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문과라서 죄송하지 않습니다

문과생 6인이 말하는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사랑, 낭만은 삶의 목적인 거야.
<죽은 시인의 사회>

인문학은 취업으로 직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전공의 가치를 취업이라는 ‘좁은 쓸모’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저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을 돌아보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내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결국 인문학이 다루어온 언어와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에 문과라서 죄송할 필요가 없다는, 여섯 명의 문과 대학생을 만나보았다.



"복잡한 사회라서 더 필요한"

임순영,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20학번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사회학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 및 갈등을 그저 개인만의 일로 바라보기보다는 사회 구조 안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개인과 사회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기에 어떤 현상과 변화, 갈등이 일어나도록 기능하고 있는 구조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사회 구조는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인간들이 특정 모습으로 만들어온 것이고, 그렇기에 수정할 수도,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은 왜 필요한가

‘어떻게’ 살아갈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배우고 싶어 사회학을 선택했습니다. 저에게 ‘어떻게’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엇에 무게를 두고 왜 그래야 하는지였거든요. 사회가 어떤 갈등과 관계, 구조와 힘을 기반 삼아 유지되는지 배우며 고민할 때 생각이 훨씬 현실적이고 정교해졌어요.

‘어떻게’를 함께 고민해 주는 교수님과 학우들이 있다는 것도 큰 힘이 됩니다. 이처럼 내 안에만 머물던 시야를 바깥으로 향하게 해준다는 점이 사회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사라질 학과 
사회학과가 '앞으로 사라질 학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대학에서는 사회학과 폐지를 결정했죠. ‘변화’에는 관심이 있지만 사회 구성원 간의 위치 및 관계 변화와 갈등에는 무관심한 것 같아요. 현실과 구조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빠질 때, 사회 문제는 개인적인 일, 즉 개인의 책임이 되어버려요.

사회는 앞으로 더 복잡해질 텐데, 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사회학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없앤다는 것이 당혹스럽고 안타깝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 필요한 학문인데 말이죠.

전공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길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전공 공부는 끝이 아니라 기반이기에, 이후에도 필요한 기술과 경험은 충분히 쌓아갈 수 있어요. 저는 문과에서 다루는 학문이 특히나 이 시대에 귀하다고 생각해요. 전공 선택을 앞두고 고민하고 계신다면 조금 더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몸담아야 보이는 것들"

강민서, 서울대학교 미학과 23학번



미학이란 무엇인가
미학과는 미술대학 소속이 아니라 인문대학 소속으로, 미학은 철학의 한 하위 학문입니다. 쉽게 말해 ‘예술’과 ‘아름다움’이라는 문제를 ‘철학’이라는 방법으로 접근하여 해결해 나가는 학문입니다.

연구 영역으로는 순수 미학 사상 및 예술 철학을 탐구하는 '미학 이론'과 개별 예술 장르에 관한 이론적 탐구와 비평적 성찰을 시도하는 '예술 이론'으로 나뉩니다. 예술적 감성의 자유로움과 철학적 사유의 엄밀함이 조화를 이루는 학문적 특성처럼, 미와 예술과 관련된 현상의 본질과 특성을 사유합니다.

인문학은 왜 필요한가
인문학은 우리와 맞닿은 세계와 삶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대할 것인지,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숫자와 수치, 효용과 효율로만 재단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비가시적이고 획일적이지 않은 요소들, 그렇기에 우리 삶과 닮아있는 것들을 읽어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언어라는 보편으로 번안해 냄으로써, 우리는 나와 세계를, 나와 당신을, 그리고 서로를 인식하며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학과
학부에서 미학과는 서울대가 유일하기에 생소한 것이 당연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대개 '미학과는 뭘 배우는 거야?'라는 질문을 많이 들어요. 과를 설명하고 나면 '그럼 나중에 뭐 해 먹고 살 거야?'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듯합니다. 

측은히 여기시는 것에 이제는 저도 익숙해진 것 같아요. 오히려 즐긴답니다. 이런 시선을 물론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 모든 걸 감수하고서 미학을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하기를 택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 서로에게 귀감이 되는 것 같아요. 

전공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문학, 언어, 예술, 철학 등을 단순히 흥미롭게 여기는 것과 직접 몸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임이 자명합니다. 다르게 말해서, 몸담은 채로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취업 등의 여느 이유로 거부할 수가 없었고 선택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유하고 표현하기를 못내 겁내지 않고, 발휘하는 직관과 그 사유의 가능성을 스스로 탐구하는 즐거움이 쉽게 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슴이 시키는 일"

장민서, 아주대학교 사학과 20학번



사학이란 무엇인가

사학은 역사를 다루는 학문이에요.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지 탐구하는 일입니다. 역사의 본질이 과거의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를 잇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자료를 가지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를 찾아내고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워요.


사학은 왜 필요한가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특히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한상우 교수님께 많이 배웠는데요. 단순 암기를 위한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세요. 답사를 가서 현장을 직접 본 다음, 데이터를 분석하는 식이에요. 예를 들어, 조선시대 양반 문과 급제자 등수표로 조선시대의 금수저가 있을까 알아보는 거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학과
사학 그리고 인문학은 '낭만의 학문'이라 생각해요. 낭만을 말할 때 우리가 자주 꺼내는 단어가 '굳이'잖아요. 사실 없이도 살 수는 있지만, 있으면 훨씬 좋은 존재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만큼,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힘이 필요하니까요. 인문학은 그 힘을 길러주기에 멋진 사람이자 멋진 어른으로 자라게 한다고 믿습니다.

전공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걸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라는 마음으로요.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행복에서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해요. 사실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저하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저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셨으면 합니다.



"문과라서 죄송할 필요는 없다"

이원경, 성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2학번



국어국문학이란 무엇인가
국어국문학과는 한글의 역사와 문법, 그리고 문학과 시 이론에 대해 함께 다루는 곳이에요. 다만 학교마다 강의 편성이 조금씩 다를 거예요. 저는 문법보다는 시나 문학의 역사, 그리고 문화콘텐츠 위주로 들었습니다.

인문학은 왜 필요한가
인턴을 하며 고객과 이해관계자를 성공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모든 제품과 서비스는 결국 사람에게 팔기 위한 것이잖아요. 경제적, 사회적인 맥락을 고려해서 성공적인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인문학을 권하고 싶어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와 같은 막막한 고민을 함께 붙들어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인문학이거든요. 저 역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등을 고민하면서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힘도 자연스럽게 길렀습니다.


굶어 죽는다는 학과
대학 원서 넣을 때도 다들 '어문계 가면 굶어 죽는다'라고 했어요. AI가 등장하면서 글 쓰는 것조차 대체 당하는 시대잖아요. 그럼에도 '글쓰기 능력', '작문 능력', '논리적' 등의 키워드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오히려 AI 시대이기에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학과보다는 본인만의 능력 즉, 차별성을 키워야 살아남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전공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취업만을 생각해서 진학했다가, 막상 배우는 게 맞지 않아 재수하거나 전과하는 친구들을 많이 봐 왔어요. 안 맞는 전공 강의를 억지로 따라가다 보면 성적이 안 나오고, 그 과정 자체도 속상하잖아요. 저는 국어국문학과에서 즐겁게 공부하고 있고, 이 학과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아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밈으로 소비되고 있는데, 문과라고 전혀 죄송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직접 부딪혀 보고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이예송, 동아대학교 영미학과 21학번


영미학이란 무엇인가
2021년에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미학과로 개편되었어요. 영어뿐만 아니라 영미 문화권의 생활 양식 및 규범을 이해하고, 실무 맞춤 비즈니스 영어와 지역 문화 및 사회를 전문적으로 탐구합니다. 그렇기에 영미학을 배운다는 건, 결국 내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미학은 왜 필요한가
사람들의 말과 취향, 관계와 감정이 쌓여 ‘해석의 대상’이 되는 과정에서 인문학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그중 영미학은 그 해석을 언어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더 정교하게 하는 것이고요. 영미학의 쓰임새를 따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이미 그 필요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복수 전공이 필수인 학과
흔히 어문 계열은 '전공 하나로는 취업 못 한다.', '상경 계열 복수 전공은 필수다.' 같은 말을 듣잖아요. 그런데도 어문 계열만이 가진 분명한 무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 무기 하나만으로 사회 경험을 쌓아가고 있어요.

다른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 발 디딜 수 있는 곳이 상상 이상으로 넓어질 수 있어요. 시야도 확실히 넓어지고요. 남들은 어문 계열로 갈 수 있는 길이 좁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어문 계열만큼 식견을 넓혀주는 전공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전공 자체의 가능성을 먼저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전공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100세 시대인데 지금 선택이 평생을 좌지우지할 리가 없잖아요. 내가 무슨 길을 갈지는 겪어봐야 알 수 있어요. 전공을 결정할 때 망설이는 이유가 오직 '취업'이라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꼭 후회하는 순간이 오니까요.



"쓰임 없이도 쓸모를 지니는"

이소은, 건국대학교 사학과 24학번



사학이란 무엇인가
사학과는 역사를 전공으로 하는 학과로, 과거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고 현재를 탐구합니다. 학과 특성상 국내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니게 되는데요. 학기마다 최소 두세 번은 답사를 다니는 것 같습니다. 모두 즐거운 추억과 여행이 되고, 일상의 작은 변화구가 되어 역사적인 부분 외에도 얻는 게 많은 경험이에요.

인문학은 왜 필요한가
우리는 어떠한 목적이 없더라도 자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나아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은 결국 내 미래를 설계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에요.

인문학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지구라는 낯선 환경에 인간이라는 생명체로 태어나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요. 오로지 인문학을 통해서 우리는 그 답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쓰임 없이도 그 쓸모를 지니는 학문이라 생각해요. 


과거를 붙잡는 학과
취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전공이 아니다 보니, '그래서 취업은 어느 쪽으로 할 거냐?'라는 질문을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질문이 갈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하든 결국 필요한 건, 나와 시대를 읽어내는 힘이니까요. 

미래는 언제나 예상을 비껴가고, 우리는 현재를 그저 살아가기에 바쁘잖아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선에서 오로지 과거만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죠. 그리고 저는 온전한 소유인 과거를 탐구함으로써 우리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고, 미래를 통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공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대학은 학문 공부를 하는 곳이니,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뭐든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열심히 한다면 길은 열린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특성상 다른 학문의 바탕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분명 이후 어떤 선택을 하든 양분이 되어줄 겁니다.


#문과#이과#인문대#취업#문송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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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9 17:44
숨리포터님 글이 참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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