끌기 시작할 때쯤에 혁오의 올드팬들이 ‘나만 알고 싶은 밴드인데 너무 유명해지는 건 싫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에 리더 오혁이 ‘우리 보고 굶어 죽으라는 것이냐’라고 답했다.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이다. 시가 더 많이 노출되고 사랑받아야 시인들도, 나도 먹고 살 수 있다. 어떤 통로든 사람들이 시를 읽게 되는 현상 자체가 매우 감사하다.

짧은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에게 시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은 자기 생각조차 모르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주관이 없달까. 그도 그럴 게 숏폼과 릴스가 온전히 사유할 시간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반면에 시는 짧은 문장으로 깊게 사유할 시간을 마련해준다. 시를 읽으며 내가 몰랐던 내 감정을 더 섬세하게 다룰 수도 있다. 


‘너에게 닿지 못한 편지는 모두 시가 되었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지금의 동훈에게도 닿지 못한 마음이 있을까?
없다. 요즘은 모두에게 주고 싶은 마음을 다 주며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 

처음이 많은 대학생 시절에는 특히 ‘닿지 못한 마음’이 많다. 이런 대학생을 위한 시가 있을까?
문정희 시인의 ‘도착’을 추천하고 싶다. 살면서 가장 많이 좌절하고 기뻐하던 때가 언제였나 떠올려 보면, 대부분 대학 시절이었다. 이 시는 별것 아닌 일이 나에게는 세상의 멸망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결국은 전부 별일 아니라고, 모든 경험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며 위로를 건넨다.

 

#포엠매거진#배동훈#인터뷰
댓글 0
닉네임
비슷한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