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내가 진심인 거, 그거 하나여도 괜찮잖아? 나의 덕질 일기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모든 것들에게
우리는 대학에 와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리고 그 압박의 크기는 새 학기를 마주하면 더욱 거대해진다.
수많은 증명 끝에 '무엇을 잘하는지'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무엇을 진심으로 좋아하는지'는 서서히 잊어간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덕질의 순간은 존재한다.
여기, 덕질을 통해 각자의 삶을 버텨온 4명의 대학생이 있다. 덕질은 비단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진심을 쏟을 수 있는 것.
진심을 꾸준히 이어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야구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해요."
닉네임 혼연일체, 충남대학교 간호학과 25학번
당신의 덕질 대상은?
야구를 좋아합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모두 한 마음으로 팀을 응원하는 문화가 있어서 좋아하게 되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야구'라는 공통점이 있다면 금방 친해지게 되는 것도 야구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힘들었던 시기에 야구는 어떤 식으로 당신 곁에 있었는가
원래는 삼성 팬이지만, 순위 결정이 달려 있는 중요한 경기라면 다른 구단의 경기 결과나 과정 전반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시험 기간 때 공부를 진짜 죽을 만큼 하기 싫을 때면 자연스레 야구에 눈이 돌아갔어요. 할 일을 미뤄 두고 현실 도피를 위해 봤던 경기에서 제 마음가짐에 도움을 줬던 일화가 있습니다.
가을 야구 승선 확률이 현저히 낮았던 NC다이노스의 기적에 가까운 9연승 달성을 보고 나서 인데요. 이 경기를 다 보고 순간 '아차' 싶었어요. 그 경기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을 끝까지 도전한 선수들과 이를 믿고 응원한 팬들이 만들어낸 거잖아요. 결과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그 '하루'에 집중한 거죠.
하루치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로 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걸 마음에 새겼습니다.
야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계속 지키고 싶은 마음? 야구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합니다. 선수들의 인생에서 내 인생을 볼 수 있고, 추억할 수 있어요. 제 환경이 바뀌어도 야구가 주는 기쁨과 재미에는 변함이 없고, 같은 기쁨을 가진 팬끼리의 유대감도 끈끈하기에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것 같습니다.

덕질에 빠져보고 싶은 대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
좋아하는 것을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보세요. 보통은 좋아하는 것을 즐기려면 돈과 시간을 써야 합니다. 그게 아까워 누군가의 경험을 듣는 걸로 대리만족하기도 하죠. 저도 TV 중계로 야구를 시청하는 것만으로 제가 100% 야구를 즐긴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야구장 응원석에서 직접 응원해 보니 처음 경험하는 벅찬 일이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 상상하는 건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수많은 사람과 마음을 함께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다들 경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연기는 저에게 도파민이에요."
최민채, 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 연기전공 25학번
당신의 덕질 대상은?
영화와 배우입니다. 저는 아무리 미워도 결국엔 사람 사이에선 필연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유대가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 유대의 다리가 되어 줄 수 있는 영화와 이를 빛내주는 배우들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저도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들었던 시기에 영화와 배우는 어떤 식으로 당신 곁에 있었는가
저는 국내외 상관없이 배우들의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어요. 연기 연습을 하다 보면 대사 하나, 독백 하나가 사람을 피 말리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어서 입시 시절부터 인터뷰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김태리 배우의 인터뷰입니다.
"연기를 하면서 드는 재미와 뿌듯함도 있지만, (중략) 돌이켜보면 연극을 할 때부터 작품마다 직업을 둘러싼 책임감과 즐거움을 두고 부단히 고민했어요. 아직 답은 못 찾았죠."
이 말을 듣고 내 고민이 헛된 게 아니었구나 싶으면서 위로도 받고, 존경심을 갖게 되면서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며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영화와 배우를 좋아하면서 나도 모르게 달라진 점이 있는지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을 수없이 보며 꿈꾸고,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더 노력하며 물고 늘어지니 저를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봐주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하나하나 이뤄가는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고요.
연기는 저에게 도파민이에요.

덕질에 빠져보고 싶은 대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
남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보통의 것을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닌지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소비하고, 지키고, 추억을 쌓는 방식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 그러니 자신의 진심을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를 지니세요.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흙 앞에 앉아있는 것?"
정하은, 단국대학교 도예과 25학번
당신의 덕질 대상은?
도예입니다! 도예를 할 때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작업하는 과정 동안, 결과를 좇지 않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살면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시기에 도예는 어떤 식으로 당신 곁에 있었는가
한 번은 생각이 너무 많아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재능이 없는 것 같은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작업은 진행되지 않으니 더 화가 났어요. 그런 감정들이 겹치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냥 작업실에 나갔습니다. 주변에서 "너는 왜 맨날 여기 있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독하게 1년을 살았습니다. 흙을 만지고 형태를 만들어 가는 그 순간만큼은 복잡한 생각들이 잠시 뒤로 밀렸어요. 그래서 도예는 제가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 두는 방식으로 곁에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예를 좋아하면서 바뀐 나의 모습과 덕질의 마음을 어떻게 지켜내고 싶은지
도예를 하면서 무언가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고민하는 태도가 생겼어요. 어느새 저의 시선과 사고방식이 완전히 새로워졌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도예는 이제 저에겐 너무 당연한 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형태나 비율, 쓰임 같은 것들을 혼자서 계속 생각하고 있거든요. 앞으로의 삶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이나 속도로 도예를 계속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사라질 것 같진 않아요.
도예는 나를 가장 나답게 유지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왠지 도예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손에 쥐고 있을 것 같습니다.
덕질에 빠져보고 싶은 대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
좋아하는 것에 힘을 들이려 하지 마세요. 아무리 좋아하는 거여도 내가 지치면 질리는 순간이 옵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꼭 열정적일 필요도 없고, 꼭 잘해내야 할 대상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취미이자 모터스포츠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존재예요."
류현규, 연세대학교 화학과 25학번
당신의 덕질 대상은?
모터스포츠의 정점, F1을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점은 매 시즌 규정에 따라 달라지는 F1 레이스 카입니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끌어올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수많은 공기 역학 전문가들이 개발하는 현대 과학기술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공돌이들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포인트죠.

힘들었던 시기에 F1은 어떤 식으로 당신 곁에 있었는가
시험 기간이 되면 분량은 방대하고, 공부 방법도 감이 안 잡히는 전공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F1 중계를 하는 날이면 공부에서 잠시 손을 떼고 중계방송을 보며 간식과 맥주 한 캔 조합으로 머리를 비웠던 날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레이스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경기하는 주간이 너무 기다려지더라고요.

F1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신기함인 것 같아요. 평소엔 스포츠에 관심도 없었는데, 제가 이렇게까지 좋아해 본 스포츠는 F1이 처음이에요. 용어도 제대로 몰랐는데 이제는 입문 팬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줄 수 있게 된 것도 신기해요.
무엇보다 공기 역학에 흥미가 생겨서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턴십 지원에도 아쉬움이 들어서 기계공학 쪽으로 복수 전공을 고민 중입니다.
덕질에 빠져보고 싶은 대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게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즐기길 바라요. 갈수록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아지니까 하나쯤은 진심을 쏟아서 좋아할 수 있는 것이 곧 나만의 피난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걸 즐길 때는 뒷감당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그 순간을 온전히 다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생이니까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만큼 사랑이 돋보이는 순간도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보면 진심으로 저절로 웃게 되는 그 순수함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치열하게 보낸 일상을 잠시 뒤로 하고, 이 마음을 꺼내보며 한 번씩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진심인 거, 그거 하나여도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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